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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書注疏(3)

상서정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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仲虺之誥 第二
孔氏 傳 孔穎達 疏
湯歸自夏하사 至於大坰하시다
[傳]自三朡而還이라 大坰 地名이라
仲虺作誥
[傳]爲湯左相이니 奚仲之後
[疏]‘湯歸’至‘作誥’
○正義曰:湯歸自伐夏, 至於大坰之地, 其臣仲虺作誥以誥湯, 錄其言, 作仲虺之誥.
上言‘遂伐三朡’, 故傳言‘自三朡而還’. 不言‘歸自三朡’, 而言‘歸自夏’者,
伐夏而遂逐桀, 於今方始旋歸, 以自夏告廟, 故序言‘自夏’. 傳本其來處, 故云‘自三朡’耳.
‘大坰 地名’, 未知所在, 當是定陶向亳之路所經.
湯在道而言‘予恐來世以台爲口實’. 故仲虺至此地而作誥也. 序不言‘作仲虺之誥’, 以理足文便, 故略之.
[疏]○傳‘爲湯’至‘之後’
○正義曰:定元年左傳云 “薛之皇祖奚仲居薛, 以爲夏車正, 仲虺居薛, 以爲湯左相.” 是其事也.
仲虺之誥
[傳]仲虺 臣名이니 以諸侯 相天子 會同曰誥
[疏]‘仲虺之誥’
○正義曰:發首二句, 史述成湯之心, 次二句, 湯言己慙之意, 仲虺乃作誥. 以下皆勸湯之辭.
自‘曰嗚呼’至‘用爽厥師’, 言天以桀有罪, 命伐夏之事. 自‘簡賢勢’至‘言足聽聞’, 說湯在桀時怖懼之事.
自‘惟王弗邇聲色’至‘厥惟舊哉’, 言湯有德行加民, 民歸之事.
自‘佑賢輔德’以下, 說天子之法, 當擢用賢良, 屛黜昏暴, 勸湯奉行此事, 不須以放桀爲惡.
康誥‧召誥之類, 字足以爲文, ‘仲虺誥’三字不得成文, 以‘之’字足成其句.
畢命‧冏命不言‘之’, 微子之命‧文侯之命言‘之’, 與此同, 猶周禮司服言‘大裘而冕’, 亦足句也.
[疏]○傳‘仲虺’至‘曰誥’
○正義曰:伯仲叔季, 人字之常, ‘仲虺’必是其名, 或字仲而名虺. 古人名或不可審知.
縱使是字, 亦得謂之爲名, 言是人之名號也. 左傳稱‘居薛, 爲湯左相’, 是‘以諸侯相天子’也.
周禮士師云 “以五戒先後刑罰, 一曰誓, 用之於軍旅, 二曰誥, 用之於會同.”
是‘會同曰誥’, ‘誥’謂於會之所, 設言以誥衆.
因解諸篇‘誥’義, 且仲虺必對衆誥湯, 亦是‘會同曰誥’.
成湯 放桀于南巢하시고 惟有慙德하사
[傳]湯伐桀하여 武功成이라 以爲號 南巢 地名이라 有慙德 慙德不及古
○湯伐桀하여 武功成이라 號成湯이라 一云 成 謚也라하니라
曰 予恐來世 以台爲口實하노라
[傳]恐來世 論道我放天子 常不去口


湯임금이 夏나라로부터 돌아와 大坰에 이르셨다.
三朡으로부터 돌아왔다. 大坰은 땅 이름이다.
仲虺가 誥를 지었다.
〈仲虺는〉 湯임금의 左相이 되었는데, 奚仲의 후손이다.
書序의 [湯歸]에서 [作誥]까지
○正義曰:湯임금이 夏나라를 치고 그곳에서 바로 돌아와 大坰의 땅에 이르자, 그 신하인 仲虺가 誥를 지어 湯에게 고하였기 때문에 史官이 그 말을 기록하여 〈仲虺之誥〉를 지었다.
〈의 〈典寶〉 書序〉에서 “드디어 三朡을 쳤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傳에서 “三朡으로부터 돌아왔다.[自三朡而還]”라고 말한 것이다. 〈〈典寶〉 書序에서〉 “三朡으로부터 돌아왔다.[歸自三朡]”라고 말하지 않고 “夏나라로부터 돌아왔다.”라고 말한 것은
夏나라를 치고 드디어 桀을 쫓아갔다가 지금에야 비로소 돌아왔고 夏나라에서 돌아와 사당에 고했다. 그러므로 書序에서는 ‘夏나라로부터’라고 말하고, 傳에서는 그가 온 곳을 推本했기 때문에 ‘三朡으로부터’라고 말한 것이다.
[大坰 地名] 어느 곳에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응당 定陶에서 亳으로 향하는 길이 지나가는 곳이었을 것이다.
湯임금이 길에서 “나는 행여 후세에 나를 〈천자를 추방한 사람으로〉 구실을 삼을까 두렵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仲虺가 이 땅에 이르러서 誥를 지은 것이다. 書序에서 ‘〈仲虺之誥〉를 지었다.’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이치상으로도 충분하고 문맥상으로도 그만하면 되었기 때문에 생략한 것이다.
○傳의 [爲湯]에서 [之後]까지
○正義曰:≪春秋左氏傳≫ 定公 원년 조에 “薛나라의 皇祖(太祖)인 奚仲은 薛에 살면서 夏나라의 車正이란 벼슬을 하였고, 〈그의 후손인〉 仲虺는 薛에 살면서 湯의 左相이란 벼슬을 하였다.”라는 것이 바로 이 일이다.
仲虺는 신하의 이름이니, 諸侯로서 天子를 도왔다. 會同에서는 ‘誥’라고 한다.
題篇의 [仲虺之誥]
○正義曰:첫머리의 두 句는 史官이 成湯의 마음을 기술한 것이고, 다음 두 句는 湯임금이 자기의 부끄러운 뜻을 말하자, 仲虺가 이에 誥를 지은 것이다. 이하는 모두 湯임금을 권면한 말이다.
‘曰嗚呼’에서 ‘用爽厥師’까지는 하늘이 桀에게 죄가 있기 때문에 명하여 夏나라를 치는 일을 말한 것이다. ‘簡賢附勢’에서 ‘言足聽聞’까지는 湯임금이 桀의 시대에 있어서 공포에 떤 일을 말한 것이다.
‘惟王弗邇聲色’에서 ‘厥惟舊哉’까지는 湯임금에게 德行이 있어 백성들에게 가해지자, 백성들이 귀의한 일을 말한 것이다.
‘佑賢輔德’으로부터 이하는 天子로서 행할 法은 마땅히 賢良한 사람을 뽑아 쓰고 昏暴한 사람을 내쳐야 함을 말한 것이니, 湯임금에게 이와 같은 일을 받들어 행하여 모름지기 桀을 방치하여 惡을 하지 못하게 할 것을 권면한 것이다.
〈康誥〉〮와 〈召誥〉 따위는 두 글자로도 충분히 문장을 만들 수 있었고, ‘仲虺誥’는 세 글자가 문장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之’자를 채워 句가 이루어지도록 한 것이다.
〈畢命〉과 〈冏命〉에서는 ‘之’자를 말하지 않았고, 〈微子之命〉과 〈文侯之命〉에서는 ‘之’자를 말하여 이와 같게 하기를 마치 ≪周禮≫ 〈司服〉에서 ‘大裘而冕(大裘를 입고 면류관을 쓰며)’이라고 말한 것처럼 하였으니, 또한 채워서 句가 이루어지도록 한 것이다.
○傳의 [仲虺]에서 [曰誥]까지
○正義曰:伯‧仲‧叔‧季는 사람의 字로서 일상적인 것이니, ‘仲虺’는 필시 그 이름이거나 아니면 字는 ‘仲’이고 이름은 ‘虺’일 것이다. 예전 사람의 이름은 더러 자세히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비록 字라 하더라도 또한 이름이라고 할 수 있으니, 〈아무튼〉 이 사람의 이름이나 號를 말한 것이다. ≪春秋左氏傳≫에 ‘薛에 살면서 湯의 左相이 되었다.’라고 칭하였으니, 이래서 ‘諸侯로 天子를 도왔다.’라고 한 것이다.
≪周禮≫ 〈秋官 士師〉에 “士師는 다섯 가지 경계를 가지고 刑罰을 도왔으니, 첫째는 ‘誓’인데 軍旅에서 사용하고, 둘째는 ‘誥’인데 會同에 사용했다.”라고 하였다.
이래서 “會同에서는 ‘誥’라 한다.”라고 하였으니, ‘誥’는 會同하는 곳에서 말하여 대중에게 고하는 것을 이른다. 여기서는 오직 湯임금 한 사람에게만 고했는데 ‘會同’이라고 말한 것은
이로 인해 諸篇에 있는 ‘誥’의 뜻을 풀이하기 위함이고, 또 仲虺가 반드시 군중을 상대해서 湯임금에게 誥하였을 것이니, 역시 ‘會同에서는 「誥」라 한다.’라는 것이다.
成湯이 桀을 南巢에 방치하고 慙德(부끄러운 마음)이 있어
湯임금이 桀을 쳐서 武功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成을〉 號로 삼은 것이다. 南巢는 地名이다. 有慙德은 德이 옛사람에 미치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긴 것이다.
○湯임금이 桀을 쳐서 武功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호를 ‘成湯’이라고 한 것이다. 일설에는 “成은 謚이다.”라고 하였다.
말씀하였다. “나는 행여 후세에 나를 〈천자를 추방한 사람으로〉 구실을 삼을까 두렵다.”
후세에 나를 天子를 추방한 사람이라고 평하는 말을 항상 입에 담을까 두렵다는 것이다.


역주
역주1 (使)[史] : 저본에는 ‘使’로 되어 있으나, “閩本‧監本‧毛本에는 ‘使’가 ‘史’로 되어 있으니, 살펴보건대 ‘史’자가 옳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史’로 바로잡았다.
역주2 (輔)[附] : 저본에는 ‘輔’로 되어 있으나, 經文에 의거하여 ‘附’로 바로잡았다.
역주3 (一)[二] : 저본에는 ‘一’로 되어 있으나, 阮元의 校勘記에 “毛本에는 ‘一’이 ‘二’로 되어 있다.”고 하였고, 문맥상 마땅히 ‘二’가 되어야 하므로 ‘二’로 바로잡았다.
역주4 [同] : 저본에는 없으나, “浦鏜이 ‘會 아래에 同자가 빠져 있다.’ 하였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同’을 보충하였다.
역주5 此惟誥湯一人……且仲虺必對衆誥湯 : 蔡傳에서는 “여기서는 단지 湯임금에게만 아뢴 것인데도 ‘誥’라고 한 것을 唐나라 孔氏(孔穎達)가 ‘仲虺 또한 반드시 대중을 상대해서 말한 것이리라.’고 하였으니, 아마 단지 湯임금의 부끄러움만을 풀어주기 위한 것이 아니고 또한 그 臣民과 衆庶를 깨우치기 위한 것이었으리라.[此但告湯 而亦謂之誥者 唐孔氏謂仲亦必對衆而言 蓋非特釋湯之慙 而且以曉其臣民衆庶也]”고 하였다.

상서정의(3) 책은 2019.10.0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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