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하야 絶糧
하니 弟子皆有饑色
이어늘 孔子歌兩柱之間
하시다
孔子不應하시고 曲終而曰 由아 君子好樂은 爲無驕也요 小人好樂은 爲無懾也하나니 其誰知之리오 子不我知而從我者乎아
子路不悅
하야 干而舞
라가 而出
하다 及至七日
토록 孔子修樂不休
하시니 子路慍見曰 夫子之修樂
이 時乎
잇가
孔子不應
하시고 樂終而曰 由
아 昔者
에 하고 하며 라 故居不幽
면 則思不遠
이요 身不約
이면 則智不廣
하나니 庸知而不遇之
리오
於是興
이러니 明日免於厄
하다 子貢執轡
하고 曰 二三子從夫子而遇此難也
하니 其不可忘
니이다
孔子曰 惡
라 是何也
오 語不云乎
아 라하니라 夫陳蔡之間
은 丘之幸也
니 二三子從丘者
는 皆幸人也
니라 吾聞人君不困
이면 不成王
이요 列士不困
이면 不成行
이라호라 昔者
에 하고 하고 하고 하고 하고 라 夫困之爲道
는 從寒之及暖
이요 暖之及寒也
니 惟賢者 獨知而難言之也
니라
공자孔子께서 진陳나라와 채蔡나라 지경에서 곤경을 당하시어 양식마저 떨어지자 제자들이 모두 굶주린 기색이 있었는데, 공자는 두 기둥 사이에서 노래를 부르셨다.
자로子路가 들어와 뵙고는 말했다. “부자夫子께서 노래를 부르시는 것이 예禮에 맞는 일입니까?”
공자는 응답하지 않고 부르던 노래를 마친 다음에 말씀하셨다. “중유仲由(자로子路의 성명)야. 군자君子가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교만함을 없애기 위해서이고, 소인小人이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인데, 누가 이런 도리道理를 알겠느냐? 너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나를 따라 배우려는 것이냐?”
자로가 기뻐하지 않으면서 방패를 잡고 춤을 추다가 세 곡曲이 끝나자 나가버렸다. 7일이 되도록 공자가 그치지 않고 음악을 연주하니, 자로가 성이 나서 공자를 뵙고 말했다. “부자夫子께서 음악을 연주하시는 것이 때에 맞는 일입니까?”
공자는 응답하지 않으시고 연주하던 음악을 마치고 말씀하셨다. “중유야. 옛날 제 환공齊 桓公은 거莒나라에 망명했을 때 패자霸者가 되려는 마음이 생겼고, 구천句踐은 회계산會稽山에서 곤욕을 치를 때 패자霸者가 되려는 마음이 생겼으며, 진 문공晉 文公은 여씨驪氏에게 모함을 당할 때 패자霸者가 되려는 마음이 생겼다. 그러므로 유폐 같은 곤경에 처해보지 않으면 생각이 원대하지 않고, 몸이 제약을 받아보지 않으면 지혜가 넓지 못한 법이다. 네가 어찌 나의 불우不遇함을 알겠느냐?”
이에 모두 진작振作되었는데, 이튿날 곤액에서 벗어났다. 자공子貢이 말고삐를 잡고 말했다. “제자들이 부자를 따르다가 이러한 재난을 만났으니, 아마 잊을 수 없을 듯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 이 무슨 말인가! 고어古語에 말하지 않았더냐? ‘팔이 세 번 부러져보아야 양의良醫가 된다.’고 하였다.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당한 일은 나에게는 다행이었다. 그러니 나를 따르는 너희들은 모두 행운이 있는 사람이다. 나는 들으니, 임금이 곤경을 겪지 않으면 왕도王道를 이루지 못하고, 명망名望 있는 선비가 곤액을 겪지 않으면 좋은 품행品行을 이루지 못한다 하였다. 예전에 상탕商湯은 여呂에서 곤경에 처했고, 문왕文王은 유리羑里에 수감收監되었으며, 진 목공晉 穆公은 효산殽山에서 패배하였고, 제 환공齊 桓公은 장작長勺에서 곤액을 당했으며, 구천句踐은 회계에서 곤욕을 치렀고, 진 문공晉 文公은 여씨驪氏에게 고초를 겪었다. 곤액의 규칙은 차가운 것으로부터 따뜻하게 변하고, 따뜻한 것으로부터 차갑게 변하니, 오직 어진 이만 이를 알 수 있으나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주역周易》에 “곤困은 형통하고 곧다. 대인大人이라 길吉하고 허물이 없으니, 말을 하면 믿지 않는다.” 하였으니, 성인이 사람들에게 말로 표현하기 어려움을 믿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