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說苑(2)

설원(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설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2. 將之吳할새 辭其友하야 曰 後三年 楚不亡이면 吾不見子矣로리라
오자서伍子胥나라로 가려고 할 적에 그의 벗 신포서申包胥와 작별하면서 말했다. “3년 뒤에 나라를 멸망시키지 않으면 나는 자네와 만나지 않을 것이네.”
申包胥曰 子其勉之어다 吾未可以助子 助子 是伐宗廟也 止子 是無以爲友니라 雖然이나 子亡之 我存之호리라
신포서가 말했다. “자네는 힘쓰시게. 나는 자네를 도울 수가 없네. 자네를 돕는다면 이는 바로 우리 종묘宗廟(국가國家)를 토벌하는 것이요, 자네를 저지하면 이는 벗의 도리가 아니네. 그렇지만 자네가 초나라를 멸망시킨다면 나는 초나라를 보존할 것이네.”
於是乎觀楚一存一亡也하니라 後三年 吳師伐楚하니 出走하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초나라가 한 번 보존되고 한 번 멸망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3년이 지난 뒤에 오나라 군대가 초나라를 토벌하니, 초 소왕楚 昭王국도國都에서 도망쳤다.
申包胥不受命하고 西見曰 吳無道하고 兵强人衆하야 將征天下하야 始於楚하니 寡君出走하야하야 使下臣告急하니이다
신포서가 소왕의 명을 받지 못하고 서쪽으로 가서 진백秦伯(애공哀公)을 뵙고 말했다. “오나라는 무도無道하고 군대가 강성하며 인구가 많아 천하를 정복하려 하면서 우리 초나라에서부터 시작하니, 우리 임금께서 국도에서 도망쳐 운몽雲夢에 머물면서 하신下臣을 보내 위급한 상황을 알리게 하셨습니다.”
哀公曰 諾 固將圖之로라 申包胥不罷朝하고 立於秦庭하야 晝夜哭하야 七日七夜不絶聲하다
진 애공秦 哀公이 말했다. “좋소. 내가 본디 고려하려던 일이오.”신포서가 조정을 떠나지 않고 진나라 조정에 서서 밤낮으로 울어서 7일 밤낮 동안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哀公曰 有臣如此어늘 可不救乎아하고 興師救楚하니 吳人聞之하고 引兵而還하다
애공이 말했다. “이와 같은 신하가 있는데, 구원하지 않을 수 있는가.”이에 군대를 일으켜 초나라를 구원하니, 오나라 사람이 이를 듣고 군대를 이끌고 돌아갔다.
昭王反復하야 欲封申包胥한대 申包胥辭曰 救亡 非爲名也 功成受賜 是賣勇也니이다
소왕이 국도에 돌아와 복위復位한 다음 신포서에게 작위爵位를 봉하려고 하자, 신포서가 사양하며 말했다. “나라의 위망危亡을 구한 것은 명예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을 이루고 나서 을 받는다면 이는 용기를 파는 행위입니다.”
辭不受하고 遂退隱하야 終身不見하다 詩云 라하니라
그러고는 사양하여 받지 않고 마침내 은거하여 일생 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시경詩經》에 “사람이 상사喪事가 있을 때, 엉금엉금 기어가 힘을 다해 구원했노라.” 하였다.
역주
역주1 子胥 : 본서 권8 〈尊賢〉 10 참고.
역주2 申包胥 : 본서 권4 〈立節〉 02의 주2) 참고.
역주3 昭王 : 본서 권1 〈君道〉 29의 주1) 참고.
역주4 秦伯 : 秦 哀公을 말한다. 康公의 玄孫으로, 楚나라 大夫 申包胥의 애절한 구원 요청을 받아들이고 出兵하여 吳나라를 격파하였다. 《春秋左氏傳 定公 4년》‧《史記 秦世家》
역주5 雲夢 : 춘추전국시대 楚王의 遊獵地를 두루 이른다. 본서 권4 〈立節〉 24의 주1) 참고.
역주6 凡民有喪 匍匐救之 : 《詩經》 〈邶風 谷風〉에 보인다.

설원(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