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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苑(1)

설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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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7. 晉하니 晉君以爲中軍尉러니 趙盾死 하다
나라 조돈趙盾한궐韓厥을 천거하니 진군晉君중군위中軍尉로 삼았는데, 조돈이 죽자 그 아들 조삭趙朔이 계승하여 이 되었다.
三年하야 趙朔爲晉將하고 朔取爲夫人이러니 大夫 欲誅趙氏하다
경공景公 3년에 이르러 조삭은 진나라의 장군이 되었고, 진 성공晉 成公의 누이에게 장가들어 부인으로 삼았는데, 대부大夫 도안가屠岸賈조씨趙氏주멸誅滅하려고 하였다.
趙盾在 夢見要而哭하야 甚悲라가 已而笑하고 拊手且歌하다
애초에 조돈이 살아 있을 때 꿈에 숙대叔帶가 손으로 허리를 잡고 매우 슬피 하다가 이윽고 웃고 손뼉을 치면서 또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았다.
盾卜之한대 占兆絶而後好러라
조돈이 을 치자 점에 나타난 균열이 끊어졌다가 뒤에 좋아졌다.
占曰 此甚惡하니 非君之身이면 及君之子 然亦君之咎也니이다
조씨의 사관史官 점조占兆를 이렇게 풀이하였다. “이 점은 매우 나쁘니 주군主君의 신상에 응험하지 않으면 주군의 아들에게 응험이 미치겠지만 이는 주군의 과오로 오는 것입니다.”
至子趙朔하야 世益衰하다
그의 아들 조삭에 이르러 가세家世가 더욱 쇠약해졌다.
屠岸賈者 始有寵於靈公이러니 及至於晉景公하야 而賈爲司寇하다
도안가屠岸賈는 처음에 영공靈公의 총애를 받았는데, 진 경공晉 景公 때에 이르러 도안가를 사구司寇로 삼았다.
將作難할새 乃治하야 以致趙盾하고 遍告諸將曰
난을 일으키려고 할 때 영공을 시해한 을 다스리면서 조돈에 연루시키고 여러 장수에게 두루 알리며 말하였다.
盾雖不知 猶爲首賊이라 臣殺君이어늘 子孫在朝 何以懲罪리오 請誅之하노라
조천趙穿이 영공을 시해할 때 조돈은 이를 알지 못했으나 그래도 역적逆賊의 우두머리요. 신하로서 임금을 시해하였는데 그의 자손이 조정에 있다면 어떻게 죄 있는 사람을 징벌懲罰하겠는가? 그들을 주살誅殺할 것을 청하오.”
韓厥曰 靈公遇賊 趙盾在外하니 吾先君以爲無罪
이에 한궐韓厥이 말했다. “영공이 적에게 해를 당할 때 조돈은 도망쳐 외지外地에 있었으니, 우리 선군先君께서 그는 죄가 없다 하였소.
故不誅어늘 今諸君將誅其後하니 是非先君之意而後妄誅
그래서 그를 죽이지 않았는데 지금 여러분들이 그의 후대後代를 죽이려고 하니 이는 선군의 뜻이 아닌데 함부로 죽이는 것이오.
妄誅 謂之亂臣이요 有大事而君不聞이면 是無君也니라
함부로 죽이면 이를 난신亂臣이라 하고 큰일을 저지르면서 임금께 보고하지 않으면 이는 임금을 무시하는 것이오.”
屠岸賈不聽하다
이 말을 듣고도 도안가는 따르지 않았다.
厥告趙朔趨亡호되 趙朔不肯하야
한궐이 조삭에게 빨리 도망치라고 말했으나 조삭은 따르려 하지 않으면서 말했다.
子必不絶趙祀 朔死且不恨호리라
“그대가 기필코 조씨趙氏의 제사를 단절시키지 않는다면 나는 죽어도 유감이 있지 않을 것이오.”
韓厥許諾하고 稱疾不出하다
한궐은 그렇게 하겠다고 허락하고 병을 핑계로 밖에 나가지 않았다.
賈不請하고 而擅與諸將攻趙氏於下宮하야趙括趙嬰齊하고 皆滅其族하다
도안가는 임금에게 요청하지도 않고 제 마음대로 여러 장수와 하궁下宮에서 조씨를 공격하여 조삭趙朔조동趙同조괄趙括조영제趙嬰齊를 죽이고 그들의 종족을 모두 멸하였다.
朔妻成公姊有遺腹하야 走公宮匿이라가 後生男하니 朔客 持亡匿山中하다
조삭의 아내 성공成公의 누이는 유복자遺腹子를 임신하고 있어서 공궁公宮으로 달아나 숨어 있다가 나중에 아들을 낳으니, 젖먹이 때에 조삭의 문객門客 정영程嬰이 이 아이를 데리고 산중으로 들어가 숨어 살았다.
居十五年 晉景公疾하야 卜之하니之後 不遂者爲祟라하야늘
15년이 지난 뒤에 진 경공晉 景公이 병들어 점을 치니, 점괘에 “대업大業의 후예로서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 빌미가 되었다.”라 하였다.
景公疾問韓厥한대 韓厥知趙孤在하고 乃曰
경공이 급히 한궐에게 묻자, 한궐은 조씨의 고아孤兒가 살아 있음을 알고 대뜸 말했다.
大業之後 在晉絶祀者 其趙氏乎인저
대업大業의 후예로 나라에 있으면서 제사가 끊어진 것은 아마 조씨일 것입니다.
夫自으로 皆嬴姓也 中衍人面鳥喙 降佐殷帝大戊하고 及周天子하야 皆有明德하니이다
중연中衍으로부터 모두 영씨嬴氏인데, 중연은 사람의 얼굴에 새의 부리로 탄생하여 은제殷帝 태무太戊를 돕고 천자天子까지 도와 모두 밝은 덕행德行이 있었습니다.
下及無道하야 而叔帶去周適晉하야 事先君하고 至于成公하야 世有立功하야 未嘗有絶祀러니이다
아래로 내려와 유왕幽王여왕厲王무도無道한 때에 이르러 숙대叔帶나라를 떠나 나라로 와서 선군先君 문후文侯를 섬겼고 성공成公대에까지 대대로 세운 이 있어서 일찍이 제사가 끊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今及吾君하야 獨滅趙宗하니 國人哀之
지금 우리 임금대에 이르러 유독 조씨의 종족을 멸하니 나라 사람들이 애통해합니다.
故見하니 唯君圖之하소서
그래서 점괘에 나타난 것이니, 군주께서는 고려하십시오.”
景公問云 趙尙有後子孫乎 韓厥具以實對하다
이에 경공이 물었다. “조씨는 아직 후대 자손이 있소?” 한궐이 사실대로 빠짐없이 대답하였다.
於是景公乃與韓厥 謀立趙孤兒하고 召而匿之宮中하다
이에 경공이 한궐과 함께 조씨의 고아를 세우기로 모의謀議하고 불러다가 궁중宮中에 숨겨두었다.
諸將入問疾한대 景公因韓厥之衆하야 以脅諸將而見趙孤하니 孤名曰
여러 장수가 들어와 문병하자, 경공이 한궐의 병력을 이용하여 여러 장수를 협박해서 조씨의 고아를 가서 보게 하니 고아의 이름을 라 하였다.
諸將不得已하야 乃曰 昔下宮之難 屠岸賈爲之하야 矯以君令하고 幷命群臣하니 非然이면 孰敢作難이리잇가
여러 장수는 부득이 말했다. “종전의 하궁下宮에서 있었던 난은 도안가가 주관하여 임금의 명령이라 속이고 아울러 군신群臣을 호령한 것이니, 그렇지 않았다면 누가 감히 난을 일으키겠습니까?
微君之疾이면 群臣固且請立趙後러니 今君有令하시니 群臣之願也로소이다
임금께서 병이 나지 않았으면 군신群臣이 본디 조씨의 후손을 찾아 세울 일을 요청하려 했는데, 지금 임금께서 이렇게 명령하시니 군신群臣의 소원입니다.”
於是召趙武程嬰하야 徧拜諸將軍하다
이렇게 하여 조무趙武정영程嬰을 불러와서 여러 장수에게 두루 절을 올리게 하였다.
將軍遂返하야 與程嬰趙武攻屠岸賈하야 滅其族하고 復與趙武田邑如故하다
장수들이 마침내 돌아가서 정영‧조무와 함께 도안가를 공격하여 그의 종족을 멸하고 다시 조무의 전지田地채읍采邑을 원래와 똑같이 주었다.
故人安可以無恩이리오
그러므로 사람이 어떻게 은혜를 베풀지 않을 수 있겠는가?
夫有恩於此 復於彼하나니
이곳에서 은혜를 베풀면 저곳에서 보답을 받게 되는 것이다.
非程嬰이면 則趙孤不全이요 非韓厥이면 則趙後不復이니 韓厥可謂不忘恩矣로다
정영이 있지 않았으면 조씨의 고아는 보전되지 못했을 것이고, 한궐이 있지 않았으면 조씨의 후예는 다시 회복되지 못했을 것이니, 한궐은 은혜를 잊지 않았다고 이를 만하다.
역주
역주1 趙盾(돈) : 趙宣子이다. 본서 권3 〈建本〉 29의 주2) 참고.
역주2 韓厥 : 춘추시대 晉나라 卿이다. 시호는 獻이고, 韓獻子라 한다. 齊나라에 승리한 공으로 新中軍將이 되었고, 都岸賈가 趙氏를 멸할 때 살아남은 趙朔의 아들 趙武를 도와 조씨의 田邑을 되찾게 하였다. 悼公 때 국정을 맡아 옛 패업을 회복하였다. 《春秋左氏傳 成公 2‧3‧8년》‧《史記 韓世家》
역주3 子朔嗣爲卿 : 趙盾의 아들 趙朔이 아버지의 직위를 계승하여 卿이 되었다. 조삭은 시호가 莊이고, 趙莊子라 한다. 邲 땅에서 벌어진 晉나라와 楚나라의 전투에서 下軍을 거느리고 鄭나라를 구원하였다. 屠岸賈가 조씨를 멸할 때 살해되었는데, 그의 유복자 趙武가 살아남아 재기하였다. 《春秋左氏傳 宣公 8‧12년, 成公 8년》‧《史記 趙世家》
역주4 景公 : 춘추시대 晉나라 군주이다. 이름은 據이고, 成公의 아들이다. 처음으로 晉나라에 六軍을 만들었다. 《春秋左氏傳 成公 13년》‧《史記 晉世家》
역주5 成公姊 : 晉 成公의 누이이다. 成公은 춘추시대 晉나라 군주이다. 이름은 黑臀, 文公의 아들이다. 《春秋左氏傳 成公 2년, 宣公 2‧3‧6‧7‧9년》‧《史記 晉世家》
역주6 屠岸賈 : 춘추시대 晉나라 大夫이다. 屠岸은 複姓이다. 여러 장수들과 결탁하여 靈公을 시해했다는 죄목으로 趙氏의 종족을 멸하였으나 뒤에 趙武와 程嬰의 공격을 받아 멸족당하였다. 《史記 趙世家》‧《新序 節士》
역주7 〈時〉 : 《群書拾補》에는 “宋本‧元本‧楚府本에 모두 ‘時’자가 있다.” 하였고, 《說苑校證》에는 “明鈔本에 ‘時’자가 있고, 《史記》 〈趙世家〉에도 있어 보충한다.” 하여 보충하였다.
역주8 叔帶 : 西周 사람이다. 趙氏의 시조인 趙造父의 7대손이다. 周 幽王이 무도하자, 周나라를 떠나 晉나라에 들어와 文侯를 섬겨 조씨를 처음 晉나라에 세웠다. 《春秋左氏傳 僖公 7‧11‧12‧22‧24년, 昭公 26년》
역주9 {龜} : 《說苑校證》에 兪樾의 說을 따라 衍文으로 보았기에 연문으로 처리하였다. 《史記》 〈趙世家〉에도 ‘龜’자가 없다.
역주10 趙史援 : 趙氏 집의 史官으로 있는 援으로, 援은 이름이다.
역주11 靈公之賊 : 晉 靈公을 시해한 역적이다. 趙盾의 從弟(일설에는 從姪) 趙穿을 이르는데, 屠岸賈는 趙盾을 비롯한 趙氏의 종족을 이 사건에 연루시켜 제거하였다. 《史記 趙世家》
역주12 趙穿弑靈公 : 魯 宣公 2년(B.C. 607)에 晉나라 大夫 趙穿이 자기의 君主인 靈公을 시해한 일이다. 영공의 이름은 夷皐인데 임금 노릇을 잘하지 못했다. 영공이 趙盾(돈)을 죽이려고 하자 조돈은 달아났다. 조돈의 아우인 趙穿이 영공을 시해한 뒤에 돌아와 영공의 동생 黑臀(成公)을 옹립하였다. 《春秋左氏傳 宣公 2년》
역주13 趙朔〈趙同〉趙括趙嬰齊 : 모두 趙盾의 아우이다. 趙同은 원래 趙談이다. 《史記 趙世家》
역주14 〈趙同〉 : 《史記》 〈趙世家〉와 《新序》 〈節士〉에 ‘趙同’ 두 글자가 있어 이를 따라 보충하였다.
역주15 程嬰 : 趙朔의 門客이다. 일설에는 친구라고 한다. 조삭의 문객 公孫杵臼와 程嬰이 모의하고 공손저구가 다른 사람의 어린아이를 조삭의 유복자로 가장하여 산중에 숨었는데, 정영이 이를 조삭의 유복자라고 고발하여 공손저구와 그 어린아이는 살해되었다. 그 뒤 정영이 조삭의 진짜 유복자를 데려다가 산중에서 길렀고, 屠岸賈가 피살된 뒤에 정영은 자살하여 공손저구의 죽음을 갚았다. 《史記 趙世家》
역주16 大業 : 秦나라와 趙나라의 시조이다. 《史記》 〈秦本紀〉에 의하면 “顓頊의 苗裔 女孫은 修이며, 修가 베를 짜는데 제비가 알을 떨어뜨리자 修가 그 알을 먹어 아들 大業을 낳았다” 한다.
역주17 中衍 : 殷나라 사람으로 秦나라의 조상이다. 사람의 말을 하는 새 모양의 몸을 가졌다고 한다. 《史記 秦始皇本紀》
역주18 幽厲 : 周나라 幽王과 厲王을 이른다. 幽王은 宣王의 아들로 周나라 12대왕이다. 이름은 宮涅, 포학한 昏君으로 아들 平王이 洛陽으로 東遷하여 東周時代가 열렸다. 《史記 周本紀》 厲王은 周나라 10대왕으로 이름은 胡이다. 재물을 탐하고 비방하는 사람을 감시하는 등 포학과 사치로 폭동이 일어나자 彘로 달아나 그곳에서 죽었다. 그가 달아난 후 周‧召 두 公이 협의하여 다스린 시기를 共和라 한다. 《史記 周本紀》
역주19 文侯 : 춘추시대 晉의 군주로 이름은 仇이다. 부친이 죽고 동생 殤叔이 즉위하자, 망명했다가 4년 뒤에 殤叔을 축출하고 즉위하였다. 《史記 晉世家》
역주20 龜策 : 거북점[卜]과 주역점[筮]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거북점은 거북의 등딱지를 불에 지져서 생기는 균열로 吉凶을 점치고, 주역점은 蓍草로 卦를 만들어 길흉을 점치는데 시초를 策이라고 한다.
역주21 : 趙武로, 趙盾의 손자이다. 趙孟이라고도 한다. 趙朔의 유복자로 程嬰‧公孫杵臼의 도움으로 살아남아 뒤에 卿이 되고 趙氏를 중흥하였다. 시호는 文子이다. 《春秋左氏傳 成公 18년, 襄公 9‧11‧13‧18‧25‧26‧27‧28‧29‧30‧31년, 昭公 元‧3‧20년》
역주22 : 《群書拾補》에는 오자라 하여 ‘故’로 고쳤다.

설원(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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