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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苑(1)

설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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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8. 十一年 謂左右曰
今時韓魏與秦 孰强
對曰 不如秦彊이니이다
王曰 今時 孰賢
對曰 不如孟嘗芒卯之賢이니이다
王曰 以孟嘗芒卯之賢으로 率彊韓魏以攻秦이라도 猶無奈寡人이어늘 今以無能之如耳魏齊 而率弱韓魏以伐秦하니 其無奈寡人何亦明矣로다
左右皆曰 然하이다
伏瑟而對曰 王之料天下過矣로소이다
하야 智氏最彊하야 滅范中行氏하니이다
又率韓魏之兵하야하야以灌晉陽之城하니 이러니이다
智伯行水할새 하고 하니이다
智伯曰 吾始不知水可以亡人國也러니 乃今知之로라
魏宣子肘韓康子한대 康子履魏宣子之足하니
肘足接於車上하야 智伯氏分하고 身死國亡하야 爲天下笑하니이다
今秦雖彊이나 不過智氏 韓魏雖弱이나 尙賢其在晉陽之下也니이다
此方其用肘足之時 願王之必易也하노이다
於是秦王恐하다


위 안희왕魏 安釐王 11년(B.C. 266)에 진 소왕秦 昭王이 좌우의 신하에게 말하였다.
“현재 나라와 나라를 나라에 견주면 어느 나라가 강대한가?”
신하들이 대답하였다. “진나라의 강대함만 못합니다.”
소왕이 다시 말했다. “현재 여이如耳위제魏齊맹상군孟嘗君망묘芒卯에 견주면 누가 현명한가?”
신하들이 대답하였다. “맹상군과 망묘의 현명함만 못합니다.”
이에 소왕은 말했다. “맹상군과 망묘의 현명함으로 강대한 한나라와 위나라의 군대를 이끌고 진나라를 공격하더라도 오히려 과인寡人을 어쩌지 못할 텐데, 지금 무능한 여이와 위제로서 약한 한나라와 위나라의 군대를 이끌고 진나라를 공격하니 과인을 어쩌지 못하리라는 것 역시 분명한 일이로구나.”
이에 좌우의 신하들이 모두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신기申旗라는 사람이 위에 엎드려 말하였다. “대왕께서 천하의 형세를 파악하심이 잘못되었습니다.
나라가 육경六卿집정執政했을 때를 당하여 지씨智氏가 가장 강성하여 범씨范氏중항씨中行氏를 멸하였습니다.
한씨韓氏위씨魏氏의 군대를 이끌고 조양자趙襄子진양晉陽에서 포위하여 진수晉水를 터서 진양성晉陽城을 잠기게 하니 물이 들이차지 않은 것이 삼판三板 정도에 불과했었습니다.
지백智伯이 물가를 순시할 적에 위선자魏宣子는 수레를 몰고, 한강자韓康子는 모시고 시위侍衛하였습니다.
지백은 ‘나는 애초에 물이 남의 나라를 망하게 하리라는 것을 몰랐었는데, 이제야 알았노라.
분수汾水안읍安邑을 잠기게 할 수 있고, 강수絳水평양平陽을 잠기게 할 수 있겠구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위선자가 팔꿈치로 한강자의 옆구리를 찔러 경계의 뜻을 보이자 한강자는 위선자의 발을 밟아 알았다는 뜻을 표했습니다.
수레 위에서 팔꿈치와 발이 접촉함으로써 지씨의 땅이 분할되고 몸은 죽고 나라는 멸망하여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지금 나라가 강대하지만 지씨보다 더 낫지 못하고, 나라와 나라가 약하지만 오히려 진양성 아래에 있을 때보다 낫습니다.
지금이 바로 비밀히 팔꿈치와 발을 쓴 것처럼 연합할 때이니, 대왕께서는 반드시 쉽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에 진 소왕은 두려움을 느꼈다.


역주
역주1 魏安釐(희)王 : 전국시대 魏나라 군주로, 이름은 圉이다. 釐는 僖로도 쓴다. 秦나라의 온갖 침략에 시달리면서 진나라를 붙좇으려 하였으나 信陵君의 諫言으로 중지하였다. 趙나라 수도 邯鄲이 秦軍에게 포위되자 신릉군을 보내어 河內에서 진군을 물리쳤다. 《史記 魏世家》
역주2 秦昭王 : 전국시대 秦나라 군주로, 이름은 稷이며, 武王의 이복동생이다. 遠交近攻 정책을 쓰고 魏冉‧范雎‧白起 등을 선후로 등용, 山東 여섯 諸侯國의 合縱 세력을 깨뜨리고 강성한 국가를 만들어 후일 통일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史記 秦世家》
역주3 如耳魏齊與孟嘗芒卯 : 如耳는 원래 魏나라 大夫였으나 뒤에 衛나라에서 벼슬하였다가 다시 韓나라의 신하가 되었다. 《戰國策 秦策 4‧趙策 2》 魏齊는 魏나라의 公族으로 昭王 때 재상이 되었다. 일찍이 范雎를 매질했다가 범저가 秦나라 재상이 되자 보복이 두려워 趙나라로 도망쳤다. 秦 昭王이 趙王에게 편지를 보내 위제를 요구하자 大梁에 가서 信陵君의 도움을 받아 楚나라로 망명하려 하였으나, 秦나라를 두려워한 신릉군이 만나주지 않자 자살하였다. 《范雎蔡澤列傳》 孟嘗은 본서 권9 〈正諫〉의 05 주1) 참조. 芒卯는 전국시대 齊나라 사람으로, 孟卯로도 쓴다. 魏나라에서 벼슬하여 재상이 되었다. 위험을 편안히 하고 환난을 해소하여 賢名이 있었다. 《韓非子 顯學》‧《淮南子 氾論訓》
역주4 申旗 : 전국시대 秦나라의 辯士이다. 《戰國策》 〈秦策〉과 《韓非子》에는 모두 ‘中期’로 기록되었고, 《史記》에는 ‘中旗’로 되어 있다. 《說苑校證》에는 “‘申’은 ‘中’의 誤字이고, ‘期’와 ‘旗’는 통용이다.” 하였다. 《春秋戰國異辭 25 上 秦 昭襄王》
역주5 六晉之時 : 춘추 말기 晉나라의 六卿이 집권하던 시대를 이른다. 六卿은 智氏‧范氏‧中行氏‧韓氏‧魏氏‧趙氏를 이른다. 《戰國策 秦策 4》‧《韓非子 難 3》
역주6 圍趙襄子於晉陽 : 智伯이 趙襄子에게 땅을 달라고 요구하였으나 주지 않자 晉陽을 공격하여 포위했던 일이다. 본서 권3 〈建本〉의 30과 권5 〈貴德〉의 29 참조.
역주7 晉水 : 하천 이름으로, 山西省 太原市 서남쪽 懸甕山에서 발원하여 汾水로 흘러든다. 《史記 魏世家》‧《水經注 晉水》
역주8 不滿者三板 : 城의 三板 정도만 물이 들이차지 않았다는 말이다. 板은 옛날 흙담을 다져 쌓을 때 양옆에 대는 널빤지이다. 한 板의 높이는 두 자[尺]이고, 길이는 여덟 자이다. 여기서는 높이를 표시한 것으로 三板은 여섯 자인데, 先秦시대의 한 자는 지금의 약 23.1㎝이다.
역주9 魏宣子御 : 魏宣子가 수레를 몰다. 위선자는 춘추 말기의 晉나라 大夫로, 이름은 駒이다. 곧 魏桓子이다. 智伯이 땅을 요구하자 1만 호의 고을을 주어 비위를 맞추었다가 뒤에 韓虎(韓康子)‧趙無恤(趙襄子)과 함께 지백을 멸한 후 그 땅을 삼분하였다. 《戰國策 魏策》‧《史記 魏世家》
역주10 韓康子爲驂乘 : 韓康子가 侍衛하여 모시고 타다. 韓康子는 춘추 말기 晉나라 大夫로, 이름은 虎이다. 《史記 晉世家‧魏世家‧韓世家》
역주11 汾水可以灌安邑 : 汾水는 山西省 寧武縣 管涔山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흘러 平陽을 지나 黃河로 유입하는 강이다. 安邑은 魏宣子의 封邑으로, 지금의 山西省 夏縣에 있었다. 강이 경유하는 지역으로 보아 安邑과 다음 조의 平陽이 서로 바뀌었다는 설이 있다. 《史記 趙世家》‧《水經注 汾水》
역주12 絳水可以灌平陽 : 絳水는 山西省 屯留縣의 북서쪽 盤秀口에서 발원하여 潞城縣 경계의 濁漳水로 흘러드는 강이다. 平陽은 韓康子의 封邑으로, 지금의 山西省 臨汾市 남쪽에 있었다. 《後漢書 郡國志》‧《讀史方輿紀要 山西 平陽府 絳水》
역주13 〈勿〉 : 저본에는 ‘勿’이 없으나, 《史記》 〈魏世家〉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설원(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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