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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書注疏(2)

상서정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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皐陶曰 都 行有九德하니
[傳]言人性 行有九德하니 以考察眞僞則可知
亦言其人有德 乃言曰載采采니이다
[傳]載이요 事也 稱其人有德 必言其所行某事某事以爲驗이라
[疏]‘皐陶’至‘采采’
○正義曰:禹旣言知人爲難, 皐陶又言行之有術, 故言曰 “嗚呼. 人性雖則難知, 亦當考察其所行有九種之德.
人欲稱薦人者, 不直言可用而已, 亦當言其人有德. 問其德之狀, 乃言曰其德之所行某事某事. 以所行之事爲九德之驗, 如此則可知也.”
[疏]○傳‘言人’至‘可知’
○正義曰:‘言人性行有九德’, 下文所云是也. 如此九者, 考察其眞僞, 則人之善惡皆可知矣.
然則皐陶之賢不及帝堯遠矣. 皐陶知有此術, 帝堯無容不知, 而有四凶在朝, 禹言帝難之者.
堯朝之有四凶, 晦迹以顯舜爾. 禹言惟帝難之, 說彼甚佞, 因其成敗以示敎法, 欲開皐陶之志, 故擧大事以爲戒,
非是此實甚佞, 堯不能知也. 顧氏亦云 “堯實不以此爲難. 今云難者, 俯同流俗之稱也.”
[疏]○傳‘載行’至‘爲驗’
○正義曰:載者, 運行之義, 故爲行也. 此謂薦擧人者, 稱其人有德, 欲使在上用之,
必須言其所行之事, 云見此人, 常行其某事某事, 由此所行之事, 以爲有德之驗.
論語云 “如有所譽者, 其有所試矣.” 是言試之於事, 乃可知其德.
禹曰 何
[傳]問九德品例
皐陶曰 寬而栗하며
[傳]性寬弘而能莊栗이라
柔而立하며
[傳]和柔而能立事
愿而恭하며
[傳]慤愿而恭恪이라
亂而敬하며
[傳]亂 治也 有治而能謹敬이라
擾而毅하며
[傳]擾 順也 致果爲毅
直而溫하며
[傳]行正直而氣溫和
簡而廉하며
[傳]性簡大而有廉隅
剛而塞하며
[傳]剛斷而實塞이라
彊而義
[傳]無所屈撓 動必合義
[傳]彰이요 善也 明九德之常하여 以擇人而官之 則政之善이라
[疏]‘禹曰’至‘吉哉’
○正義曰:皐陶旣言其九德, 禹乃問其品例曰 “何謂也.” 皐陶曰 “人性有寬弘而能莊栗也, 和柔而能立事也,
慤愿而能恭恪也, 治理而能謹敬也, 和順而能果毅也, 正直而能溫和也, 簡大而有廉隅也, 剛斷而能實塞也, 强勁而合道義也.
人性不同, 有此九德. 人君明其九德所有之常, 以此擇人而官之, 則爲政之善哉.”
[疏]○傳‘性寬’至‘莊栗’
○正義曰:此九德之文, 舜典云 與此正同. 彼云 “剛而無虐, 簡而無傲.” 與此小異.
彼言‘剛失虐.’ 此言‘剛斷而能實塞.’ ‘實塞’亦是不爲虐.
彼言‘簡失(之)[入]傲.’ 此言‘簡大而有廉隅.’ ‘廉隅’亦是不爲傲也. 九德皆人性也.
鄭玄云 “凡人之性有異, 有其上者, 不必有下, 有其下者, 不必有上, 相協, 乃成其德.”
是言上下以相對, 各令以相對, 兼而有之, 乃爲一德. 此二者, 雖是本性, 亦可以長短自矯.
寬弘者, 失於緩慢, 故性寬弘而能矜莊嚴栗, 乃成一德. 九者皆然也.
[疏]○傳‘慤愿而恭恪’
○正義曰:愿者, 慤謹良善之名. 謹愿者, 失於遲鈍, 貌或不恭, 故慤愿而能恭恪, 乃爲德.
[疏]○傳‘亂治’至‘謹敬’
○正義曰:‘亂 治’, 釋詁文. 有能治者, 謂才高於人也, 堪撥煩理劇者也.
負才輕物, 人之常性, 故有治而能謹敬, 乃爲德也. 愿言恭, 治云敬者, 恭在貌, 敬在心.
愿者遲鈍, 外失於儀, 故言恭以表貌, 治者輕物, 內失於心, 故稱敬以顯情. 恭與敬, 其事亦通, 愿其貌恭而心敬也.
[疏]○傳‘擾順’至‘爲毅’
○正義曰:周禮大宰云 “以擾萬民.” 鄭玄云 “擾, 猶馴也.” 司徒云 “安擾邦國.” 鄭云 “擾, 亦安也.” 擾是安馴之義, 故爲順也.
‘致果爲毅’, 宣二年左傳文. 彼文以殺敵爲果, 致果爲毅, 謂能致果敢殺敵之心,
是爲强也. 和順者失於不斷, 故順而能決, 乃爲德也.
[疏]○傳‘性簡’至‘廉隅’
○正義曰:簡者, 寬大率略之名. 志遠者遺近, 務大者輕細, 弘大者失于不謹, 細行者不修廉隅, 故簡大而有廉隅, 乃爲德也.
[疏]○傳‘剛斷’至‘實塞’
○正義曰:塞, 訓實也. 剛而能斷, 失於空疎, 必性剛正而內充實, 乃爲德也.
[疏]○傳‘無所’至‘合義’
○正義曰:强直自立, 無所屈撓, 或任情違理, 失於事宜, 動合道義, 乃爲德也.
鄭注論語云 “剛謂强, 志不屈撓.” 卽剛‧强義同, 此剛‧强異者, 剛是性也, 强是志也.
當官而行, 無所避忌, 剛也. 執己所是, 不爲衆撓, 强也. 剛‧强相近, 鄭連言之.
寬謂度量寬弘, 柔謂性行和柔, 擾謂事理擾順, 三者相類, 卽洪範云‘柔克’也.
愿謂容貌恭正, 亂謂剛柔治理, 直謂身行正直, 三者相類, 卽洪範云‘正直’也.
簡謂器量凝簡, 剛謂事理剛斷, 强謂性行堅强, 三者相類, 卽洪範云‘剛克’也.
而九德之次, 從柔而至剛也. 惟擾而毅, 在愿‧亂之下耳. 其洪範三德, 先人事而後天地, 與此不同.
[疏]○傳‘彰明’至‘之善’
○正義曰:‘彰 明’‧‘吉 善’, 常訓也. 此句言用人之義. 所言九德, 謂彼人常能然者. 若暫能爲之, 未成爲德.
故人君取士, 必明其九德之常, 知其人常能行之, 然後以此九者之法, 擇人而官之, 則爲政之善也.
明謂人君明知之. 王肅云 “明其有常則善也, 言有德當有恒也.” 其意亦言彼能有常, 人君能明之也.
鄭云 “人能明其德, 所行使有常, 則成善人矣.” 其意謂彼人自明之, 與孔異也.


皐陶가 말하였다. “아, 훌륭한 말씀입니다. 또한 행실에 아홉 가지 德이 있으니,
사람의 성품은 실행에 아홉 가지 德이 있으니, 眞僞를 고찰하면 알 수 있을 것이란 말이다.
또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덕을 말할 때에는 그가 행한 것이 어떠어떠한 일이라고 말해야 될 것입니다.”
載는 行의 뜻이요, 采는 事의 뜻이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덕을 말할 때에는 반드시 그가 행한 것이 어떠어떠한 일임을 말해서 징험하는 것이다.
經의 [皐陶]에서 [采采]까지
○正義曰:禹가 이미 사람을 알아보기 어려운 점을 말했고, 皐陶가 또 행하는 데에 방법이 있음을 말하였다. 그러므로 “아. 사람의 성품은 비록 알기 어려우나 또한 마땅히 그가 행한 바에 아홉 가지 德이 있는가를 고찰해야 한다.
남에게 사람을 추천하고자 하는 사람은 다만 쓸 만한 사람이라고만 말해서는 안 되니, 또한 마땅히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德을 말해야 한다. 그 德의 실상을 묻거든 곧 ‘그 德 중에 행한 것은 어떤 일 어떤 일이다.’라고 말해서 〈그 사람이〉 행한 일을 아홉 가지 德의 징험으로 삼아야 한다. 이와 같이 하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라고 한 것이다.
○傳의 [言人]에서 [可知]까지
○正義曰:[言人性行有九德] 下文에서 말한 것이 이것이다. 이와 같은 아홉 가지에 대하여 그 진위를 고찰한다면 사람의 선악을 모두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皐陶의 어짊이 帝堯에 매우 미치지 못할 것이다. 皐陶는 이 방법이 있는 것을 알았고 帝堯는 아예 모르는 게 없었을 것인데도 四凶이 그 조정에 있었기 때문에 禹가 “帝堯도 어렵게 여기셨다.”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堯임금 조정에 있는 四凶은 자취를 숨겨 舜을 드러냈을 뿐이다. 禹가 “帝堯도 어렵게 여기셨다.”라고 말한 것은 저 四凶이 몹시 아첨하는 것을 말함에 그 성패로 인하여 敎法을 보여 皐陶의 뜻을 열어주려 하였기 때문에 큰일을 들어 경계한 것이지,
四凶이 실제로 매우 간사했는데 堯가 능히 알지 못한 것은 아니다. 顧氏(顧彪)도 “堯는 실제로 이것을 어렵게 여기지 않았다. 지금 ‘어렵다’고 이른 것은 아래로 流俗과 같이함을 일컫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傳의 [載行]에서 [爲驗]까지
○正義曰:載는 運行의 뜻이기 때문에 行이라고 한 것이다. 이는 “사람을 천거하는 자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德을 일컬어서 위에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임용하게 하려는 것이니,
반드시 모름지기 그 사람이 행한 일을 말하되 ‘이 사람을 보면 항상 어떤 일 어떤 일을 행한다.’고 해서, 그가 행한 일을 그가 가지고 있는 德의 징험으로 삼아야 한다.”라고 한 것이다.
≪論語≫ 〈衛靈公〉에 “〈내가〉 만일 칭찬해준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내가 그 사람을〉 시험해본 바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일에 시험해서 그 德을 알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禹가 “무엇을 말하는가?”라고 하자,
아홉 가지 德의 品例를 물은 것이다.
皐陶가 말하였다. “너그러우면서도 장엄하며,
성품이 寬弘하면서도 능히 장엄한 것이다.
부드러우면서도 확립하며,
和柔하면서도 능히 일을 확립하는 것이다.
정성스러우면서도 공손하며,
정성스러우면서도 공손한 것이다.
잘 다스리면서도 공경하며,
亂은 治의 뜻이다. 잘 다스리면서도 능히 삼가고 공경하는 것이다.
온순하면서도 굳세며,
擾는 順(馴)의 뜻이요, 과감하게 수행하는 것을 毅라고 한다.
곧으면서도 온화하며,
행실이 정직하면서도 기품이 온화한 것이다.
簡大하면서도 모가 나며,
성품이 簡大하면서도 廉隅가 있는 것이다.
剛斷하면서도 충실하며,
剛斷하면서도 속이 충실한 것이다.
강하면서도 의로운 것이니,
굽히는 바가 없고, 움직이면 반드시 義에 합하는 것이다.
그 常道를 밝게 알면 정사가 잘 될 것입니다.
彰은 明의 뜻이요, 吉은 善의 뜻이다. 아홉 가지 德의 常道를 밝게 알아서 사람을 택하여 벼슬을 시키면 정사가 잘 된다는 것이다.
經의 [禹曰]에서 [吉哉]까지
○正義曰:皐陶가 이미 그 아홉 가지 德을 말하자, 禹가 곧 그 品例를 묻기를 “무엇을 말하는가?”라고 하니, 皐陶가 말하기를 “사람의 성품은 “너그러우면서도 장엄할 수 있으며, 부드러우면서도 확립할 수 있으며,
정성스러우면서도 공손할 수 있으며, 잘 다스리면서도 경건할 수 있으며, 온순하면서도 굳셀 수 있으며, 곧으면서도 온화할 수 있으며, 簡大하면서도 모가 날 수 있으며, 剛斷하면서도 충실할 수 있으며, 강하면서도 道義에 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성품은 동일하지 않으니 이 아홉 가지 덕이 있는 것입니다. 임금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아홉 가지 덕의 常道를 밝게 알아서 이것을 가지고 사람을 골라 벼슬을 시킨다면 정치가 잘 될 것입니다.”라고 한 것이다.
○傳의 [性寬]에서 [莊栗]까지
○正義曰:이 아홉 가지 덕에 관한 글은, 〈舜典〉에서 말한 “너그러우면서 엄격하고 정직하면서 온화하다.”라는 것은 여기(〈皐陶謨〉)의 것과 똑같고, 저기(〈舜典〉)에서 말한 “강하되 포악함이 없으며 단순하되 오만함이 없게 하라.”는 것은 여기의 것과 조금 다르다.
저기의 孔傳에서는 ‘剛强의 失錯은 苛虐에 빠져들고’로 풀이하였고, 여기의 孔傳에서는 “剛斷하면서도 속이 충실한 것이다.”로 풀이하였는데, 實塞은 역시 虐이 되지 않는다.
저기의 孔傳에서는 ‘簡易(간이)의 失錯은 傲慢에 빠져드니’로 풀이하였고, 여기의 孔傳에서는 ‘〈성품이〉 簡大하면서도 廉隅가 있는 것이다.’로 풀이하였는데, 廉隅 역시 傲가 되지 않는다. 아홉 가지 덕은 모두 사람의 성품이다.
鄭玄은 “무릇 사람의 성품에는 차이가 있으니, 강한 성품이 있는 사람은 꼭 유한 성품이 있지는 못하고 유한 성품이 있는 사람은 꼭 강한 성품이 있지는 못하다. 강한 성품과 유한 성품이 서로 타협하여야 곧 그 德을 이룬다.”라고 하였다.
이는 강한 성품과 유한 성품을 말해서 서로 대를 맞춘 것이니, 각각 서로 대가 되는 것을 겸해서 소유하도록 하여야 곧 一德이 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비록 本性이지만, 또한 長短을 가지고 스스로 교정할 수 있는 것이다.
寬弘한 사람은 緩慢한 데서 실착하기 때문에 성품이 寬弘하면서도 능히 矜莊하고 嚴栗하여야 곧 一德을 이루는 것이다. 아홉 가지가 다 그렇다.
○傳의 [慤愿而恭恪]
○正義曰:愿은 慤謹하고 良善함을 이르는 명칭이다. 謹愿한 사람은 遲鈍에서 실착하여 모습이 혹 불공하기 때문에 정성스러우면서도 능히 공손하여야 곧 德이 되는 것이다.
○傳의 [亂治]에서 [謹敬]까지
○正義曰:[亂 治] ≪爾雅≫ 〈釋詁〉의 글이다. 잘 다스리는 사람은 재주가 여느 사람보다 뛰어남을 이르니, 번거롭고 어려운 일을 충분히 처리한다.
재주를 믿고 사물을 경시하는 것은 사람의 常性이기 때문에 능히 謹敬하여야 곧 德이 되는 것이다. 愿에 대해서 恭을 말하고, 治에 대해서 敬을 이른 것은 恭은 모습에 달려있고 敬은 마음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謹愿한 사람은 遲鈍하여 밖으로 儀表에서 실착하기 때문에 恭을 말해서 모습을 표현하였고, 다스리는 사람은 사물을 경시하여 안으로 마음에서 실착하기 때문에 敬을 칭해서 정감을 나타낸 것이다. 恭과 敬은 그 일이 또한 통하니, 愿은 그 모습이 공손하면서 마음이 경건한 것이다.
○傳의 [擾順]에서 [爲毅]까지
○正義曰:≪周禮≫ 〈大宰〉에 “만백성을 길들인다(순화시킨다).”라고 하였는데, 鄭玄이 “擾는 馴과 같은 뜻이다.”라고 하였고, ≪周禮≫ 〈司徒〉에 “큰 나라와 작은 나라들을 편안하게 한다.”라고 하였는데, 鄭玄이 “擾는 또한 安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擾는 安과 馴의 뜻이기 때문에 順이라고 한 것이다.
[致果爲毅] ≪春秋≫ 宣公 2년조 ≪左氏傳≫의 글이다. 저 ≪春秋左氏傳≫의 글에서는 敵을 죽이는 것을 ‘果’라 하였으나, 〈여기의〉 ‘致果爲毅’는 능히 과감하게 수행하여 감히 敵을 죽이는 마음을 이르니,
이것이 强毅가 된다. 和順한 사람은 우유부단함에서 실착하기 때문에 화순하면서도 능히 결단하여야 곧 德이 되는 것이다.
○傳의 [性簡]에서 [廉隅]까지
○正義曰:簡은 寬大하고 率略함을 이르는 명칭이다. 먼 것에 뜻을 둔 사람은 가까운 것을 빠뜨리고, 큰 것을 힘쓰는 사람은 작은 것을 경시하니, 弘大(마음이 너그럽고 도량이 큼)한 사람은 不謹에 실착하고, 細行(작은 행실을 삼감)한 사람은 廉隅를 닦지 않기 때문에 簡大하면서도 廉隅가 있어야 곧 德이 되는 것이다.
○傳의 [剛斷]에서 [實塞]까지
○正義曰:塞은 實의 뜻으로 풀이하였다. 剛하면서 능히 결단하면 空疎에서 실착하게 되니, 반드시 성품이 剛正하면서 속이 充實하여야 곧 德이 되는 것이다.
○傳의 [無所]에서 [合義]까지
○正義曰:强直하게 自立하면 흔들리는 바가 없으나 혹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여 이치를 어기면 事宜에 실착하게 되니, 행동이 道義에 합하게 하여야 곧 德이 되는 것이다.
鄭玄이 ≪論語≫에 주를 달기를 “剛은 强을 이르니, 뜻이 굽히거나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곧 剛과 强(彊)은 뜻이 동일하나 여기의 剛과 强이 다른 것은 剛은 性을 뜻하고, 强은 志를 뜻하기 때문이다.
관직에 있으면서 행동할 때에 피하거나 꺼리는 바가 없는 것은 剛에 해당하고, 자기의 소신을 고집하여 대중 앞에 흔들리지 않는 것은 强에 해당한다. 剛과 强은 서로 비슷한 성질의 것이기 때문에 鄭玄이 연달아서 말한 것이다.
寬은 度量이 寬弘함을 이르고, 柔는 性行이 和柔함을 이르고, 擾는 事理가 擾順함을 이르니, 이 세 가지는 서로 비슷한 성질의 것으로서, 곧 〈洪範〉에서 말한 ‘柔克(유순한 방법으로 다스림)’이다.
愿은 容貌가 恭正함을 이르고, 亂은 剛柔가 다스려짐을 이르고, 直은 행동이 정직함을 이르니, 이 세 가지는 서로 비슷한 성질의 것으로서, 곧 〈洪範〉에서 말한 ‘正直(정직한 방법으로 다스림)’이다.
簡은 器量이 凝簡(장중하고 질박)함을 이르고, 剛은 事理가 剛斷함을 이르고, 强은 性行이 堅强함을 이르니, 이 세 가지는 서로 비슷한 성질의 것으로서, 곧 〈洪範〉에서 말한 ‘剛克(강경한 방법으로 다스림)’이다.
아홉 가지 德의 차례는 柔를 좇아서 剛에 이른다. 오직 ‘擾而毅’만이 愿과 亂의 아래에 있을 뿐이다. 〈洪範〉의 세 가지 德은 人事에 관한 것을 먼저 다루고 天地에 관한 것을 뒤에 다루었으니, 여기와는 같지 않다.
○傳의 [彰明]에서 [之善]까지
○正義曰:[彰 明] [吉 善] 일반적인 풀이이다. 이 문구는 사람을 임용하는 뜻을 말하였다. 여기서 말한 ‘아홉 가지 덕’은 저 사람(임용대상자)이 항상 능히 그렇게 하는 것을 이른다. 만일 잠시만 능히 그렇게 한다면 德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므로 임금이 관직에 임용할 사람을 취할 때에는 반드시 그 아홉 가지 덕의 常道를 밝게 알아서 그 사람이 항상 능히 행하는 것을 알고 난 뒤에 이 아홉 가지 법을 가지고 사람을 택하여 벼슬을 시킨다면 정사가 잘 될 것이다.
明은 임금이 밝게 아는 것을 이른다. 王肅은 “‘그 常道를 밝게 알면 정사가 잘 될 것이다.’라고 한 것은 가지고 있는 덕을 항구적으로 가져야 함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그 뜻은 또한 저 사람이 능히 〈덕을〉 항구적으로 가진 것을 임금이 능히 밝게 알아야 함을 말한 것이다.
鄭玄은 “사람이 능히 그 덕을 밝혔을 경우, 행하는 바에 항구적으로 있게 하면 착한 사람을 이룰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그 뜻은 저 사람이 스스로 밝힘을 이른 것이니, 孔氏(孔安國)의 풀이와 다르다.


역주
역주1 : 蔡傳에서는 ‘總’의 뜻으로 보았다.
역주2 彰厥有常 吉哉 : 蔡傳에서는 彰을 著의 뜻으로 보아 “成德이 몸에 드러나고 또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하게 소유하는 자가 아름다운 선비이다.[成德著之於身 而又始終有常 其吉士矣哉]”라고 풀이하였다. 조선시대 吳熙常은 ≪老洲集≫ 〈讀書隨記〉에서 “彰厥有常의 常은 마땅히 典常의 常으로 보아야 하는데,……蔡傳에서는 始終을 가지고 有常을 해석하였으니, 뜻에 부족할 듯싶다.”라고 하였고, 洪奭周는 ≪尙書補傳≫에서 “彰은 顯用의 뜻이니, 〈畢命〉에서 말한 ‘착한 사람에게는 표창을 하고 악한 사람에게는 불이익을 준다.’는 것과 ≪孟子≫ 〈告子 下〉에서 말한 ‘어진 이를 존중하고 인재를 육성하여 德을 가진 사람을 표창하라.’는 것이 이것이다. 실제로 이 德을 가진 자는 반드시 항구불변한 법이니, 德을 가지고 있더라도 능히 항구적으로 보유하지 않으면 實德이 아니다. 그러므로 ‘彰厥有常’이라 한 것이니, 반드시 그 常德을 가진 자를 임용함을 말한 것이다. 蔡傳에서 ‘이것들을 몸에 뚜렷이 드러내고 또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하게 소유한다.’라고 한 것은, 뜻은 또한 통할 수 있으나 ‘厥’字의 해석에 순조롭지 못한 듯싶다.”라고 하였다.
역주3 寬而栗 直而溫 : 〈舜典〉에는 ‘直而溫 寬而栗’로 되어 있다.
역주4 (之)[入] : 저본에는 ‘之’로 되어 있으나, 四庫本에 의거하여 ‘入’으로 바로잡았다. 아래도 같다.
역주5 上下 : 여기의 上과 下는, 예를 들어 ‘寬而栗’의 경우 上은 寬을 가리키고 下는 栗을 가리킨다. 즉 上은 柔性이고 下는 剛性이다.
역주6 (貌)[毅] : 저본에는 ‘貌’로 되어 있으나, 四庫本에 의거하여 ‘毅’로 바로잡았다.

상서정의(2) 책은 2019.10.0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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