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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苑(1)

설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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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지백智伯나라에서 돌아오니 삼경三卿남대藍臺에서 잔치를 열었다.
하고 而侮하다
지양자智襄子(지백智伯)가 한강자韓康子를 희롱하고 또 단규段規에게 모욕을 주었다.
聞之하고 諫曰 主弗備難이면 難必至하리이다
지과智果가 이를 듣고 하였다. “주군主君께서 재난災難을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반드시 재난이 닥칠 것입니다.”
曰 難將由我 我不爲難이면 誰敢興之리오
그러자 지백이 말했다. “재난은 나를 따라 일어나니 내가 재난을 일으키지 않으면 누가 감히 일으킨단 말이냐.”
對曰 異於是하니하고 하고 하고 하니 皆主之所知也로소이다
지과는 대답하였다. “하신 말씀과는 다릅니다. 극씨郤氏거원車轅재난災難이 있었고, 조씨趙氏맹희孟姬참소讒訴가 있었으며, 난씨欒氏숙기叔祁무함誣陷이 있었고, 범씨范氏중항씨中行氏함야函冶재난災難이 있었으니, 모두 주군께서 아시는 바입니다.
서경書經》 〈하서夏書〉에는 ‘한 사람의 잘못이 많은데 그 원한이 어찌 밝게 드러난 데 있으랴. 드러나지 않았을 때 미리 도모해야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경書經》 〈주서周書〉에는 ‘원한은 큰 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작은 일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하였습니다.
夫君子能勤小物이라 故無大患이니이다
군자君子는 작은 일을 부지런히 살피기 때문에 큰 환난이 없는 것입니다.
今主一而媿人君相이어늘 又弗備하고 曰不敢興難이라하시니 毋乃不可乎잇가
지금 주군은 한 번의 잔치에서 남의 주군과 가신家臣을 부끄럽게 만들었는데도 미리 방비하지 않고 ‘감히 재난을 일으키지 못한다.’라고 말하시니, 옳지 않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不可不懼 蚋蟻蜂蠆 皆能害人이온 況君相乎잇가
아, 두려워하지 않으면 안 되니, 모기‧개미‧벌‧전갈도 모두 사람을 해치는데 더구나 주군과 가신의 이겠습니까?”
不聽이러니 自是五年 而有하야 段規反而殺智伯于師하고 遂滅智氏하다
지백智伯은 이 말을 따르지 않았다. 이로부터 5년 뒤에 진양晉陽의 난이 일어나 단규가 지백을 배반하여 군중軍中에서 지백을 죽이고 마침내 지씨智氏를 멸망시켰다.
역주
역주1 智伯還自衛 : 魯 悼公 4년(B.C. 464)에 智伯이 鄭나라를 토벌하여 衛나라의 鐵(지금의 河南省 濮陽市 북쪽)에서 鄭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돌아온 일을 가리킨다. 《國語 晉語 9》‧《史記 鄭世家》
역주2 三卿燕于藍臺 : 三卿은 晉나라의 세 卿으로, 智伯‧韓康子‧魏桓子를 이른다. 藍臺는 晉나라의 地名이다.
역주3 智襄子戱韓康子 : 智襄子는 곧 智伯으로, 襄은 시호이다. 韓康子는 전국 초기 晉나라의 卿으로, 이름은 韓虎, 康은 시호이다. 韓宣子의 증손이며 韓莊子의 아들이다. 《國語 晉語 9》‧《戰國策 韓策 1》‧《史記 晉世家》
역주4 段規 : 전국 초기 晉나라의 卿 韓康子의 家臣이다. 뒤에 韓나라의 相이 되었다. 《國語 晉語 9》‧《韓非子 十過》‧《戰國策 韓策 1》
역주5 智果 : 晉나라 大夫로, 智氏의 종족이다. 《韓非子》 〈十過〉에는 ‘智過’로 되어 있고, 《國語》 〈晉語 9〉에는 ‘知伯國’으로 되어 있다.
역주6 郤氏有車轅之難 : 郤氏가 長魚矯(蟜)에게 멸망당한 재난을 이른다. 郤氏는 晉나라의 大族으로, 郤犨‧郤錡‧郤至가 모두 大夫였다. 郤犨가 長魚矯와 전답을 다투었는데, 郤犨가 長魚矯를 잡아 수갑을 채우고, 그의 부모와 처자까지 한 대의 수레 끌채에 함께 묶어두어 욕을 보인 일이 있었다. 이에 앙심을 품은 長魚矯는 뒤에 晉 厲公의 총애를 받게 되자, 三郤으로 불리던 세 郤氏를 모두 멸망시켰다. 《春秋左氏傳 成公 17년》‧《國語 晉語 6》
역주7 趙有孟姬之讒 : 孟姬의 참소로 趙同과 趙括이 죽은 일을 이른다. 孟姬는 趙文子의 어머니 莊姬로, 晉 景公의 누이동생이다. 맹희가 媤叔父가 되는 趙嬰과 간통하자 嬰의 형 同과 括이 嬰을 쫓아냈다. 이를 원망한 맹희가 景公에게 참소하자, 景公이 趙同과 趙括을 죽였다. 《春秋左氏傳 成公 4‧5‧8년》‧《國語 晉語 9 韋昭 注》‧《史記 晉世家》
역주8 欒有叔祁之訴 : 叔祁가 친정아버지에게 참소하여 欒氏 집안을 멸망시킨 일을 이른다. 欒은 당시 晉나라의 세력가 欒盈이다. 叔祁는 欒盈의 어머니로 范宣子의 딸이다. 叔祁가 家臣의 長인 州賓과 간통하자, 아들 盈이 이를 근심하였는데, 叔祁가 范宣子에게 참소하여 欒氏 집안을 멸망시켰다. 《春秋左氏傳 襄公 21년》‧《國語 晉語 8》
역주9 范中行有函冶之難 : 范皐夷가 范氏와 中行氏를 멸망시킨 일을 이른다. 范은 范吉射이다. 中行은 中行寅이다. 函冶는 范皐夷의 食邑으로 지금의 河南省 孟縣 북쪽에 있었다. 范吉射의 庶子인 皐夷는 아버지의 총애를 받지 못하자, 韓氏‧魏氏와 연합하여 아버지의 지위를 빼앗으려고 난을 일으켜 魯 定公 13년(B.C. 497)에 그들을 축출하였다. ‘函冶’는 《國語》에 ‘亟冶’로 썼다. 《春秋左氏傳 定公 13‧14‧15년》‧《國語 晉語 9》
역주10 夏書有之……不見是圖 : 《書經》 〈夏書 五子之歌〉에 보인다.
역주11 周書有之……亦不在小 : 《書經》 〈周書 康誥〉에 보인다.
역주12 : 《國語》 〈晉語 9〉에는 ‘晏’자로 썼다. 《說苑校證》에 “‘謀’는 본래 ‘讌’자였는데, 모양이 비슷하여 謀자가 되었고, ‘燕’‧‘讌’과 ‘晏’이 모두 통용이다.”라 하였다.
역주13 晉陽之難 : 晉나라의 六卿 중 세력이 가장 강대했던 智伯(智瑤, 智襄子)이 趙襄子(無恤)에게 땅을 달라고 요구하였으나 듣지 않자, 智伯이 韓康子‧魏桓子와 연합하여 趙襄子를 晉陽에서 포위한 일을 이른다. 이 싸움에서 趙氏가 멸망하고 나면 그 같은 화가 장차 자신들에게 미칠 것을 염려한 韓康子와 魏桓子의 배신으로 결국 智氏는 멸망하였다. 《國語 晉語 9》‧《資治通鑑 周紀》

설원(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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