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周惠王十五年
에 有神降於
이어늘 王問於
하야 曰 是何故
오 有之乎
아
對曰 有之하니이다 國將興에 其君齋明中正하고 精潔惠和하야 其德足以昭其馨香하고 其惠足以同其民人이면 神饗而民聽하야 民神無怨이라
故明神降焉하야 觀其政德而均布福焉하나니이다 國將亡에 其君貪冒淫僻하고 邪佚荒怠하며 蕪穢暴虐하고 其政腥臊하야 馨香不登하고 其刑矯誣하야 百姓攜貳면
明神不蠲
하고 而民有遠意
하나니 民神痛怨
하야 無所依懷
라 故神亦往焉
하야 觀其苛慝而降之禍
라 是以或見神而興
하고 亦有以亡
하니이다 昔夏之興也
에 하고 其亡也
에 하고 商之興也
에 하고 其亡也
에 하니이다 周之興也
에 하고 其衰也
에 하니 是皆明神之紀者也
니이다
對曰 昔
하니 曰房后
라 是有爽德
하야 協於
하니 丹朱
하야 生穆王焉
하니 是監燭周之子孫而福禍之
하니이다 夫一神不遠徙遷
하니 若由是觀之
컨대 其丹朱耶
인저
王曰 然則何爲
오 對曰 臣聞之
호니 道而得神
이면 是謂
福
이요 淫而得神
이면 是謂貪禍
라호이다 今虢少荒
하니 其亡也
리이다
王曰 吾其奈何
오 對曰 使
하고 奉犧牲粢盛玉帛
하야 往獻焉
호되 無有祈也
하소서
王曰 虢其幾何
오 對曰 昔堯臨民以
러니 今其
見
하니 鬼神之見也
면 不失其
이니이다 若由是觀之
컨대 不過五年
이니이다
王使太宰
로 率
하고 奉犧牲玉觴
하야 往獻焉
하다 內史過從至虢
하니 虢公亦使祝史
로 請土焉
하다
內史過歸
하야 告王曰 虢必亡矣
리이다 不禋於神
하고 而求福焉
이면 神必禍之
요 不親於民
하고 而求用焉
이면 民必違之
니이다 精意以享
이 禋也
요 慈保庶民
이 親也
니이다 今虢公動匱百姓
하야 以盈其違
하고 離民怒神
而求利焉
하니 不亦難乎
잇가 十九年
에 晉取虢也
하다
주 혜왕周 惠王 15년(B.C. 662)에 신神이 신莘 땅에 내려오자, 혜왕이 내사內史 과過에게 물었다. “이는 무슨 까닭이오? 본래 이런 일이 있는 것인가요?”
내사 과가 대답했다. “이런 일이 있습니다. 나라가 흥성하려 할 적에는 그 임금의 지혜가 민첩하고 총명하며 중정中正하고, 정성스럽고 결백하며, 은혜롭고 온화하여 그의 덕이 신명神明에게 밝게 향기를 맡게 하고, 그의 은혜가 백성의 마음을 단결하게 하면 신명은 제사를 흠향歆饗하고, 백성은 왕명을 따라 백성과 신명이 원한이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밝은 신명이 내려와 그 임금의 정교政敎와 덕행德行을 관찰하여 고루 복을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려고 할 적에는 그 임금이 재리財利에 탐욕을 부리고, 사악하여 바르지 못하며, 사특하고 방종하며, 심성이 황폐하고 태만하며, 거칠고 추악하며, 사납고 모질며, 그 정치가 부패하여 악취가 나서 제사의 좋은 향기가 신명에게 오르지 않으며, 시행하는 형벌이 법을 속이고 없는 죄를 만들어 백성이 이산離散하여 두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러면 밝은 신명은 불결하게 여겨 제사를 받지 않고 백성은 멀리 떠나려는 생각을 두게 됩니다. 백성과 신명이 미워하고 원망하여 가서 의지할 곳이 없게 됩니다. 이 때문에 신명이 또 내려가서 그의 혹독하고 사악한 정치를 관찰하여 재난災難을 내리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어떤 때는 신神이 나타나서 흥성하기도 하고, 또는 멸망하기도 합니다. 옛날 하夏나라가 흥성할 때는 축융祝融이 숭산崇山에 내려왔고, 망할 때는 회록回祿이 정수亭隧에 이틀 밤을 묵었습니다. 상商나라가 흥성할 때는 도올檮杌이 비산丕山에 여러 밤을 묵었고, 망할 때는 이양夷羊이 목야牧野에 있었습니다. 주周나라가 흥성할 때는 악작鸑鷟이 기산岐山에서 울었고, 쇠미衰微할 때는 두백杜伯의 신神이 호경鎬京에서 선왕宣王을 쏘아 죽였습니다. 이는 모두 신명이 세상에 나타났던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혜왕이 말했다. “지금 신莘에 내려온 이 신은 어떤 신이오?”
내사 과가 대답했다. “옛날 소왕昭王이 방房나라 딸에게 장가드니 이를 방후房后라고 합니다. 이 방후는 덕德에 결함이 있어서 단주丹朱의 덕과 부합하니, 단주의 신이 방후의 몸에 붙어[빙신憑身] 짝이 되어 목왕穆王을 낳았습니다. 이 신이 주나라 자손의 덕을 관찰하여 복을 주거나 재난을 줍니다. 신은 한결같이 사람에게 머물며 멀리 옮겨 가지 않습니다. 만일 이것을 통해 본다면 아마 단주의 신일 것입니다.”
혜왕이 말했다. “그 누가 복과 재난을 받겠소?” 내사 과가 대답했다. “괵虢나라가 받을 것입니다.”
혜왕이 말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이오?” 내사 과가 대답했다. “신은 들으니 ‘정도正道를 행하여 신이 내려옴을 얻으면 이를 복을 맞이했다고 하고, 음란淫亂함을 행하여 신이 내려옴을 얻으면 이를 탐욕으로 재난을 불렀다고 한다.’ 하였습니다. 지금 괵나라의 임금이 조금 황음荒淫하니 아마 망할 것입니다.”
혜왕이 말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되겠소?” 내사 과가 대답했다. “태재太宰에게 태축太祝과 태사太史를 데리고서 이자狸字 성姓을 가진 사람을 대동하고 희생犧牲과 자성粢盛과 옥백玉帛을 받들고 가서 신에게 바치되 구하는 것이 없이 빌게 하십시오.”
혜왕이 말했다. “괵나라는 얼마나 더 유지하겠소?” 내사 과가 대답했다. “옛날 요堯임금은 5년에 한 번 제후에게 나아갔는데 지금 그 후예가 나타났으니, 귀신이 나타나게 되면 어떤 사건이 어김없이 그 뒤를 따라옵니다. 만일 이를 따라 본다면 5년을 넘기지 못할 것입니다.”
혜왕이 태재인 기보忌父를 시켜 부씨傅氏와 태축을 인솔하고 희생과 옥잔玉盞을 받들고 가서 신에게 제사를 드리게 하였다. 내사 과가 태재 일행을 따라 괵나라에 갔는데, 괵공虢公이 또 태축과 태사에게 토지를 더 달라고 요청하게 하였다.
내사 과가 돌아와서 혜왕에게 고告하였다. “괵나라는 반드시 망할 것입니다. 신에게 깨끗한 마음으로 제사를 올리지 않고 복을 구하면 신은 반드시 재난을 내려주고, 백성을 친근히 하지 않고 부리기를 구하면 백성은 반드시 그 명을 어깁니다.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신에게 제사 지내는 것 인禋이고, 자애로운 마음으로 서민庶民을 보호하는 것이 친親입니다. 지금 괵공은 걸핏하면 궁핍한 백성을 부려 자기의 정당하지 못한 욕망을 채워서 백성의 마음은 떠나고 신을 노하게 하면서 이익을 구하고 있으니, 나라를 보존하기가 어렵지 않겠습니까?” 혜왕 19년(B.C. 666)에 진晉나라가 괵나라를 탈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