悼惠王二十三年에 平卒하고 二十歲에 秦滅韓하니 良年少하야 未宦事韓하다
韓破에 良家僮三百人이어늘 弟死不葬하고 良悉以家財로 求刺客刺秦王하야 爲韓報仇하니
遂學禮
하고 東見
하야 得力士
하고 爲鐵椎
하니 重百二十斤
이러라
秦皇帝東遊
어늘 良與客狙擊秦皇帝於
라가 誤中副車
하니
유후留侯 장량張良의 할아버지 개지開地는 한韓나라 소후昭侯‧선혜왕宣惠王‧양애왕襄哀王의 재상이 되었고, 아버지 장평張平은 이왕釐王‧도혜왕悼惠王의 재상이 되었다.
도혜왕 23년에 장평이 죽고, 장평이 죽은 뒤 20년에 진秦나라가 한韓나라를 멸망시키니 장량은 나이가 어려서 벼슬하여 한韓나라를 섬기지 못했다.
한韓나라가 파멸했을 때 장량의 집에는 3백 명의 노복奴僕이 있었는데 아우가 죽었는데도 장례를 치르지 않고, 장량은 집안의 재물을 모두 털어 자객刺客을 구해 진왕秦王을 죽여 한韓나라를 위해 원수를 갚으려 하였다.
이는 자기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등 5대 동안 한韓나라의 재상을 지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회양淮陽에서 예禮를 배우고 동쪽에 가서 창해군滄海君을 만나 역사力士를 얻고 무게가 120근이나 되는 쇠망치를 만들었다.
진시황秦始皇이 동방東方을 순유巡遊하였는데, 장량이 자객과 함께 박랑사博浪沙에서 진시황을 저격했다가 잘못하여 여벌로 따라가는 수레[부거副車]를 맞히고 말았다.
진시황이 크게 노하여 온 천하에 크게 수색을 벌이고, 현상금을 걸어 매우 급하게 자객을 잡으러 나섰다.
장량은 성명을 바꾸고 깊은 곳으로 도망쳐 숨었다가 후일 마침내 한漢나라를 따라 진秦나라를 멸망시켜 보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