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701 太公封於營丘하야늘 比及五世히 皆反葬於周한대
君子曰 樂은 樂其所自生이요 禮는 不忘其本이니 古之人有言曰 狐死正丘首는 仁也라하니라
集說
≪集說≫ 太公雖封於齊나 而留周爲太師라 故死而遂葬於周하니 子孫不敢忘其本이라 故亦自齊而反葬於周하야 以從先人之兆하야 五世親盡而後止也니라
樂生而敦本은 禮樂之道也라 生而樂於此니 豈可死而倍於此哉아
狐雖微獸나 丘其所窟藏之地니 是亦生而樂於此矣라 故及死而猶正其首以向丘하니 不忘其本也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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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疏曰 周公封魯에 其子孫이 不反葬於周者는 以有次子在周하야 世守其采地니 春秋周公이 是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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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全≫ 長樂陳氏曰 禮樂
은 同出於人心
하고 而仁者
는 人也
니 亦出於人心而已
라 故
리오하니 則禮樂之道
는 不過章德報情而反始也
라
太公封於營丘하야 比及五世히 皆反葬於周하니 夫豈僞爲之哉리오
行吾仁以全禮樂之道而已라 狐死猶正丘首어늘 況仁人孝子乎아
태공太公이 영구營丘에 봉해졌지만 〈주周나라에 머물러 벼슬하다가 죽었기 때문에〉 그 후 5대代에 이르기까지 〈그 자손들이〉 주나라로 돌아가서 장사葬事를 지냈다.
군자가 말하였다. “낙樂은 말미암아 태어난 바를 즐거워하는 것이고, 예禮는 그 근본을 잊지 않는 것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바르게 해서 고향 언덕을 향하는 것은 인仁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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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공太公이 비록 제齊나라에 봉해졌지만 주周나라에 머물면서 태사太師가 되었다. 그러므로 그가 죽자 마침내 주나라에서 장사葬事를 지냈으니, 자손子孫들이 감히 그 근본을 잊을 수 없었기 때문에 또한 제나라로부터 주나라로 돌아와 장사를 지내어 선조의 묘역을 따르다가 5대代가 지나 친족의 대수代數가 다한 뒤에야 멈추었다.
태어남을 즐거워하고 근본을 돈독히 함은 예악禮樂의 도道이다. 태어나 이곳에서 즐거워하였는데, 어찌 죽는다고 이 근본을 배반할 수 있겠는가?
여우가 비록 하찮은 짐승이지만 언덕은 자기가 굴을 파 은신하던 땅이니, 이 여우 또한 태어나 이곳에서 즐거워했기 때문에 죽음에 이르러서도 오히려 그 머리를 바르게 해서 언덕을 향한 것이니, 근본을 잊지 않은 것이다.
근본을 배반하고 처음을 잊어버리는 것은 인仁한 사람의 마음씀이 아니기 때문에 인仁을 가지고 그것을 지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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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疏(공영달孔穎達):주공周公이 노魯나라에 봉해졌는데 그 자손들이 주周나라로 돌아가 장사지내지 않았던 것은 둘째 아들 군진君陳이 주나라에 있으면서 대대로 그 채지采地를 지켰기 때문이니, 춘추시대春秋時代 때 주공이 바로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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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락진씨長樂陳氏:예禮와 악樂은 똑같이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고, 인仁이란 사람다움이라는 뜻이니 역시 사람의 마음에서 나올 뿐이다. 그러므로 “사람으로서 인仁하지 못하면 예禮를 어떻게 하겠으며, 사람으로서 인仁하지 못하면 악樂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으니, 예악禮樂의 도道는 덕德을 드러내고 정情에 보답해서 처음(조상)에 보답하는 것에 불과하다.
태공太公이 영구營丘에 봉해져서 그 뒤 5대代에 이르기까지 〈자손들이〉 모두 주周나라로 돌아와 장사지냈으니, 어찌 거짓으로 한 것이겠는가?
나의 인仁을 행하여 예악禮樂의 도道를 온전히 한 것일 뿐이다. 여우가 죽을 때에도 오히려 머리를 바르게 해서 언덕을 향하는데, 하물며 인仁한 자와 효자孝子에게 있어서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