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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書注疏(3)

상서정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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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 惟治하고 否德이면이라
[傳]爲政以德則治하고 不以德則亂이라
[傳]言安危在所任하고 治亂在所法이라
[疏]傳‘言安’至‘所法’
○正義曰:任賢則興, 任佞則亡, 故“安危在所任.” 於善則治, 於惡則亂, 故“治亂在所法.”
總言治國則稱‘道’, 單指所行則言‘事’. 興難而亡易, 道大而事小, 故大言‘興’而小言‘亡’也.
此所云惟言‘治亂在所法’耳. 下句云 “終始愼厥與”, 言當與賢不與佞, 治亂在於用臣, 故傳於此言‘安危在所任’也.
終始 愼厥與 니이다
[傳]明愼其所與治亂之機 則爲明王明君이라
[疏]‘惟明明后’
○正義曰:重言‘明明’, 言其爲大明耳. 傳因文重, 故言‘明王明君’. 君‧王猶是一也.


德으로 다스리면 나라가 다스려지고 德으로 다스리지 않으면 나라가 어지러워집니다.
정사를 德으로 하면 나라가 다스려지고, 德으로 하지 않으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는 것이다.
나라를 잘 다스릴 사람과 더불어 道를 함께하면 나라가 흥하지 않을 수 없고, 나라를 어지럽힐 사람과 더불어 일을 함께하면 나라가 망하지 않을 수 없으니,
安危는 어떤 사람을 임용하느냐에 달려 있고, 治亂은 어떤 사람을 본받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을 말한 것이다.
傳의 [言安]에서 [所法]까지
○正義曰:어진 사람을 임용하면 흥하고, 아첨하는 사람을 임용하면 망하기 때문에 “安危는 어떤 사람을 임용하느냐에 달려 있다.”라고 한 것이다. 좋은 사람을 본받으면 다스려지고 악한 사람을 본받으면 어지러워지기 때문에 “治亂은 어떤 사람을 본받느냐에 달려 있다.”라고 한 것이다.
나라를 다스림을 총체적으로 말할 경우에는 ‘道’라 칭하고, 행하는 바만을 단독으로 말할 경우에는 ‘事’라 말하였다. 흥하기는 어렵고 망하기는 쉬우며, 道는 크고 事는 작기 때문에 크게는 ‘興’을 말하고 작게는 ‘亡’을 말하였다.
여기서 이른바는 오직 ‘治亂은 어떤 사람을 본받느냐에 달려 있다.’라는 것만을 말했을 뿐이다. 下句에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할 대상자를 신중히 선택한다.”란 것은 마땅히 어진 사람과 더불어 함께하고 아첨하는 사람과 더불어 함께하지 않아야 함을 말한 것이니, 治亂이 신하를 임용하는 데 달려 있기 때문에 孔傳의 여기에서 ‘安危는 어떤 사람을 임용하느냐에 달려 있다.’라고 말한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할 대상자를 신중히 선택하는 것은 오직 明王과 明君만이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어진 사람과 함께 정치를 하면 나라가 다스려지는 길로 가는 법이고, 아첨하는 사람과 함께 정치를 하면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길로 가는 법이니,〉 함께할 대상자와 그 治亂의 갈림길을 밝게 삼가면 明王과 明君이 된다는 것이다.
經의 [惟明明后]
○正義曰:‘明明’이라고 明을 중첩하여 말한 것은 크게 밝음을 말한 것일 뿐이다. 傳에서 문장을 중첩함으로 인하여 ‘明王明君’이라고 말하였는데, 君과 王은 바로 동일한 것이다.


역주
역주1 與治……罔不亡 : 蔡傳에서는 “나라를 잘 다스리는 일은 본디 예전 사람 중에 실행한 이가 있었고, 나라를 어지럽게 만드는 일은 또한 본디 예전 사람 중에 실행한 이가 있었으니, 예전에 나라를 잘 다스린 이와 더불어 道를 함께하면 나라가 흥하지 않을 수 없고, 예전에 나라를 어지럽게 만든 이와 더불어 일을 함께하면 망하지 않을 수 없다.[治固古人有行之者矣 亂亦古人有行之者也 與古之治者同道 則無不興 與古之亂者同事 則無不亡]”라고 풀이하였다.
역주2 惟明明后 : 蔡傳에서는 “이미 밝은 것을 더 밝혀서 前者보다 더 진전시킨 임금[明其所已明 而進乎前者矣]”이라고 풀이하였다.

상서정의(3) 책은 2019.10.0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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