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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記集說大全(2)

예기집설대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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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집설대전(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45501 工尹商陽 與陳棄疾追吳師할새 及之러니 陳棄疾謂工尹商陽曰 王事也 子手弓而可니라
手弓이어늘 子射諸인저 射之하야 斃一人하고 韔弓이어늘
又及謂之한대 又斃二人하니 每斃一人 揜其目하고 止其御曰 朝不坐하며 燕不與어늘 殺三人하니 亦足以反命矣라하야늘
孔子曰 殺人之中에도 又有禮焉이라하시니라
集說
≪集說≫ 工尹 楚官名이라 追吳師 事在魯昭公十二年이라 子手弓而可爲句하니 使之執弓也
手弓 商陽之弓在手也 弓衣也
謂之 再告之也
掩目而不忍視하고 止御而不忍驅 有惻隱之心焉이라
商陽自言位卑禮薄하니 如此亦可以稱塞矣
孔子謂其有禮 以敗北之師本易窮而商陽乃能節制其縱殺之心하니 是仁意與禮節竝行이요 非事君之禮止於是也
特取其善於追敗者 亦非謂臨敵未決而不忍殺人也
集說
○疏曰 朝與燕 皆在寢하니 則大夫以下皆立하고在於路寢이면 則大夫坐於上이니 是也 升堂則坐矣니라
燕亦在寢하니 燕禮獻卿大夫之後 西階上獻士하고 無升堂之文하니 是士立於下也
鄭註 射者在左하고 戈盾在右하고 御在中央이라하니 謂兵車參乘之法이니 此謂凡常戰士
若是元帥 則在中央鼓下하고 御者在左하고 戈盾亦在右 若天子諸侯親將이면 亦居鼓下 若非元帥 則皆在左하고 御者在中이요 若非兵車 則尊者在左
大全
≪大全≫ 長樂陳氏曰 從君之大義而忘己之不忍 君子之所不爲 行己之不忍而廢君之命 君子之所不敢이라
楚工尹商陽 追吳師而射之하야 每斃一人則掩其目 其所不忍이니 仁也 不廢君之命 義也
禮者 仁義而已 此孔子所以謂之有禮也
大夫於朝則坐하고 於燕則與 故其責重하고 士於朝則立하고 於燕則不與 故其責輕이라
商陽所殺 止於三者 姑以成禮而已
然則朝坐燕與爲商陽者 如之何리오 曰彼必陳善以閉邪하야 引君以當道하야 有所不戰이요 戰之라도 所以止戰이며 有所不殺이요 殺之라도 所以止殺이니 庸有不義之擧哉
商陽以楚爲不義而不去 何也
君子去處有道하고 廢興有命이라
天下皆齊也 하시고 天下皆魯也 하시니 然則天下皆楚也로대 商陽不去楚런들 君子豈以爲非禮哉


공윤工尹 상양商陽진기질陳棄疾과 함께 나라 군대를 추격할 때 오나라 병사를 따라 잡았는데, 진기질陳棄疾공윤工尹 상양商陽에게 일러 말하기를 “의 일이니, 그대의 손으로 활을 잡는 것이 좋겠소.”라고 하였다.
공윤 상양이 그의 말을 따라 손에 활을 잡자, 진기질이 말하기를 “그대는 쏘아 맞추시오!” 하니, 공윤 상양이 쏘아 맞추어 한 사람을 죽이고 활을 활집에 넣었다.
또 오나라 군대를 따라잡아 쏘아 맞추라고 하니, 또 두 사람을 죽였는데, 매번 한 사람을 죽일 때마다 자신의 눈을 가리고 말 모는 자를 멈추게 하고는 말하기를 “내가 조정에 참여하여 앉지 못하고 연향에 참석하지도 못하는데 지금 세 사람을 죽였으니, 또한 충분히 복명復命할 만하다.” 하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을 죽이는 중에도 또한 예의가 있구나.”
集說
공윤工尹나라의 관직 이름이다. ‘나라 군대를 추격한 것’은 사실이 나라 소공昭公 12에 있다. ‘자수궁이가子手弓而可’가 한 구절이 되니, 그로 하여금 활을 잡도록 했다는 뜻이다.
수궁手弓상양商陽의 활이 손에 있는 것이다. 은 활집이다.
위지謂之는 재차 그에게 말한 것이다.
눈을 가리고서 차마 보지 못하고 말 모는 자를 멈추게 해서 차마 수레를 몰지 못하게 하는 것은 측은한 마음이 있어서이다.
상양商陽이 스스로 “지위가 낮고 하니, 이 정도로도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공자孔子께서 그가 예의가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패배한 군대는 본래 궁지에 몰리기 쉬운데 상양은 함부로 죽이는 마음을 절제했기 때문이니, 이는 한 생각과 의 절도를 나란히 행한 것이지, 임금을 섬기는 가 여기에서 그쳐야 함을 말한 것은 아니다.
다만 패배한 군대를 추격함에 있어서 잘한 것만 취한 것일 뿐이지, 또한 적과 대적함에 아직 결판도 나지 않았는데 차마 사람을 죽이지 못함을 말한 것은 아니다.
集說
:조회와 연향은 모두 에서 하니 만약 노문路門 밖의 정조正朝라면 대부大夫 이하가 모두 서 있고, 만약 노침에 있는 연조燕朝에서 하면 대부가 위에 앉게 되니, 예컨대 “공자孔子께서 옷자락을 가다듬고서 당에 오르셨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당으로 올라가게 되면 앉는 것이다.
연향 역시 노침에서 하는데, ≪의례儀禮≫ 〈연례燕禮〉에 술잔을 경대부卿大夫에게 올린 뒤에 서쪽 계단 위에서 에게 술잔을 올린다고만 하고, 당에 올라간다는 글은 없으니 이는 는 당 아래에 서 있는 것이다.
정현鄭玄에 “활을 쏘는 사람은 수레의 왼쪽에 있고, 창과 방패를 잡은 사람은 오른쪽에 있으며, 수레를 모는 사람은 중앙에 있다.”고 했는데, 이는 병거兵車에 임금을 모시고 타는 법을 말한 것이다. 여기에 있는 내용은 일반 전투 병사를 말한 것이다.
만약 원수元帥라면 중앙의 북 아래에 있고, 수레를 모는 사람은 왼쪽에 있으며, 창과 방패를 잡은 사람은 또한 오른쪽에 있고, 만약 천자天子제후諸侯가 친히 군대를 거느리면 역시 북 아래에 있으니, 만약 원수元帥가 아니라면 모두 왼쪽에 있고, 수레를 모는 사람이 중앙에 있으며, 만약 병거가 아니라면 높은 사람이 왼쪽에 있다.
大全
장락진씨長樂陳氏:임금의 대의를 따르고 자신의 차마하지 못하는 마음을 잊는 것은 군자가 하지 않는 바이며, 자신의 차마하지 못하는 마음을 행하고 임금의 명을 폐기하는 것은 군자가 감히 하지 못하는 바이다.
나라의 공윤工尹 상양商陽나라 군대를 추격해서 활을 쏘아 맞추어 매번 한 사람씩 죽일 때마다 자신의 눈을 가린 것은 그의 차마하지 못하는 마음 때문이었으니 이는 이고, 임금의 명을 폐기하지 않은 것은 이다.
일 따름이니, 이것이 공자孔子께서 상양을 예가 있다고 평하신 까닭이다.
대부大夫는 조정에 참여해서는 앉고 연향에는 참석하기 때문에 그 책무가 중하고, 는 조정에 참여해서는 서 있고 연향에는 참석하지 않기 때문에 그 책무가 가볍다.
상양이 죽인 것이 세 사람에 그친 것은, 일단 이 정도로 예를 이룬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조정에 참여해서는 앉고 연향에 참석하는 자가 상양과 같은 입장이 된다면 어찌해야 하겠는가? 그런 사람은 반드시 을 개진하여 사특함을 막아 마땅한 도리로써 임금을 인도해서 전쟁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전쟁을 하더라도 전쟁을 멈추기 위한 것이어야 하며, 사람을 죽이지 않도록 해야 하고, 죽이더라도 살인을 멈추기 위한 것이어야 하니, 어찌 불의不義한 일이 있겠는가?
상양이 나라를 의롭지 못하다고 여기면서도 떠나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군자는 떠나거나 머물 때 가 있고, 하거나 할 때 이 있다.
천하 사람들이 모두 나라에 뜻을 두고 있을 때 진문자陳文子가 제나라를 떠났지만 공자께서는 하다고 여기지 않으셨고, 천하 사람들이 모두 나라에 뜻을 두고 있을 때 유하혜柳下惠가 노나라를 떠나지 않았지만 맹자孟子께서는 성인聖人이 아니라고 여기지 않으셨으니, 그렇다면 천하 사람들이 모두 초나라에 뜻이 있었지만, 상양이 초나라를 떠나지 않았다고 해서 군자가 어찌 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역주
역주1 路門 : 天子의 궁궐 문 가운데 하나이다. ≪周禮≫〈天官 閽人〉 鄭玄의 注에 “천자의 궁궐 문은 다섯으로, 바깥에서부터 皐門, 庫門, 雉門, 應門, 路門의 순으로 되어 있다.[王有五門 外曰臯門 二曰雉門 三曰庫門 四曰應門 五曰路門]”고 했다. 제후의 문은 셋으로, 바깥에서부터 庫門, 雉門, 路門의 순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여러 가지 異說이 있다.
역주2 正朝 : 임금이 신하들의 朝會를 받는 곳으로, 應門의 안, 路門의 밖에 正朝가 있었다.
역주3 燕朝 : 天子는 內朝․治朝․燕朝의 3朝가 있는데, 內朝는 路門 안에 있으면서 천자와 제후가 정사를 처리하는 곳이고, 治朝는 노문 밖에 있어 群臣이 정사를 보는 곳으로, 中朝라고도 하며, 燕朝는 노문 안에 있으면서 천자나 제후가 정무를 처리한 뒤에 휴식을 취하는 장소를 말한다.
역주4 孔子攝齊(자)升堂 : ≪論語≫ 〈鄕黨〉에 “옷자락을 가다듬고서 당에 오를 때는 몸을 수굿이 하였으며, 숨을 죽여 마치 숨 쉬지 않는 사람 같았다.[攝齊升堂 鞠躬如也 屛氣似不息者]”라고 하였다.
역주5 路寢 : 임금의 居所를 寢이라 하는데 중앙에 있는 正殿을 路寢이라 하고, 그 동서 양쪽에 있는 便殿을 小寢이라 한다.
역주6 陳文子去齊 孔子不以爲仁 : ≪論語≫ 〈公冶長〉에 “〈子張이 묻기를〉 ‘崔子가 齊나라 임금을 시해하자, 陳文子는 말 10乘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이를 버리고 떠나 다른 나라에 이르러서 말하기를 「우리나라 대부 최자와 같은 자가 있다.」 하고 그곳을 떠났으며, 다른 나라로 가서 또 말하기를 「우리나라 대부 최자와 같은 자가 있다.」 하고 떠나갔는데, 어떻습니까?’라고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청렴하구나.’ 자장이 ‘仁한 것입니까?’라고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모르겠다. 어찌 仁이 될 수 있겠느냐?’[崔子弑齊君 陳文子有馬十乘 棄而違之 至於他邦 則曰猶吾大夫崔子也 違之 之一邦 則又曰猶吾大夫崔子也 違之 何如 子曰 淸矣 曰仁矣乎 曰未知 焉得仁]”라고 하였다.
역주7 柳下惠不去魯 孟子不以爲非聖 : ≪孟子≫ 〈公孫丑 上〉에 “魯나라 대부 柳下惠는 더러운 군주 섬기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며, 작은 벼슬을 하찮게 여기지 않았다. 벼슬에 나아가면 자기의 현명함을 숨기지 않고 반드시 자기 도리를 다하였으며, 벼슬길에서 버림받아도 원망하지 않았고 곤액을 당하여도 근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유하혜가 말하기를 ‘너는 너이고 나는 나이니, 네가 내 곁에서 옷을 걷고 맨 몸을 드러낸들 네가 어찌 나를 더럽힐 수 있겠는가?’ 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느긋하게 남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스스로 올바름을 잃지 않아서 떠나려고 하다가도 만류하여 멈추게 하면 멈추었다. 만류하여 멈추게 하면 멈춘 것은 또한 떠나감을 좋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柳下惠 不羞汚君 不卑小官 進不隱賢 必以其道 遺佚而不怨 阨窮而不憫 故曰爾爲爾 我爲我 雖袒裼裸裎於我側 爾焉能浼我哉 故由由然與之偕而不自失焉 援而止之而止 援而止之而止者 是亦不屑去已]”라고 하였다.

예기집설대전(2) 책은 2022.12.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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