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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苑(2)

설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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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6. 晉太史 見晉國之亂하고之驕而無德義也하고 以其法歸周하다
나라 태사太史 도여屠餘가 진나라가 혼란스럽고 진 평공晉 平公이 교만하여 덕행德行도의道義가 없는 것을 보고 진나라의 도적圖籍법전法典을 가지고 나라에 귀순하였다.
見而問焉하야 曰 天下之國 其孰先亡 對曰 晉先亡하리이다
주 위공周 威公이 그를 만나 물었다. “천하의 제후국 중에 어떤 나라가 가장 먼저 망하겠소?” 도여가 대답했다. “진나라가 가장 먼저 망할 것입니다.”
威公問其說한대 對曰 臣不敢直言이나 示晉公以天妖하야 日月星辰之行多不當이어늘 曰 是何能然고하며 示以人事多不義하야 百姓多怨이어늘 曰 是何傷고하며 示以隣國不服하고 賢良不興이어늘 曰 是何害오하니 是不知所以存 所以亡이라 故臣曰 晉先亡이라하노이다
위공이 그 이유를 묻자, 도여가 대답했다. “제가 감히 솔직하게 말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진공晉公께 하늘의 재이災異 현상을 들어 일월성신日月星辰의 운행이 대부분 정상이 아니라고 제시했건만, 진공晉公은 ‘어째서 그러한가?’ 하였으며, 인정人情 사리事理가 대부분 도의道義에 부합하지 못하여 백성들의 원망이 많다고 제시했건만, 진공晉公은 ‘이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하였으며, 이웃 나라들이 복종하지 않고 어진 사람이 추천을 받지 못한다고 제시했건만, 진공晉公은 ‘이것이 어찌 위해危害가 되겠는가?’ 하였습니다. 이것은 국가가 존속하는 원인과 멸망하는 원인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저는 진나라가 가장 먼저 망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居三年 晉果亡하다 威公又見屠餘而問焉하야 曰 孰次之 對曰 中山次之리이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뒤 진나라는 정말 망하였다. 위공이 또 도여를 만나 물었다. “다음은 어느 나라가 망하겠소?” 도여가 대답했다. “중산국中山國이 그 다음에 망할 것입니다.”
威公問其故한대 對曰 天生民 令有辨하니 有辨 人之義也 所以異於禽獸麋鹿也 君臣上下所以立也니이다 中山之俗 以晝爲夜하고 以夜繼日하야 男女하야 固無休息이라 淫昏康樂하야 歌謳好悲어늘 其主弗知惡하니 此亡國之風也 臣故曰 中山次之라하노이다
위공이 그 까닭을 묻자, 도여가 대답했다. “하늘이 사람을 내었을 때 분별이 있게 하였으니, 분별이 있는 것이 사람의 도의입니다. 이 때문에 사람이 금수禽獸 미록麋鹿과 다르고, 군신君臣 상하上下의 관계가 확립되는 것입니다. 중산국中山國의 풍속은 낮을 밤으로 삼고 밤의 일을 낮까지 이어서 남녀男女가 무람없이 친밀하여 방탕한 생활을 그칠 때가 없습니다. 음란하고 혼미하게 향락하면서 슬픈 노래를 부르기 좋아하는데 그 임금은 이를 싫어할 줄 모르고 있으니, 이는 나라가 망할 풍속입니다. 저는 이 때문에 중산국이 그 다음에 망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居二年 中山果亡하다 威公又見屠餘而問하야 曰 孰次之 屠餘不對한대 威公固請하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뒤 중산국이 정말 망하였다. 위공이 또 도여를 만나 물었다. “다음은 어느 나라가 망하겠소?” 도여가 대답을 하지 않자, 위공이 굳이 물었다.
屠餘曰 君次之니이다 威公懼하야 求國之長者하야而禮之하고 又得하야 以爲諫臣하며 去苛令三十九物하고 以告屠餘하다
이에 도여가 대답했다. “바로 군주君主가 그 다음으로 망할 것입니다.”위공이 두려워하여 나라 안의 인망人望이 높은 사람을 찾아 기주錡疇전읍田邑을 얻어 예우하고, 또 사리史理조손趙巽을 얻어 간신諫臣으로 삼았으며, 39건의 가혹한 법령을 폐지하고 도여에게 그 사실을 말해주었다.
屠餘曰 其尙終君之身하리이다 臣聞國之興也 天遺之賢人하며 與之極諫之士하고 國之亡也 天與之亂人與善諛者하나니이다
이에 도여가 말했다. “아마 군주 살아생전에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들으니, 나라가 흥성할 때에는 하늘이 현인賢人을 보내며 있는 힘을 다해 하는 사람을 주고, 나라가 망할 때에는 하늘이 난인亂人과 아첨을 잘하는 사람을 준다고 합니다.”
威公薨 하고 周乃分而爲二 故有道者言 不可不重也니라
위공이 죽은 뒤에 아홉 달이 되도록 장례를 치르지 못하였고, 주나라는 마침내 둘로 쪼개졌다. 그러므로 도덕道德이 있는 사람의 말은 중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역주
역주1 屠餘 : 《呂氏春秋》 〈先識〉에는 ‘屠黍’로 되어 있다. 또 高誘 注에 晉 出公의 太史라고 하였다.
역주2 晉平公 : 平公은 《呂氏春秋》 〈先識〉의 高誘 注에 ‘出公’이라 하고, “出公은 頃公의 손자이고, 定公의 아들이다. 《史記》에 ‘智伯이 出公을 공격하자, 출공이 齊나라로 달아나다가 길에서 죽었다.’라고 했다.” 하였다.
역주3 (國)[圖] : 저본에는 ‘國’으로 되어 있으나, 《呂氏春秋》 〈先識〉에 의거하여 ‘圖’로 바로잡았다.
역주4 周威公 : 본서 권3 〈建本〉 20의 주5) 참고.
역주5 切踦 : 부딪치고 기댄다는 뜻으로, 무람없이 친밀하고 가까이함을 이른다. 切倚로도 쓴다. 《呂氏春秋 先識》‧《淮南子 齊俗訓》
역주6 錡疇田邑 : 周 威公 때의 두 賢臣이다. ‘錡疇’는 《呂氏春秋》 〈先識〉에는 ‘義蒔’로 되어 있다.
역주7 史理趙巽 : 周 威公 때 直諫하던 두 신하이다. 《呂氏春秋》 〈先識〉에는 ‘史驎’, ‘趙騈’으로 되어 있다.
역주8 九月不得葬 : 周 威公이 죽은 뒤에 작은 아들 公子 根이 太子 朝와 王位 쟁탈전을 벌여 내란이 일어나 아홉 달 동안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가매장을 했다. 이때 韓나라와 趙나라가 공자 근을 도와 鞏(지금의 河南省 鞏縣 서남쪽)에서 독립하니, 이 때문에 西周가 분열하여 東周와 서주의 두 小國이 되고 국력은 더욱 약화되었다. 《史記 周本紀》

설원(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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