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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苑(2)

설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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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3. 始封之日 衣翠衣하고 帶玉劒하고 履縞舃하야 立於水之上하다
양성군襄成君이 처음 수봉受封하는 날 비취색 옷을 입고 옥검玉劍을 차고 흰 비단신을 신고서 물가에 서 있었다.
大夫擁鍾하고 縣令執號令하야호되 誰能渡王者
대부大夫들은 의 추를 끼고 현령縣令은 북채를 잡고 호령하면서 누가 왕을 건너 드리겠느냐고 고함쳐 불렀다.
於是也 楚大夫 過而說之하야 遂造託而拜謁하고 起立曰 臣願把君之手하노니 其可乎잇가
이때 나라 대부大夫 장신莊辛이 이곳을 지나가다가 양성군의 미모를 보고 기뻐하여 마침내 핑계하는 말을 만들어 배알하고 일어나서 말했다. “저는 군주君主의 손을 잡고 싶은데 되겠습니까?”
襄成君忿作色而不言하다
양성군이 분노한 안색을 지으면서 말을 하지 않았다.
莊辛遷延盥手而稱曰 君獨不聞夫之汎舟於新波之中也잇가
장신이 몇 걸음 물러나와 손을 씻고 이렇게 말했다. “군주는 홀로 악군 자석鄂君子晳이 봄에 새롭게 이는 물결 속에서 배를 탔던 일을 듣지 못했습니까?
之舟하야 하고 張翠蓋하며犀尾하고 班麗이러니 會鍾鼓之音畢 擁楫而歌하니 歌辭曰 澤予昌州州𩜱州焉乎秦胥胥縵予乎昭澶秦逾滲惿隨河湖
청한靑翰의 배를 타면서 풍우風雨를 가리는 장막을 세우고 푸른색 깃털로 장식한 일산을 펼치며 무소 꼬리를 들고 무늬가 아름다운 옷을 입었는데, 종고鍾鼓의 연주를 마치는 것에 맞춰 배를 부리는 월인越人이 노를 잡고 노래를 부르니, 그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남혜변초람여창濫兮抃草濫予昌𣐙택여창주주澤予昌州州𩜱주언호진서서만여호소단진유삼제수하호州焉乎秦胥胥縵予乎昭澶秦踰滲惿隨河湖
鄂君子晳曰 吾不知越歌하니 子試爲我楚說之하라
악군 자석이 ‘나는 나라 가요를 모르니, 그대는 나를 위하여 나라 말로 해석해주시오.’ 하였습니다.
於是 乃召越譯하니 乃楚說之曰 今夕何夕兮 搴中洲流로다 今日何日兮 得與王子同舟로다 蒙羞被好兮 不訾詬恥로다
이에 곧 월나라 사람을 불러 통역하였더니, 마침내 초나라 말로 다음과 같은 뜻이었습니다. ‘오늘 밤은 무슨 밤인가? 하수 가운데 배를 젓는다네. 오늘은 무슨 날인가? 왕자王子와 함께 배를 탔다네. 맛 좋은 음식과 좋은 옷을 받음이여, 남이 비웃는데도 부끄러움을 모른다네.
心幾頑而不絶兮 知得王子로다 山有木兮木有枝하고 心說君兮君不知로다
내 마음 미련하여 단절하지 못하나, 왕자王子를 알게 되었네. 산에는 나무가 있고 나무에는 가지가 있네. 나는 마음으로 그대를 좋아하건만, 그대는 내 마음 알지 못하네.’
於是 鄂君子晳修袂하며 行而擁之하고 擧繡被而覆之하니이다
이때 악군 자석은 긴소매를 휘날리며 달려가 그를 포옹하고 수놓은 비단 이불을 들어 그를 덮어주었습니다.
鄂君子晳 親楚王母弟也
악군 자석은 초왕楚王의 친아우입니다.
官爲令尹이오 爵爲로되 一榜枻越人 猶得交歡盡意焉이어늘 何以踰於鄂君子晳이며 臣獨何以不若榜枻之人이니잇고 願把君之手어늘 其不可何也잇고
벼슬은 영윤令尹이고 작위는 집규執珪이건만, 배를 부리는 일개 월인越人도 오히려 마음을 다해 즐겁게 사귀었는데, 지금 군주는 악군 자석보다 무엇이 나으며, 저는 유독 배를 부리는 월인보다 무엇이 못합니까? 군주의 손을 잡고 싶은데 안 된다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襄成君乃奉手而進之하야 曰 吾少之時 亦嘗以色稱於長者矣 未嘗遇僇如此之卒也로라 自今以後 願以壯少之禮 謹受命호리라
양성군이 곧 손을 받들어 내밀면서 말하였다. “내가 젊었을 때 일찍이 미모로 어른들에게 칭찬을 들었고, 갑자기 이와 같은 모욕을 당한 적은 없었소. 지금 이후로는 젊은이의 예절로 삼가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역주
역주1 襄成君 : 전국시대 사람인데, 성명과 행적 등은 미상이다.
역주2 (遊)[流] : 저본에는 ‘遊’로 되어 있으나, 《群書拾補》에 “《北堂書鈔》와 《太平御覽》 권692에 의거하여 ‘流’로 고쳤다.” 하였고, 《說苑校證》에 “《水經注》 권21에 ‘徙倚於流水之上’으로 되어 있다.”라고 한 것을 따라 ‘流’로 바로잡았다.
역주3 (鍾)[錘] : 저본에는 ‘鍾’으로 되어 있으나, 《群書拾補》에 의거하여 ‘錘’로 바로잡았다.
역주4 (將)[桴] : 저본에는 ‘將’으로 되어 있으나, 《說苑校證》에 “明鈔本을 따라 고쳤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桴’로 바로잡았다.
역주5 莊辛 : 전국시대 楚나라 大夫이다.
역주6 〈然〉 : 저본에는 ‘然’이 없으나, 《群書拾補》에 “《北堂書鈔》와 《太平御覽》에 ‘然’자가 있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7 鄂君子晳 : 춘추시대 楚나라 사람으로, 곧 公子 黑肱이다. 子晳은 字이고, 楚 恭王의 아들이다. 令尹을 지냈으며, 鄂에 봉해졌기 때문에 鄂君이라 한다. 《春秋左氏傳》 昭公 元年에 미남자로 묘사되어 있다.
역주8 靑翰 : 배 이름으로, 새의 모양을 조각하여 꾸미고 푸른 칠을 했다 한다. 《文選 三月三日曲水詩序》
역주9 極䓣芘(만비) : 孫詒讓이 “‘極’은 아마 ‘揷’이 되어야 하니, 《干祿字書》의 ‘揷’자와 모양이 비슷하여 잘못 썼고, ‘䓣’은 ‘縵’으로 읽어야 하는데 장막이며, ‘芘’는 ‘蔽’와 음이 가깝고 뜻도 같으니, 가린다는 뜻이다.”라고 한 것을 따라 번역하였다.
역주10 (檢)[撿] : 저본에는 ‘檢’으로 되어 있으나, 《說苑校證》을 따라 ‘撿’으로 바로잡았다. 《群書拾補》에는 ‘㩉’으로 고쳤으나 따르지 않았다.
역주11 (桂社)[褂衽] : 저본에는 ‘桂社’로 되어 있으나, 《群書拾補》에 ‘褂衽’으로 고쳤고, 《說苑校證》에 明鈔本도 같다고 한 것을 따라 ‘褂衽’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2 榜枻(예)越人 : 배를 부리는 越나라 사람이다. 榜‧枻는 모두 배를 젓는 노인데, 여기서는 ‘배를 부리다’로 번역하였다.
역주13 濫兮……河湖 : 이 구절의 가사는 당시의 越歌로 句讀를 떼는 것이 불가능하여 그대로 두었다. 번역은 아래에 나온다.
역주14 ? : 이 글자는 字典에 없어서 무슨 글자인지 미상이다.
역주15 (㯓)[揄] : 저본에는 ‘㯓’으로 되어 있으나, 《太平御覽》 권572와 《群書類聚》에 의거하여 ‘揄’로 바로잡았다.
역주16 執珪 : 楚나라의 爵位 이름이다. 珪로 작위의 등급을 구분하는데, 규를 잡고 조정에 나오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역주17 (令尹)[今君] : 저본에는 ‘令尹’으로 되어 있으나, 《群書拾補》에 의거하여 ‘今君’으로 바로잡았다.

설원(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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