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說苑(2)

설원(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설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4. 하고 曰 周公不如太公之賢也니이다
신력辛櫟노 목공魯 穆公을 뵙고 말했다. “주공周公태공太公의 현명함만 못합니다.”
穆公曰 子何以言之
목공이 말했다. “그대는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말하시오?”
辛櫟對曰 周公擇地而封하고 太公擇地而封하니 爵土等이나 其地不若營丘之美 人民不如營丘之衆이니이다 不徒若是 營丘又有天固니이다
신력이 대답했다. “주공은 곡부曲阜 땅을 선택하여 그곳에 봉해졌고, 태공은 영구營丘 땅을 선택하여 그곳에 봉해졌습니다. 작위爵位봉지封地는 똑같지만 곡부 땅은 영구보다 비옥하지 못하고, 곡부의 백성은 영구보다 많지 않습니다. 단지 이와 같을 뿐만이 아니라 영구는 또 천연天然험고險固한 땅입니다.”
穆公心慙하야 不能應也러라 辛櫟趨而出하고 하니 穆公具以辛櫟之言으로 語南宮邊子하다
목공은 마음에 부끄러움을 느껴 대답하지 못하였다. 신력이 종종걸음으로 나가고 남궁변자南宮邊子가 들어오니, 목공은 신력이 한 말을 빠짐없이 남궁변자에게 말해주었다.
南宮邊子曰 曰 予一人 兼有天下하야 辟就百姓하니 敢無中土乎 使予有罪 則四方伐之 無難得也리라하니이다
이에 남궁변자가 말했다. “옛날 주 성왕周 成王이 점을 쳐서 성주成周에 터를 잡을 때 거북 등딱지에게 말하기를 ‘나 한 사람이 천하를 모두 소유하여 백성을 가까이하여 다스리는데, 어찌 천하의 중앙에 땅을 잡지 않으랴! 만일 나에게 죄가 있으면 사방에서 나를 토벌하기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라 하셨습니다.
周公 卜居曲阜 其命龜曰 作邑乎山之陽하노니 賢則茂昌하고 不賢則速亡이리라하니이다
주공이 점을 쳐서 곡부에 터를 잡을 때 거북 등딱지에게 말하기를 ‘산의 남쪽에 도읍을 만들려고 하니, 임금이 현명하면 나라가 창성하고, 임금이 현명하지 않으면 빨리 망하리라.’ 하셨습니다.
之戒其子也하야 曰 吾欲室之하노니 使吾後世 有不能事上者 使其替之益速호리라하니이다
계손행부季孫行父가 그 자식에게 경계하기를 ‘나는 집을 주사周社박사亳社 사이에 지으려고 하니, 만일 나의 후세後世에 임금을 잘 섬기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더욱 빨리 소멸消滅되게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如是則曰 賢則茂昌하고 不賢則速亡 安在擇地而封哉 或示有天固也니잇가 辛櫟之言 小人也 子無復道也하소서
이와 같다면 ‘임금이 현명하면 나라가 창성하고, 임금이 현명하지 않으면 빨리 망하리라.’라는 말씀이 어찌 땅을 선택하여 봉하는 데 있겠으며, 혹은 천연의 험고함을 제시한 것이겠습니까? 신력의 말은 소인小人이 하는 말이니, 군주께서는 더 이상 말씀하지 마십시오.”
역주
역주1 辛櫟見魯穆公 : 辛櫟은 전국시대 魯나라 大夫이다. 《呂氏春秋》 〈長利〉에는 ‘辛寬’으로 되어 있다. 魯 穆公은 전국시대 魯나라 군주로 이름은 顯 또는 不衍이다. 悼公의 손자로, 公儀休를 재상으로 등용하여 나라를 안정시켰다. 《史記 魯世家》
역주2 曲阜 : 周 武王이 아우 周公 旦을 封한 魯나라의 국도이다. 지금의 山東省 曲阜市이다. 《讀史方輿紀要 山東 兗州府》
역주3 營丘 : 周 武王이 太公望 呂尙을 封한 齊나라의 국도이다. 뒤에 이름을 臨淄로 고쳤다. 지금의 山東省 淄博市 임치 북쪽에 있었다. 《史記 齊太公世家》
역주4 南宮邊子 : 孔子의 제자 南宮适이라고 한다. 字는 子容‧南容으로, 孟僖子의 아들인 仲孫閔이다. 言行이 신중하여 공자의 칭찬을 받았고, 공자가 형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論語 憲問》‧《史記 仲尼弟子列傳》
역주5 昔周成王之卜居成周 : 周 成王이 점을 쳐서 成周를 東都로 營建할 곳으로 정했다는 말이다. 주 성왕은 본서 권1 〈君道〉 03의 주1) 참고. 성주는 西周시대의 동도 洛邑을 이르는데, 지금의 河南省 洛陽市 동쪽 교외에 있었다 한다. 성주라고 이름 붙인 것은 周道가 비로소 완성되었다는 뜻으로 宗周(鎬京)와 상대되는 말이라 한다. 周 平王이 東遷한 뒤에 國都가 되어 東周시대를 열었다. 전국시대에 이름을 洛陽城으로 고쳤다.
역주6 命龜 : 옛날 吉凶을 점칠 때, 卜人이 점칠 일을 거북 등딱지에 입으로 말하던 일을 말한다. 또는 거북 등딱지를 구워서 점치는 일을 두루 이르기도 한다. 《周禮 春官 大卜》‧《禮記 雜記 上》
역주7 季孫行父 : 본서 권11 〈善說〉 25의 주2) ‘季文子’ 참고.
역주8 俠於兩社之間 : 周社와 亳社의 중간에 끼어 있게 한다는 말이다. ‘俠’은 ‘夾’과 통용이다. 兩社는 주사와 박사인데, ‘社’는 土地神에게 제사하는 社壇이다. 주사는 춘추시대 魯나라의 國社이니, 노나라가 周나라의 제후이기 때문에 국사를 주사라 한다. 박사는 殷社이니, 옛날 나라를 세우면 반드시 먼저 사단을 세우는데, 殷나라는 처음에 亳에 도읍했기 때문에 은사를 박사라 한다. 《春秋左氏傳 閔公 2년, 定公 6년, 哀公 4년》

설원(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