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謂
니 夫子在三卿之中
하사 名實未加上下而去之
하시니 仁者
도 固如此乎
잇가
孟子曰 居下位하야 不以賢事不肖者는 伯夷也요 五就湯하며 五就桀者는 伊尹也요 不惡汙君하며 不辭小官者는 柳下惠也니 三子者不同道나 其趣一也니 一者는 何也오 曰 仁也라 君子亦仁而已니 何必同이리오
曰 魯穆公之時
에 爲政
하고 子思
爲臣
이로되 魯之削也滋甚
하니 若是乎賢者之無益於國也
여
曰 虞不用百里奚而亡하고 秦穆公用之而霸라 故不用賢則亡이니 削을 何可得也리오
曰 昔者
에 에 而河西善謳
하고 에 而齊右善歌
하고 善哭其夫
에 而變國俗
하니 有諸內
면 必形於外
하나니 爲其事
하고 無其功
을 髡未睹也
라 是故無賢者也
니 有則髡必識之矣
니이다
曰 孔子爲魯司寇러시니 而不用하고 從祭에 膰肉不至어늘 不脫冕而行하시니 其不善者는 以爲爲肉也라하고 其善者는 以爲爲禮也라하니 乃孔子欲以微罪行하사 不欲爲苟去라 故君子之所爲를 衆人固不得識也니라
순우곤淳于髡이 맹자孟子께 말했다. “명예와 실적을 다른 것보다 중요하게 여기는[선先] 사람은 백성을 위하는 사람이고, 명예와 실적을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후後] 사람은 자신을 위하는 사람입니다. 선생先生께서 삼경三卿 가운데 계시면서 명예와 사공事功이 위아래에 베풀어지지 않았는데 떠나셨으니, 인자仁者도 본래 이와 같은 것입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낮은 지위에 있으면서 어진 덕德을 가지고 어질지 못한 임금을 섬기지 않은 사람은 백이伯夷이고, 다섯 차례 탕왕湯王에게 나아가고 다섯 차례 걸桀에게 나아간 사람은 이윤伊尹이며, 무도無道한 임금을 싫어하지 않으며 작은 벼슬을 사양하지 않은 사람은 유하혜柳下惠였다. 그러니 이 세 사람은 길은 같지 않았으나 나아간 것은 같았으니, 같은 것은 무엇인가? 인仁이다. 군자君子는 또한 인仁을 행할 뿐이니, 어찌 꼭 같아야 하겠는가.”
순우곤이 말했다. “노 목공魯 穆公 때에 공의자公儀子가 정치를 담당하였고, 자사子思와 자경子庚이 신하가 되었으나 노魯나라 국토를 침탈侵奪당함이 더욱 심하였으니, 어진 이가 나라에 도움이 되지 못함이 이와 같습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우虞나라는 백리해百里奚를 등용하지 않아 나라가 망하였고, 진 목공秦 穆公은 그를 등용하여 패자霸者가 되었다. 그러므로 어진 이를 등용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는 것이니, 어찌 국토를 침탈당하는 정도에서 그치겠는가.”
순우곤이 말했다. “예전에 왕표王豹가 기수淇水 가에 살자, 하서河西 지방 사람들이 동요를 잘 불렀고, 면구綿駒가 고당高唐에 살자, 제齊나라 서쪽 지방 사람들이 노래를 잘 불렀고, 화주華舟와 기량杞梁의 아내가 그 남편의 죽음에 곡哭을 잘하자 나라의 풍속風俗이 변했습니다. 그러니 마음속에 든 것이 있으면 반드시 밖에 나타나는 법이니, 어떤 일을 하고서 그에 따른 공효功效가 없는 경우를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지금은 어진 이가 없는 것이니, 있다면 제가 반드시 알 것입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공자孔子께서 노나라 사구司寇가 되셨는데 〈건의하는 말씀을〉 따라주지 않고, 임금을 따라 제사를 지낸 뒤에 제사에 쓴 고기를 보내오지 않자 면류관을 벗을 새도 없이 떠나셨다. 공자를 좋아하지 않는 자는 제사 고기 때문에 떠났다 하고, 좋아하는 자는 예절 때문에 떠났다고 한다. 그러나 공자는 하찮은 죄를 구실 삼아 떠나려 하였고 구차하게 떠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가 하는 행위는 일반 사람들이 본래 알지 못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