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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苑(1)

설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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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8. 問於
제 환공齊 桓公영척甯戚에게 물었다.
今年老矣
관자管子는 현재 나이가 많아 늙었소.
棄寡人而就世也 吾恐法令不行하며 人多失職하며 百姓疾怨하며 國多盜賊일까하노니
만일 과인을 버리고 죽으면, 법령法令이 시행되지 않으며 사람들은 직무를 이행하지 않으며 백성은 미워하고 원망하며 나라에 도적이 많을까 봐 나는 걱정되오.
吾何如而使姦邪不起하고
내가 어떻게 하면 간사한 일이 일어나지 않고 백성은 의식衣食이 풍족하게 할 수 있겠소?”
甯戚對曰 要在得賢而任之니이다
영척이 대답했다. “요체는 어진 이를 얻어 정사政事를 맡기는 데 달려 있습니다.”
桓公曰 得賢奈何
환공이 말했다. “어찌해야 어진 이를 얻을 수 있소?”
甯戚對曰 開其道路하고 察而用之호되 尊其位하고 重其祿하며 顯其名이면 則天下之士 騷然擧足而至矣리이다
영척이 대답했다. “어진 이를 추천하는 길을 활짝 열고 분명히 살펴서 임용하되, 지위地位를 존귀하게 하고 녹봉祿俸을 많이 주며 명성을 드날리게 하면 천하의 인재들이 떠들썩하게 발을 옮겨 올 것입니다.”
桓公曰 旣以擧賢士而用之矣어니와 微夫子幸而臨之 則未有布衣之士 踵門而求見寡人者리라
환공이 말했다. “이미 어진 인재를 선발하여 등용했으나 선생이 행여 와서 돕지 않으면 서민庶民 중의 뛰어난 인재들이 문에 와서 과인을 만나려 하지 않을 것이오.”
甯戚對曰 是君察之不明하고 擧之不顯하며 而用之疑하고 官之卑하며 祿之薄也니이다
영척이 대답했다. “이는 임금께서 인재를 명확하게 살피지 못하고 인재의 선발을 분명하게 하지 않으며, 그를 임용하고는 의심하고 낮은 벼슬을 주며 적은 녹봉을 주기 때문입니다.
且夫國之所以不得士者 有五阻焉하니 主不好士하야 諂諛在傍 一阻也 言便事者 未嘗見用 二阻也
또 나라가 어진 인재를 얻지 못하는 까닭으로는 다섯 가지 장애障礙가 있으니, 임금이 어진 인재를 좋아하지 않고 아첨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 것이 첫 번째 장애요, 정사에 편리한 일을 말하는 사람이 등용되지 않는 것이 두 번째 장애요,
壅塞掩蔽하야 必因近習하고 然後見察 三阻也 訊獄 詰窮其辭하야 以法過之 四阻也 執事適欲하야 擅國權命 五阻也니이다
언로言路가 막히고 실상이 가려져서 인재가 반드시 측근의 친근한 사람을 통한 뒤에야 선발되는 것이 세 번째 장애요, 옥사獄事를 신랄한 말로 끝까지 신문하여 과도한 법을 적용하는 것이 네 번째 장애요, 관리가 자기의 욕망을 따라 국정을 독단하고 권력을 부리는 것이 다섯 번째 장애입니다.
去此五阻 則豪俊竝興하고 賢智 五阻不去 則上蔽吏民之情하고 下塞賢士之路
이 다섯 가지 장애를 제거하면 호걸과 뛰어난 인재가 모두 일어나고 어질고 지혜 있는 자가 와서 자리에 있을 것이고, 다섯 가지 장애를 제거하지 않으면 위로는 관리와 백성의 실정이 가려지고 아래로는 어진 인재가 진출하는 길이 막히게 됩니다.
是故 明王聖主之治 若夫江海無不受 故長爲百川之主하고 明王聖君無不容이라 故安樂而長久니이다
이 때문에 현명하고 슬기로운 임금이 다스리는 국가는 마치 강해江海가 받아들이지 않는 물이 없기 때문에 영원히 모든 냇물의 주장主掌이 되는 것처럼, 현명하고 슬기로운 임금은 포용하지 않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백성을 안락하게 하여 오랫동안 유지됩니다.
因此觀之하면 則安主利人者 非獨一士也니이다
이를 통하여 보면 임금을 편안히 하고 백성을 이롭게 하는 사람은 한 사람만의 어진 인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桓公曰 善하다 吾將著夫五阻하야 以爲戒本也호리라
환공이 말했다. “훌륭합니다. 나는 이 다섯 가지 장애를 기록하여 경계하는 근본으로 삼겠소.”
역주
역주1 齊桓公 : 춘추시대 齊나라의 군주로, 이름은 小白이다. 管仲을 중용하여 富國强兵을 이루고 周 王室을 높이고 夷狄을 물리쳤으며 제후를 규합하여 천하의 질서를 바로잡아 春秋五霸의 으뜸이 되었다. 桓은 시호이다. 《史記 齊太公世家》
역주2 甯戚 : 춘추시대 齊나라 大夫이다. 본래는 衛나라 사람으로, 집이 가난하여 남의 수레를 끄는 일을 하다가 제나라에 가서 남의 소를 사육하는 일을 하였다. 齊 桓公이 밤에 출타하였는데 甯戚이 소의 뿔을 두들기면서 노래를 부르자 桓公이 불러서 이야기해보고는 上卿에 임명하였고, 뒤에 相國이 되었다. 《史記 鄒陽傳》‧《管子 小稱》‧《楚辭 離騷》
역주3 筦子 : 筦은 管과 같다. 춘추시대 齊나라 재상 管仲으로, 이름은 夷吾이다. 字가 仲이기 때문에 주로 管仲으로 일컫는다. 齊 桓公을 도와 춘추시대 五霸의 으뜸이 되게 하였고, 桓公은 管仲을 존경하여 仲父라 불렀다. 《史記 管晏列傳》
역주4 : ‘如’와 같은 뜻이다.
역주5 (民衣食足乎)[民足衣食乎] : 저본에는 ‘民衣食足乎’로 되어 있으나, 《說苑校證》에 “舊本에는 ‘民衣食足乎’로 되어 있는데, 魯文弨는 ‘宋本에 民足衣食乎로 되어 있다.’ 하였다. 내가 살펴보니 明鈔本에도 같았다.”라 한 것에 따라 ‘民足衣食乎’로 바로잡았다.
역주6 屈奇 : ‘기이하다, 특이하다’는 뜻이다. 《文子 符言》
역주7 (求)[來] : 각 本에 ‘求’로 되어 있으나, 《群書拾補》에 ‘來’로 교정하였기에 이에 따라 ‘來’로 바로잡았다.

설원(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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