康子曰 鄭子産死
에 鄭人丈夫
는 舍
하고 婦人
은 舍
하며 夫婦巷哭
하야 三月不聞竽瑟之聲
이러니라
故曰 譬子産之與夫子也는 猶浸水之與天雨乎인저하니라
계강자季康子가 자유子游에게 말했다. “어진 사람은 남을 사랑합니까?” 자유는 말했다. “그렇습니다.”
계강자가 말했다. “그럼 남도 그를 사랑합니까?” 자유는 말했다. “그렇습니다.”
계강자가 말했다. “정鄭나라 자산子産이 죽었을 때 정나라의 남자는 결패玦珮를 풀었고 부인은 귀걸이를 떼어놓았으며, 부부가 골목에 나와 곡哭을 하여 3개월 동안 악기樂器를 연주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었소.
그런데 중니仲尼(공자孔子)가 죽었을 때에 나는 노魯나라 사람들이 공자孔子를 이렇게 사랑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으니, 이는 무엇 때문이오?”
자유는 말했다. “비유하면, 자산과 공자는 논에 대는 물과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같을 것입니다.
논에 대는 물이 미치는 곳은 벼가 생장生長하고, 미치지 못하는 곳은 벼가 죽고 맙니다.
이 백성들의 삶에는 반드시 때맞춰 비가 내려야 하나, 백성들이 이미 살게 되면 〈하늘이〉 내려주는 〈비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비유하면, 자산과 공자는 논에 대는 물과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같다고 말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