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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記集說大全(1)

예기집설대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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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집설대전(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6. 호대 禮記 乃儀禮之傳이니, 儀禮 有冠禮하니 禮記則有冠義以釋之하고,
복씨虙氏 : 《예기禮記》는 《의례儀禮》의 해설서이니, 《의례儀禮》에 〈관례冠禮〉편이 있으므로 《예기禮記》에 〈관의冠義〉편을 두어 이를 풀이하였고,
儀禮 有昏禮하니 禮記則有昏義以釋之하고 儀禮 有鄕飮酒禮하니 禮記則有鄕飮酒義以釋之하고
의례儀禮》에 〈혼례昏禮〉편이 있으므로 《예기禮記》에 〈혼의昏義〉편을 두어 이를 풀이하였고, 《의례儀禮》에 〈향음주례鄕飮酒禮〉편이 있으므로 《예기禮記》에 〈향음주의鄕飮酒義〉편을 두어 이를 풀이하였으며,
儀禮 有燕禮하니 禮記則有燕義以釋之하고 儀禮 有聘禮하니 禮記則有聘義以釋之니라.
의례儀禮》에 〈연례燕禮〉편이 있으므로 《예기禮記》에 〈연의燕義〉편을 두어 이를 풀이하였고, 《의례儀禮》에 〈빙례聘禮〉편이 있으므로 《예기禮記》에 〈빙의聘義〉편을 두어 이를 풀이한 것이다.
其他篇中 雖或雜引四代之制 而其言 多與儀禮 相爲表裏.
예기禮記》의 다른 편 중에 비록 사대四代의 제도를 이것저것 인용하고 있으나 그 내용은 대부분이 《의례儀禮》의 내용과 표리를 이룬다.
但周禮‧儀禮 皆周公所作이요 而禮記則漢儒所錄이라.
다만 《주례周禮》와 《의례儀禮》는 모두 주공周公의 저작이고, 《예기禮記》는 나라의 유자儒者들이 집록集錄한 것이다.
雖曰漢儒所錄이나 然亦儀禮之流也니라.
예기禮記》가 비록 한유漢儒들이 집록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 또한 《의례儀禮》의 부류部流인 것이다.
何以言之. 周禮 雖得之於河間獻王이나 時無有傳之者하야 武帝 以爲末世瀆亂之書라 하고, 何休 以爲六國陰謀之書라 하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가 하면 《주례周禮》가 비록 때에 발견되기는 하였지만 당시에 이를 연구하는 학자가 없어서 무제武帝는 이 책을 말세에 세상을 혼란하게 만들 목적으로 지어진 책이라 하였고, 는 〈전국시대〉 육국六國에서 세운 비밀계획을 담은 책이라고 하였다.
至于漢末하야 乃行於世니라.
한말漢末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세상에 통행通行하게 되었다.
惟儀禮之書 漢初已行이라.
그러나 《의례儀禮》만은 한초漢初에 이미 통행通行하고 있었다.
高堂生 傳之蕭奮하고 蕭奮 傳之孟卿하고 孟卿 傳之后蒼하고 后蒼 傳之戴德‧戴聖하니, 二戴 因習儀禮하야 而錄禮記.
그 때문에 은 이 책을 에게 전하고 소분은 에게 전하고, 맹경은 에게 전하였으며, 후창은 다시 에게 전하였는데, 이대二戴가 《의례儀禮》를 연구하여 《예기禮記》를 집록集錄한 것이다.
知禮記 儀禮之流也니라.
그러므로 《예기禮記》는 《의례儀禮》의 한 부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주
역주1 虙氏 : 虙氏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알 수 없다.
역주2 河間獻王 : (?-B.C.130) 성은 劉, 이름은 德. 景帝의 아들로 태어나 B.C.155년 河間의 왕으로 봉해졌다. 총명하고 학문을 즐겼으며, 儒敎‧道敎에 박학하였고, 민간으로부터 좋은 서책을 수집하였다. 같은 시대의 《淮南子》의 편자 淮南王 劉安과는 달리 實事求是의 實證的인 학풍을 지녔다. 또한, 당시 사상계의 중요인물인 동시에 道敎思想史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또, 중국 古文學의 중심인물로, 그가 수집한 문헌은 古文字體로 쓰인 秦나라 시황제의 焚書 이전의 舊本으로서 《周官》‧《尙書》‧《禮》‧《禮記》‧《老子》 등이 있으며, 詩의 《毛氏傳》‧《春秋左傳》을 취택한 것이 주목된다.
역주3 何休 : (129-182) 자는 邵公. 山東省 濟寧縣 출생. 소박 근엄한 학자로, 젊어서 관리가 되었으나 곧 사퇴하고, 刻苦 15년 만에 명저 《春秋公羊解詁》를 완성하였다. 당시에는 馬融‧鄭玄을 중심으로 하는 《春秋左傳》이 성행하고 《春秋》의 記事를 史實로서 詳述하는 학풍이 성행하였는데, 하휴는 《春秋公羊傳》을 거론하여 그 기사의 사상적 의미를 취하고 이를 공자의 정신을 잇는 것이라 하여 존경하였다. 하휴의 공양학은 漢나라 景帝 때의 博士 胡母生에서 비롯되어 董仲舒를 거쳐 그에게 이어진 것으로, 후에 청나라 말에 이르러 今文公羊學으로서 개화하였다.
역주4 高堂生 : 西漢의 초기 今文禮學家 자는 伯이고 魯나라 사람이다. 古代 禮制를 전공하였다. 지금의 《儀禮》 17편은 곧 고당생에 의하여 전수된 것이다. 《辭海》 上海辭書出版社
역주5 蕭奮 : 前漢 때 사람. 魯나라 瑕丘 출신으로서 高堂生 이후에 禮17편을 전수받아 孟卿에게 전했다는 기록이 있다. 《後漢書》 列傳 儒林列傳 第69下
역주6 孟卿 : 東海 蘭陵 사람. 西漢의 經學家, 孟喜의 아버지이다. 蕭奮을 스승으로 섬겨서 《禮》와 《春秋》에 능했으며, 후에 后蒼과 疏廣에게 전수하였다. 《后蒼禮》‧《疏氏春秋》는 모두 맹경에서 나온 것이다. 맹경은 《禮經》은 너무 많고 《春秋》는 번잡하다고 하여 그의 아들 맹희는 田王孫에게 가서 《易》을 배우게 하였다. 《經學辭典》 四川人民出版社
역주7 后蒼 : 后倉이라고도 한다. 字는 近君이다. 동해의 郯 출신이다. 서한시대의 저명한 경학가이다. 예학자인 孟卿과 五經에 달통한 夏侯始昌을 스승으로 섬겼다. 詩와 禮에 정통하였고 경학박사에 임명되어 벼슬이 少府에 이르렀다. 翼奉, 蕭望之, 匡衡 등 여러 齊學學派의 학자들이 모두 그 문하에서 나왔다. 또 禮에 대한 수만언에 달하는 해설을 하였으니 그를 后氏曲台記라고 불렀다. 《經學辭典》 四川人民出版社
역주8 戴德 : 大戴라고도 한다. 한나라 宣帝 때의 사람이다. 자는 延君이고 漢梁人이다. 서한의 경학가이다. 信都王 劉囂의 太傅가 되었다. 조카 戴聖과 함께 后蒼에게서 수업하였다. 당시에 남아 있었던 예에 관련된 문헌을 근거로 85편을 뽑아서 《大戴禮》를 만들었는데 후에 46편은 일실되고 39편만 남았는데 13권으로 묶여졌다. 한나라 宣帝 때 경학박사가 되었고 조카인 戴聖과 함께 예학을 學官의 三家로 정립하였다. 《經學辭典》 四川人民出版社
역주9 戴聖 : 小戴라고도 한다. 자는 次君이며 梁人이다. 西漢의 금문경학가로서 九江太守에 임명되었다. 숙부인 戴德과 함께 后蒼에게서 수업을 받았다. 小戴派 예학의 개창자가 되었다. 宣帝 때 學官의 예경학박사가 되었다. 고대로부터 전래된 예와 관련된 문헌을 정리하여 모두 49편으로 만들었는데 이것이 《小戴禮記》이다. 이 책은 광범위하게 유통되어 《禮記》하면 바로 이 책을 지칭하는 것이 되었다. 즉 현재의 十三經에 포함된 《禮記》가 바로 이 《小戴禮記》이다. 《經學辭典》 四川人民出版社

예기집설대전(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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