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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苑(2)

설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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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4. 侍坐於이러니 屈建曰 其爲亂乎
석걸石乞굴건屈建을 모시고 앉아 있었는데, 굴건이 말했다. “백공白公이 장차 난을 일으키겠는가?”
石乞曰 是何言也 白公至於室無營하며 所下士者三人이요 與己相若者五人이요 所與同衣食者이니 白公之行若此어늘 何故爲亂이리오
석걸이 말했다. “이 무슨 말씀입니까? 백공은 집을 지은 일이 없을 정도로 검소하며, 자신의 몸을 굽혀 예우하는 선비가 세 사람이고, 자기와 대등하게 대하는 이가 다섯 사람이며, 의식衣食을 함께하는 이가 열 사람입니다. 백공의 행위가 이와 같은데, 무엇 때문에 난을 일으키겠습니까.”
屈建曰 此建之所謂亂也 以君子行則可커니와 於國家行 過禮則國家疑之니라 且苟不難下其臣이면 必不難高其君矣 建是以知夫子將爲亂也로라
굴건이 말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백공이 난을 일으킬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군자君子의 행위에서 보면 괜찮지만 국가의 행위에서 보면 예의禮義가 지나친 것이니, 국가에서 의심할 것이다. 또 만일 신하에게 몸을 낮추는 일을 어렵게 여기지 않으면 그 임금의 위에 있는 것도 어렵게 여기지 않으니, 나는 이 때문에 백공이 장차 난을 일으키리라는 것을 아노라.”
處十月 白公果爲亂하다
10개월이 지난 뒤에 백공이 정말 난을 일으켰다.
역주
역주1 石乞 : 춘추시대 楚나라의 勇士이다.
역주2 屈建 : 본서 권3 〈建本〉 28의 주2) 참고.
역주3 白公 : 춘추시대 楚나라의 公族이다. 이름은 勝으로, 平王의 손자이고 太子 建의 아들이다. 伍子胥를 따라 吳나라로 도망쳤다가 惠王 때 본국으로 돌아와 白公에 봉해졌다. 뒤에 난을 일으켜 子西와 子期 형제를 죽이고 혜왕을 습격하였으나, 子固와의 싸움에서 패하여 자살하였다. 《春秋左氏傳 哀公 16‧17년》‧《國語 楚語 下》
역주4 {臣} : 저본에는 ‘臣’자가 있으나, 《說苑校證》에 “《渚宮舊事》에 ‘臣’자가 없는 것을 따라야 한다.”고 한 것을 따라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역주5 (千)[十] : 저본에는 ‘千’으로 되어 있으나, 《說苑校證》에 “孫詒讓은 ‘千人은 너무 많으니, 《渚宮舊事》 권2의 ‘十人’이 옳을 듯하다.’ 하였다.”라고 한 것을 따라 ‘十’으로 바로잡았다.

설원(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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