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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書正義(1)

상서정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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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정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帝釐下土하여 方設居方하시고
제순帝舜하토下土를 다스리는 차원에서 바야흐로 관직을 설치하여 그 자리에 앉히시고,
[傳]言舜理四方諸侯하여 各設其官居其方이니라
임금이 사방四方제후諸侯를 다스리는 차원에서 각각 그 관직을 설치하여 그 지방에 거처시킴을 말한 것이다.
○釐 馬云 賜也 理也
에 대하여 마융馬融은 “하사下賜하다라는 뜻도 있고 다스리다라는 뜻도 있다.”라고 하였다.
下土絶句하고 讀至方字絶句니라
하토下土’에 구두를 떼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자까지 가서 구두를 떼기도 한다.
別生分類하시니라
족속을 구별하고 종류를 분별하셨다.
[傳]生 姓也
의 뜻이다.
別其姓族하고 分其類하여 使相從이니라
성족姓族을 구별하고 그 종류를 분별하여 서로 따르게 하셨다.
作汨作
골작汨作〉과
[傳]汨 興也 言其治民之功興이라
은 다스리다라는 뜻이요, 은 일어나다라는 뜻이니, 그 백성을 다스리는 공이 일어남을 말한 것이다.
故爲汨作之篇이니이니라
그러므로 〈골작汨作〉篇을 지은 것인데, 없어졌다.
九共九篇槁飫니라
구공九共〉 9과 〈고어槁飫〉를 지었다.
[傳]槁 勞也 賜也
는 위로하다라는 뜻이요, 는 하사하다라는 뜻이다.
凡十一篇이니 皆亡이니라
모두 11인데, 모두 없어졌다.
○槁飫 亦書篇名也
○〈고어槁飫〉도 《》의 편명篇名이다.
汨作等十一篇 同此序러니 其文皆亡하고 而序與百篇之序同編이라 故存이니라
골작汨作〉 등 11은 이 서문을 함께하였는데, 그 글은 다 없어지고 서문만 100의 서문과 함께 편집되었기 때문에 존재한 것이다.
今馬鄭之徒 百篇之序 總爲一卷하고 孔以各冠其篇首하고 而亡篇之序 卽隨其次篇하여 居見存者之間이니라
지금 마융馬融정현鄭玄의 무리는 100의 서문을 모두 1으로 만들었고, 공안국孔安國은 각각 그 편수篇首에 놓고, 없어진 의 서문은 곧 그 차례에 따라 현존한 의 서문 사이에 끼워놓았다.
衆家經文竝盡此하니 惟王注本下 更有汩作九共故逸이라
중가衆家경문經文에는 모두 이것이 다 없는데, 오직 왕주본王注本 아래에만 다시 “〈율작汩作〉과 〈구공九共〉은 예전에 일실되었다.”는 말이 있다.
故亦作古니라
는 또한 로도 되어있다.
[疏]‘帝釐’至‘槁飫’
서서書序의 [帝釐]에서 [槁飫]까지
○正義曰:此序也.
정의왈正義曰:이것은 서문이다.
孔以書序, 序所以爲作者之意, 宜相附近,
공안국孔安國은 “서서書序작자作者의 뜻을 밝히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서로 가까이 붙여야 된다.”고 생각했다.
故引之各冠其篇首.
그러므로 끌어다가 각각 그 편수篇首에 놓았다.
其經亡者, 以序附於本篇次而爲之傳,
이 없어진 것은 서문을 본편本篇의 자리에 붙여서 전하였다.
故此序在此也.
그러므로 이 서문이 여기에 있게 된 것이다.
帝舜治理下土諸侯之事, 爲各於其方, 置設其官, 居其所在之方而統治之.
제순帝舜하토下土제후諸侯들의 일을 다스리는 차원에서 각각 그 지방에 관직을 설치하여 그 기관이 있는 지방에 앉아서 통치하게 하였다.
又爲民別其姓族之生, 分別異類, 各使相從.
또 백성을 위하여 그 성족姓族의 생태를 구별하고 다른 종류를 분별하여 각각 서로 따르게 하셨다.
作汨作篇, 又作九共九篇, 又作槁飫之篇, 凡十一篇, 皆亡.
골작汨作〉篇을 짓고, 또 〈구공九共〉 9을 짓고, 또 〈고어槁飫〉篇을 지었으니, 모두 11이었는데, 다 없어졌다.
[疏]傳‘言舜’至‘其方’
의 [言舜]에서 [其方]까지
○正義曰:在虞書, 知帝是舜也.
정의왈正義曰:〈우서虞書〉에 있으니, 가 바로 임금이란 것을 안 것이다.
下土對天子之辭, 故云 “理四方諸侯, 各爲其官居其方.”
하토下土천자天子를 상대한 말이기 때문에 “사방四方제후諸侯를 다스리는 차원에서 각각 그 관직을 설치하여 그 지방에 거처시켰다.”고 한 것이다.
不知若爲設之.
왜 그렇게 설치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凡此三篇之序, 亦旣不見其經, 闇射無以可中.
이 3의 서문 또한 그 을 이미 볼 수 없으니, 추측하여 맞출 수 없다.
孔氏爲傳, 復順其文爲其傳耳, 是非不可知也.
공안국孔安國(경서의 주해注解)을 단 것은 다시 그 글에 따라서 그 을 달았을 뿐이니, 옳고 그른 것을 알 수 없다.
他皆倣此.
다른 경우도 모두 이와 같이 보아야 할 것이다.
[疏]傳‘汨治’至‘篇亡’
의 [汨治]에서 [篇亡]까지
○正義曰:汨之爲治, 無正訓也.
정의왈正義曰:의 뜻으로 풀이한 것은 정례적인 풀이가 없는 것이다.
作是起義,
은 바로 의 뜻을 가졌다.
故爲興也.
그러므로 이라 한 것이다.
‘言其治民之功興’, 以意言之耳.
[言其治民之功興] 뜻을 가지고 말했을 뿐이다.
[疏]傳‘槁勞也’‧‘飫賜也’
[槁勞也]와 [飫賜也]
○正義曰:左傳言‘犒師’者, 以師枯槁, 用酒食勞之, 是槁得爲勞也.
정의왈正義曰:《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말한 ‘호사犒師’는 군사가 빠짝 말랐기 때문에 주식酒食 가지고 위로한 것이니, 여기서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襄二十六年左傳云 “將賞, 爲之加膳, 加膳則飫賜.” 是飫得爲賜也.
양공襄公 26년 조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 주려고 할 때에는 〈상을 받을 자를 위하여〉 밥그릇 수를 더하였으니 밥그릇 수를 더하면 남은 것을 아랫사람에게 배불리 먹일 수 있다.”라고 하였으니, 여기서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亦不知勞賜之何所謂也.
그러나 또한 위로해준 것이 무엇을 이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역주
역주1 [一] : 저본에는 없으나, 《經典釋文》에 근거하여 보충하였다.

상서정의(1) 책은 2019.11.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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