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禮記集說大全(2)

예기집설대전(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예기집설대전(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45301 戰于郞할새 公叔禺人 遇負杖入保者息曰 使之雖病也 任之雖重也 君子不能爲謀也 士弗能死也 不可하니라
我則旣言矣라하고 與其隣重汪踦往하야 皆死焉하니
魯人欲勿殤重汪踦하야 問於仲尼한대 仲尼曰 能執干戈하야 以衛社稷하니 雖欲勿殤也 不亦可乎
集說
≪集說≫ 戰于郞 魯哀公十一年 齊伐魯也
禺人 昭公子公爲也
遇魯人之避齊師而入保城邑者疲倦之餘 負其杖而息于塗하고 禺人乃歎之曰 徭役之煩 雖不能堪也 稅斂之數雖過於厚也 若上之人 協心以禦寇難이면 猶可塞責也어늘 今卿大夫不能畫謀策하고 士不能捐身以死難하니 豈人臣事君之道哉 甚不可也 我旣出此言矣 可不思踐吾言乎아하고 於是與其隣之童子汪踦者皆往하야 鬪而死於敵하니
魯人 以踦有成人之行이라하야 欲以成人之喪禮葬之한대 而孔子善其權禮之當也
大全
≪大全≫ 長樂陳氏曰 君子之於人 視其行하고 不視其年이라 年雖壯而無成이면 處之以童 可也 是也 年雖穉而有成이면 處之以成人 可也 汪錡之勿殤 是也


나라와 나라가 낭읍郞邑에서 전쟁할 때 공숙우인公叔禺人이, 피곤한 백성들이 지팡이에 의지한 채 난리를 피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가 쉬고 있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국가에서 부역賦役시킴이 비록 백성들을 병들게 하며, 세금을 부담시킴이 비록 무겁더라도 군자君子가 국가를 위하여 도모하지 못하고, 국난國難에 죽지 못한다면 옳지 못한 것이오.
내가 이미 말을 하였소.”라고 하고는, 그 이웃 마을의 동자인 왕기汪踦와 함께 전쟁터로 달려가서 싸우다가 모두 죽었다.
노나라 사람들이 동자인 왕기가 성인成人의 행실이 있다 하여 상례殤禮로 장사지내지 않고자 해서 중니仲尼에게 질문하니, 중니께서 말씀하시기를 “동자가 거뜬히 방패와 창을 잡고서 사직社稷을 보호하였으니, 비록 상례殤禮로 장사지내지 않으려 하나 또한 옳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集說
낭읍郞邑에서 전쟁을 벌인 것은 나라 애공哀公 11년에 나라가 나라를 정벌한 것이다.
우인禺人소공昭公의 아들 공위公爲이다.
노나라 사람이 제나라 군대를 피해 성읍城邑으로 들어가서 피곤한 나머지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길가에서 쉬고 있는 것을 보고, 우인禺人이 이에 탄식하면서 말하기를 “부역의 번거로움을 비록 감당할 수가 없으며, 조세를 거두어들이는 수량이 비록 지나치게 무겁더라도 만약 위에 있는 사람들이 협심協心하여 도적盜賊의 난을 막는다면 그런대로 책임을 다할 수 있건만, 지금 경대부卿大夫들은 계책을 내지 못하고 는 몸을 바쳐 국난國難에 죽지 못하고 있으니, 이것이 어찌 남의 신하로서 임금을 섬기는 도리이겠는가. 매우 옳지 않다. 나는 이미 이런 말을 꺼냈으니 내가 한 말을 실천할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고, 이에 그 이웃의 동자인 왕기汪踦와 함께 가서 싸우다가 적에게 죽으니,
노나라 사람들이 왕기가 성인成人의 행적이 있다고 여겨 성인의 상례喪禮로 그를 장사葬事지내 주려고 하였는데, 공자孔子께서 그 권도權道를 적용함이 타당함을 좋게 여기신 것이다.
大全
장락진씨長樂陳氏군자君子는 사람에 대해 그의 행실을 살펴보고 그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 나이가 비록 장성하였으나 성인成人의 행실을 이룬 것이 없으면 어린아이로 대우하는 것이 옳으니, 정홀鄭忽을 교활한 어린이라고 한 것과 소공昭公이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 것이 이것이고, 나이가 비록 어리더라도 성인의 행실을 이룬 것이 있으면 성인으로 대우하는 것이 옳으니, 왕기汪錡상례殤禮로 장사지내지 않은 것이 이것이다.


역주
역주1 鄭忽之狡童 : 鄭忽은 鄭나라의 公子이고, 狡童은 미친 짓을 하는 교활한 아이라는 뜻이다. ≪詩經≫ 〈鄭風 狡童〉의 교동은 교활한 동자를 풍자한 시인데, 毛萇의 ≪詩傳≫에 “교동은 정홀을 풍자한 것이니, 현인과 국가의 중대한 일을 도모하지 못하여 권신이 명령을 제멋대로 내린 것이다.[狡童刺忽也 不能與賢人圖事 權臣擅命也]”라고 하였다.
역주2 昭公之童心 : ≪春秋左氏傳≫ 襄公 31년에 “襄公의 장사 때까지 公子 裯는 세 차례 喪服을 바꾸어 입었으나, 바꾸어 입은 상복의 옷자락이 전에 입던 상복의 옷자락과 같아졌으니, 이때 昭公의 나이가 19세였는데도 오히려 童心이 있었던 것이다. 君子는 이로 인해 그가 제 壽命대로 죽지 못할 것을 알았다.[比及葬 三易衰 衰衽如故衰 於是昭公十九年矣 猶有童心 君子是以知其不能終也]”고 하였다.

예기집설대전(2) 책은 2022.12.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