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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苑(2)

설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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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27. 越破吳하고 請師於楚以伐晉하니 楚王與大夫皆懼하야 將許之하다
나라가 나라를 격파하고 나라에게 군대를 내어 함께 나라를 토벌하자고 요청하니, 초왕楚王대부大夫들이 모두 두려워하여 허락하려고 하였다.
曰 此恐吾攻己 故示我不病이니 請爲千乘 卒三萬하야 與分吳地也호리이다
좌사左史 의상倚相이 말했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자기 나라를 공격할까 두렵기 때문에 우리에게 지치지 않았음을 과시하는 것입니다. 장곡長轂 1천 보병步兵 3만을 출동시켜 월나라와 더불어 오나라 땅을 나누어 가질 것을 요청합니다.”
聽之하야 遂取하다
초 장왕楚 莊王이 그의 말을 따라 마침내 동국東國의 땅을 차지하였다.
역주
역주1 左史倚相 : 楚 靈王 때의 史官으로, 倚相은 이름이다. 周代에 左史와 右史의 두 史官을 두었는데, 左史는 王에 관한 일을, 右史는 왕의 말을 기록하였다. 영왕은 좌사였던 의상을 《三墳》‧《五典》‧《八索》‧《九丘》의 古書를 읽었다고 칭찬하였다. 《春秋左氏傳 昭公 12년》‧《禮記 玉藻》‧《漢書 藝文志》
역주2 長轂 : 본서 권8 〈尊賢〉 14의 주2) 참고.
역주3 莊王 : 《說苑校證》에 《史記》 〈楚世家〉의 “楚 惠王 44년에 越나라가 吳나라를 멸하였다.”는 사실을 들어 ‘莊王’을 ‘惠王’이라고 하였다.
역주4 東國 : 楚나라의 동부 지역인 淮河 북쪽 지역을 말한다. 《韓非子》 〈說林 下〉에 “노산의 북쪽 500리 땅을 떼어 楚나라에 주었다.[乃割露山之陰五百里以賂之]” 하였는데, 노산은 長江과 淮河 사이에 있다. 또 《史記》 〈楚世家〉에는 “이때에 월나라가 이미 오나라를 멸하였으나 장강과 회하 북쪽에서는 우두머리 노릇을 하지 못하자 초나라가 동쪽을 침략하여 사수 가까지 땅을 넓혔다.[是時越已滅吳 而不能正江淮北 楚東侵 廣地至泗上]”라 하였다.

설원(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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