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秦始皇旣兼天下
하고 大侈靡
하야 卽位三十五年
에 猶不息
하야 하야 히 塹山堙谷
하야 直通之
하다 厭先王宮室之小
하야 乃於
之間
의 文武之處
에 하고
作前殿阿房
하니 東西五百步
요 南北五十丈
이니 上可坐萬人
이요 下可建五丈旗
라 周爲
하야 自殿直抵南山之嶺以爲
하고 爲
하야 自阿房度渭水
하야 屬咸陽
하야 以象
하다
又
하다 關中離宮三百所
와 關外四百所
에 皆有鐘磬帷帳婦女倡優
하다 하야 以爲秦東門
하다
於是有方士
과 이 相與謀曰 當今時不可以居
라 上樂以刑殺爲威
하고 下畏罪
하야 持祿莫敢盡忠
이라 上不聞過而日驕
하고 下懾伏以慢欺而取容
하니 諫者不用而失道滋甚
이라 吾黨久居
면 且爲所害
하리라하고 乃相與亡去
하다
始皇聞之
하고 大怒
하야 曰 吾異日厚盧生
하야 尊爵而事之
어늘 今乃誹謗我
로다 吾聞諸生
이 多爲妖言以亂黔首
라호라 乃使御史
하다
諸生傳相告
하야 犯法者四百六十餘人
이라 皆坑之
하다 盧生不得
하고 而侯生後得
하니 始皇聞之
하고 召而見之
하다 升阿東之臺
하야 臨四通之街
하야 將數而車裂之
하다
始皇望見侯生하고 大怒하야 曰 老虜不良하야 誹謗而主하고 迺敢復見我아
侯生至하야 仰臺而言曰 臣聞知死必勇이라하니 陛下肯聽臣一言乎잇가
侯生曰 臣聞禹立
은 欲以知過也
어늘 今陛下奢侈失本
하고 淫佚趨末
하며 宮室臺閣
이 連屬增累
하고 珠玉重寶 積襲成山
하며 錦繡文綵 滿府有餘
하고 婦女倡優 數巨萬人
이요 鍾鼓之樂
이 流漫無窮
하고 酒食珍味 盤錯無前
하며 衣服輕暖
하고 輿馬文飾
하야 所以自奉
의 麗靡爛漫
을 不可勝極
이니이다
黔首匱竭
하고 民力
盡
이어늘 尙不自知
하고 又急誹謗
하야 嚴威克下
하니 下喑上聾
일새 臣等故去
로소이다 臣等不惜臣之身
이요 惜陛下國之亡耳
니이다 聞古之明王
은 食足以飽
하고 衣足以煖
하며 宮室足以處
하고 輿馬足以行
이라
故上不見棄於天
하고 下不見棄於黔首
하니이다 堯茅茨不剪
하고 采椽不斲
하며 土階三等
호되 而樂終身者
는 以其文采之少
하고 而質素之多也
니이다 傲虐好慢淫
하야 不修理化
하야 遂以不升
하니이다
今陛下之淫
은 萬丹朱而千
桀紂
니 臣恐陛下之十亡也
어늘 而曾不一存
이니이다
侯生曰 陛下之意
는 方乘靑雲
하야 飄搖於文章之觀
하고 自賢自健
하야 上侮
하고 下凌
하며 棄素樸
하고 就末技
하니 陛下亡徵見久矣
니이다
臣等恐言之無益也요 而自取死라 故逃而不敢言이러니 今臣必死라 故爲陛下陳之하노니 雖不能使陛下不亡이나 欲使陛下自知也하노이다
侯生曰 形已成矣
니 陛下坐而待亡耳
니이다 若陛下欲更之
인댄 能若堯與禹乎
잇가 不然
이면 無
也
니이다 陛下之佐又非也
니 臣恐變之不能存也
하노이다
始皇喟然而歎하고 遂釋不誅하다 後三年에 始皇崩하고 二世卽位나 三年而秦亡하다
진 시황秦 始皇이 이미 천하를 겸병하고 나서 크게 사치하였다. 즉위한 지 35년이 되었는데도 오히려 사치를 그치지 않아 크게 치도馳道를 닦아서 구원九原에서부터 운양雲陽에 이르기까지 산을 깎고 골짜기를 메워 곧장 통하게 하였다. 선왕先王의 협소한 궁실宮室을 혐오하여 풍豐과 호경鎬京 사이 주 문왕周 文王과 무왕武王이 거처하던 곳인 위수渭水 가 남산南山의 임원林苑에 왕궁王宮을 지었다.
정전正殿(전전前殿)인 아방궁阿房宮을 지었는데, 동서東西의 길이는 500보步요, 남북의 넓이는 50장丈으로, 그 위에는 1만 명이 앉을 수 있고, 아래에는 5장丈 길이의 기치旗幟를 세울 수 있었다. 사방 둘레에 각도閣道를 만들어 궁전 아래에서 곧장 남산南山의 정상에 도달하여 문궐門闕을 만들고, 복도複道를 만들어 아방궁에서 위수渭水를 건너 함양咸陽에 닿게 하여 천극성天極星과 각도성閣道星이 은하수를 가로질러 영실성營室星에 닿아 있는 천체天體를 상징하였다.
또 여산驪山에 능묘陵墓 공사를 일으켜 삼천三泉의 밑바닥에 구리를 녹여 부어 막았다. 함곡관函谷關 서쪽[관중關中]에 있는 별궁[이궁離宮] 300곳과 함곡관 동쪽[관외關外]에 있는 별궁 400곳에 모두 종경鐘磬과 장막을 설치하고 미녀와 광대를 배치하였다. 동해東海 가의 구산朐山 경계에 석궐石闕을 세워 진나라의 동문東門으로 삼았다.
이때에 방사方士로 한韓나라 사람인 후생侯生과 제齊나라 사람인 노생盧生이 서로 상의하여 말했다. “현재 여기에 그대로 살 수가 없다. 황상皇上은 사형에 처하는 형벌로 위엄을 보이기를 즐거워하고 신하들은 죄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녹봉만을 유지하면서 충성을 다하지 않는다. 황상은 자신의 잘못을 듣지 못하여 날마다 더욱 교만해지고, 신하들은 두려워 복종하면서 태만과 속임수로 아첨을 떨어 용납되기를 구한다. 간諫하는 사람을 중용重用하지 않아 도의道義를 위배하는 일이 더욱 심하다. 우리들이 이곳에 오래 머물면 장차 살해를 당할 것이다.”그러고는 즉시 함께 도망쳐버렸다.
진 시황이 이 사실을 듣고 크게 노하여 말했다. “내가 지난날 노생을 후하게 대우하여 벼슬을 높여주고 섬겼는데, 지금 나를 비방하는구나. 나는 들으니, 제생諸生들이 요상한 말을 많이 만들어 백성들을 혼란시킨다고 한다.”그러고는 곧 어사御使를 파견하여 제생들을 모두 조사하여 심문하게 하였다.
제생들이 서로 고인告引하여 법을 범한 사람이 460여 명이나 되었는데 모두 구덩이에 묻어 죽였다. 노생은 잡지 못하였고, 후생은 뒤에 잡으니, 시황이 이를 듣고 후생을 불러 직접 만나고자 하였다. 아동대阿東臺에 올라 사통팔달의 거리를 마주하여 후생의 죄를 열거한 뒤에 거열형車裂刑에 처하려고 하였다.
시황이 후생을 멀리 바라보고 크게 노하여 말했다. “이 늙은 도적놈이 불량不良하여 네 임금을 비방하고서 감히 나를 다시 볼 수 있단 말이냐!”
후생이 당도하여 누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신臣은 들으니, 죽을 줄을 알면 반드시 용감해진다고 합니다. 폐하陛下께서는 신의 한마디 말씀을 들어주시겠습니까?”
시황이 말했다. “너는 무슨 말을 하려느냐? 말해보거라.”
후생이 말했다. “신은 들으니, 하우夏禹가 비방誹謗하는 말을 쓰는 나무를 세운 것은 자기의 잘못을 알려고 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폐하께서는 사치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을 잃고, 음란하고 방종하여 향락을 추구하며, 궁실과 대각臺閣이 중첩되어 서로 이어지고, 주옥珠玉과 진보珍寶가 쌓여 산을 이루며, 화려한 색채로 수놓은 비단이 창고에 가득 차 넘치고, 미녀와 광대의 수가 만 명이나 되며, 종고鐘鼓의 연주 소리가 끝없이 울려 퍼지고, 맛있는 술과 음식이 앞에 널려 있으며, 의복은 가볍고 따뜻하며, 수레와 말은 아름답게 장식하여, 자신을 봉양하는 물품이 화려하고 찬란한 것을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백성들의 생활은 궁핍하고 민력民力은 모두 고갈되었는데 아직도 스스로 알지 못하고, 또 비방하는 말에 조바심을 내어 엄혹한 형벌로 아랫사람들을 제압하고 있습니다. 아래의 신민臣民들은 벙어리가 되고, 위의 황상은 귀머거리가 되었기 때문에 신 등이 떠난 것입니다. 신 등은 자신의 몸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폐하의 나라가 망하는 것을 애석하게 여길 뿐입니다. 듣건대 고대의 현명한 임금은 음식은 배가 부르면 그만이고, 옷은 몸이 따뜻하면 그만이며, 궁실은 거처할 만하면 그만이고, 수레와 말은 길을 가기만 하면 그만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위로는 하늘에게 버림을 받지 않고, 아래로는 백성들에게 버림을 받지 않았습니다. 제요帝堯는 띠로 이은 추녀의 끝을 가지런하게 자르지 않고, 떡갈나무 서까래를 깎아 다듬지 않으며, 세 층의 흙 계단을 쌓은 집에서 살았으나 일생 동안 즐겁게 지낸 것은 화려하게 꾸민 것이 적고 소박한 본질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단주丹朱는 오만하고 포학하며 음란함을 좋아하여 정사政事와 교화敎化를 수행修行하지 아니하여 마침내 제위帝位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현재 폐하의 방종한 생활은 단주보다 만 배나 더하고, 곤오昆吾와 걸주桀紂보다 천 배나 더하니, 신은 폐하께서 멸망할 행위는 열 가지나 하면서 보존할 행위는 한 가지도 하지 않는 것을 걱정하는 것입니다.
시황이 한동안 묵묵히 있다가 말했다. “너는 어찌 일찌감치 말하지 않았느냐?”
후생이 말했다. “폐하의 의기意氣가 한창 청운靑雲을 타고 하늘에 올라 화려하게 꾸민 궁관宮觀에 맴돌고, 스스로 현명하고 스스로 굳세다고 여기어, 위로는 오제五帝를 업신여기고, 아래로는 삼왕三王을 능멸하며, 소박한 생활의 원칙을 버리고 말단의 방종한 생활을 추구하니 폐하의 멸망할 징조가 나타난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신 등은 말씀드려 봤자 유익함은 없고, 스스로 죽음만을 얻을까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도망치고 감히 말하지 못했었는데, 지금 신은 반드시 죽게 될 것입니다. 그 때문에 폐하를 위해 말씀드리는 것이니, 폐하를 멸망하지 않게 할 수는 없지만 폐하께서 스스로 이를 아시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시황이 말했다. “내가 바르게 변할 수 있겠느냐?”
후생이 말했다. “망할 형세가 벌써 정해졌으니, 폐하께서는 그대로 앉아서 멸망하기만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폐하께서 바르게 고치려고 하신다면 능히 제요帝堯와 하우夏禹같이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희망이 없습니다. 폐하의 보필하는 신하들 또한 옳지 않으니, 신은 폐하가 변하여도 나라를 보존하지 못할까 걱정됩니다.”
시황이 한숨을 쉬며 탄식하고는 마침내 후생을 주살誅殺하지 않고 석방하였다. 그 뒤 3년 만에 시황이 죽고, 이세二世가 즉위했으나, 또 3년이 지나 진나라는 멸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