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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苑(1)

설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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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38. 하야 晉師敗績하니
나라와 []나라가 에서 전쟁하여 나라 군대가 크게 패배하였다.
將歸請死어늘 將許之하다
순임보荀林父가 돌아와 죽겠다고 요청하니 경공景公이 허락하려고 하였다.
曰 不可하니이다
사정백士貞伯이 말했다. “안 됩니다.
晉勝於荊이로되 文公猶有憂色하야 曰 子玉猶存하니 憂未歇也
성복城濮의 전쟁에서 진나라가 초나라에 승리하였으나, 문공文公은 오히려 걱정스런 안색을 띄면서 ‘초나라에는 자옥子玉이 아직 살아 있으니 걱정이 끝나지 않았다.
困獸猶鬪어든 況國相乎
궁지에 몰린 짐승도 오히려 싸우려고 달려드는 것인데 하물며 국상國相이겠는가?’
及荊殺子玉 乃喜曰 莫予毒也로다하시니
초나라가 자옥子玉을 죽이게 되자 문공은 그제야 기뻐하면서 ‘우리 진나라를 위해危害할 사람이 없다.’ 하셨습니다.
今天或者大警晉也니이다
그러니 오늘의 패배는 하늘이 아마 우리 진나라를 크게 경계한 것인 듯합니다.
林父之事君 進思盡忠하며 退思補過하니
순임보가 임금을 섬길 적에 조정에 나와서는 충성을 다하기를 생각하고, 물러가서는 임금의 잘못을 보완하기를 생각하였습니다.
社稷之衛也어늘 今殺之하시면 重荊勝也니이다
사직社稷보위保衛하는 인물인데 지금 죽이시면 이는 초나라가 거듭 승리하는 것입니다.”
(昭公)[景公]曰 善하다하고 乃使復將하다
듣고 난 경공은 “좋은 말이오.” 하고는 곧 다시 장수가 되게 하였다.
역주
역주1 晉荊戰於邲 : 춘추시대 晉나라와 楚나라가 邲에서 벌인 전쟁이다. 邲은 당시 鄭나라의 城邑이다. 지금의 河南省 鄭州市 서북쪽에 있었다. 《春秋左氏傳 宣公 12년》
역주2 荀林父(보) : 춘추시대 晉나라 上卿으로, 姬姓이다. 中行(中軍)의 군대를 거느렸기 때문에 中行을 氏로 삼았다. 또 諡號가 桓이므로 中行桓子‧荀桓子라고도 한다. 晉 文公을 도와 城濮의 전쟁에서 楚나라 군대를 크게 무찔렀고, 晉 景公 3년에 邲에서 楚나라 군대와 싸워 크게 패배하였다. 《春秋左氏傳 僖公 27‧28년, 文公 7‧12‧17년, 宣公 元‧5‧9‧12‧15년》
역주3 昭公(景公) : ‘昭’는 ‘景’의 誤字이다. 《太平御覽》 권323에는 ‘景公’으로 되어 있다.
역주4 士貞伯 : 춘추시대 晉나라 大夫로, 성은 士이다. 史伯‧史貞子‧史渥濁이라고도 한다. 《春秋左氏傳 宣公 12‧15년, 成公 5‧6‧18년》
역주5 城濮之役 : 魯 僖公 28년(B.C. 632)에 晉나라와 楚나라가 城濮에서 전쟁하여 晉나라가 크게 승리한 전쟁이다. 이 전쟁의 승리로 晉 文公이 霸主가 되었다. 城濮은 지금의 山東省 鄄城縣 서남쪽에 있는 臨濮集이다. 《春秋左氏傳 僖公 28년》

설원(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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