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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記集說大全(2)

예기집설대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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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집설대전(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31701 魯莊公 及宋人으로 戰于乘丘할새 縣賁父御하고 卜國爲右러니 馬驚敗績하야 公隊어늘
佐車授綏한대 公曰 末之 卜也
縣賁父曰 他日 不敗績而今敗績하니 無勇也라하고 遂死之하다
圉人 浴馬하니 有流矢在白肉이어늘
公曰 非其罪也라하시고하시니
士之有誄自此始也니라
集說
≪集說≫ 하다 縣卜 皆氏也 凡車右 以勇力者爲之니라
大崩曰敗績이라 墮車而佐車授之綏以登하니 是登佐車也 佐車 副車也 挽以升車之索也
末之卜者 言卜國 微末無勇也 二人 遂赴鬪而死하니라 圉人 掌馬者
及浴馬 方見流矢中馬股間之肉하고 則知非二子之罪矣
生無爵則死無諡하니 大夫以上爲爵이요 士雖周爵이나 卑不應諡어늘 莊公 以義起하야 遂誄其赴敵之功하야 以爲諡焉하니라
集說
○方氏曰 誄之爲義 達善之實而不欲飾者也 諡則因誄之言而別之 有誄則有諡矣니라
大全
≪大全≫ 長樂陳氏曰 이라하니 則莊公乘丘之戰 非義也 流矢中馬而敗績하니 非御與佐之罪而罪之 非智也 以成德之誄而加之未成德之士하야 使與士喪同 非禮也
非義與智則貽害於一時 非禮則亂法於萬世하니 貽害於一時 其罪小로대 亂法於萬世 其罪大
記人 卽其罪大者記之 故曰 士之有誄自此始也


장공莊公나라와 승구乘丘에서 전쟁을 할 때 현분보縣賁父가 장공의 수레를 몰고 복국卜國거우車右가 되었는데, 말이 놀라는 바람에 수레가 전복되어 장공이 수레에서 떨어졌다.
예비 수레[좌거佐車]를 몰던 자가 장공에게 수레의 손잡이 끈을 주니, 장공이 말하기를 “형편없구나. 복국이여!”라고 하자,
현분보縣賁父가 말하기를 “이전에는 전쟁에서 수레가 전복된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수레가 전복되었으니, 이는 용맹이 없는 것이다.”라고 하고, 마침내 〈두 사람이〉 전쟁에서 싸우다가 죽었다.
그런데 어인圉人이 말을 씻기다가 빗나간 화살이 넓적다리의 안쪽에 박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장공이 말하기를 “〈수레가 전복된 것이〉 그의 죄가 아니었다.” 하고는 마침내 이들을 위해 뇌문[]을 지어주었다.
에게 뇌문을 지어주는 것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集說
승구乘丘나라 땅이니, 〈나라와의〉 전쟁이 장공莊公 10년에 있었다. 은 모두 이니, 무릇 수레 오른쪽에 타는 병사[거우車右]는 용력勇力이 있는 사람을 그 자리에 타게 한다.
크게 전복되는 것을 패적敗績이라 한다. 장공이 수레에서 떨어지자, 예비 수레[좌거佐車]를 몰던 자가 그에게 수레의 손잡이 끈을 주어 올라오게 하였으니 이는 장공이 예비 수레에 올라탄 것이다. 좌거佐車는 예비 수레이다. 는 더위잡아 수레에 올라가는 새끼줄이다.
“형편없구나, 복국卜國이여.[末之卜]”라는 말은 복국이 형편없어서 용기가 없다는 말이니, 〈이 말을 듣고〉 두 사람이 마침내 전쟁터로 달려나가서 전사하였다. 어인圉人은 말을 관리하는 자이다.
말을 목욕시킬 때 빗나간 화살이 말 넓적다리 사이의 살에 박혀 있는 것을 보고, 〈수레가 전복된 것이〉 두 사람의 죄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살아서 관작官爵이 없으면 죽어서도 시호諡號를 받는 일이 없으니, 나라 때에는 대부大夫 이상을 관작官爵이라 하였고, 는 비록 나라의 관작이지만 지위가 낮아서 시호를 받을 수가 없는데, 장공이 의리를 일으켜서 마침내 그 적에 달려들어 죽은 을 기리는 뇌문誄文을 지어서 시호를 내렸다.
集說
방씨方氏뇌문誄文의 의미는 의 실상을 나타내어 덮어두려고 하지 않는 것이고, 시호는 뇌문의 말을 따라서 별도로 지으니, 뇌문이 있으면 시호도 있다.
大全
장락진씨長樂陳氏:“≪춘추春秋≫에 의로운 전쟁이 없다.”고 했으니, 장공莊公승구乘丘에서 벌인 전쟁도 의로운 것이 아니다. 빗나간 화살이 말의 넓적다리에 박혀서 수레가 전복되었으니, 수레를 모는 자와 좌거佐車의 죄가 아닌데도 그들에게 죄를 준 것은 지혜롭지 못한 것이요, 을 이룬 자에게 주는 뇌문誄文을 아직 덕을 이루지 못한 에게 더해주어서 과 똑같이 치르도록 허락한 것은 가 아니다.
의롭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한 것은 한 때에 해를 끼치지만 예가 아닌 것은 만세에 법을 어지럽히니, 한 때에 해를 끼치는 것은 그 죄가 작지만 만세에 법을 어지럽히는 것은 그 죄가 크다.
예기禮記≫를 기록한 자가 곧 그 죄가 큰 것을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에게 뇌문을 지어주는 것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 것이다.


역주
역주1 : 죽은 자를 애도하여 명복을 빌거나 덕행을 기술하는 데 사용하는 문체로, 諡號를 짓는 데 참고하기도 하였다.
역주2 乘丘……戰在莊公十年 : ≪春秋左氏傳≫ 莊公 11년에 “여름 6월에 齊軍과 宋軍이 〈魯나라를 치기 위해〉 郎에 주둔하였다. 公子 偃이 말하기를 ‘송군은 陳容이 嚴整하지 않으니, 패배시킬 수 있습니다. 송나라가 패전하면 제나라도 반드시 돌아갈 것이니 공격하소서.’라고 하였으나, 莊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자 공자 언은 雩門으로 몰래 나가 말에 皐比를 씌우고 먼저 송나라를 공격하였다. 그러자 장공도 군대를 거느리고 그 뒤를 따라 진격하여 乘丘에서 송나라를 대패시키니 제나라가 마침내 돌아갔다.[夏六月 齊師宋師次于郞 公子偃曰 宋師不整 可敗也 宋敗 齊必還 請擊之 公弗許 自雩門竊出 蒙皐比而先犯之 公從之 大敗宋師于乘丘 齊師乃還]”라고 하였다.
역주3 春秋 無義戰 : ≪春秋≫에는 의로운 전쟁이 없었으니, 그중에 저것이 이것보다 나은 것은 있다.[春秋 無義戰 彼善於此 則有之矣](≪孟子≫ 〈盡心 下〉)

예기집설대전(2) 책은 2022.12.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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