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要者는 唐史臣吳兢이 類輯貞觀間君臣之嘉言善行과 良法美政之大要也라
方四歲에 有書生謁高祖曰 公貴人也니 必有貴子라하더니 及見太宗曰 龍鳳之姿요 天日之表니 其年幾冠에 必能濟世安民하리라하다
及長에 聰明英武하여 有大志하고 能屈節下士하여 結納豪傑하며 佐高祖하여 以定天下之亂하니 功業日隆하다
隋義寧元年에 高祖以唐王으로 受隋禪하여 國號唐이라하다
其言行之美와 政治之盛과 與夫任賢使能之方과 從諫樂善之道가 大略皆聚此書也라
後
하고 慨然慕之
라 故太和初政
이 號爲淸明
하니 則是書也
가 不無補於治云
이라
【集論】내가 살펴보건대 정관貞觀은 당唐나라 태종太宗이 역년曆年을 표시한 호칭이다.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 “천지의 도道는 항상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하니, 천지의 문채文彩가 올바름을 위주로 하여 사람에게 보여준다는 말과 같다.
정요政要는 당唐나라의 사신史臣 오긍吳兢이 정관貞觀 시대의 임금과 신하의 아름다운 말, 훌륭한 행실, 좋은 법, 아름다운 정치의 큰 요점을 분류하여 편집한 것이다.
《신당서新唐書》 〈태종본기太宗本紀〉에 다음과 같이 보인다.
“태종太宗은 성姓이 이씨李氏이고 이름이 세민世民이다.
농서隴西 성기成紀 사람이고 양涼나라 무소왕武昭王의 8세손世孫으로 고조高祖의 둘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태목황후太穆皇后 두씨竇氏이니 출생할 때 순산하였다.
4세歲가 되었을 때 어느 선비가 고조高祖를 뵙고 ‘공公은 귀한 분이니 반드시 귀한 아들이 있을 것이오.’라고 하였는데, 태종을 보자 ‘용龍과 봉황처럼 준수한 자질을 지니고 하늘의 태양(제왕)과 같은 의표가 있으니 관례할 나이가 되면 반드시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을 편안케 할 것이오.[濟世安民]’라고 하였다.
선비가 떠나간 뒤에 그의 말을 따서 세민世民이라고 이름하였다.
장성해서는 슬기롭고 도리에 밝으며 영특하고 용감하여 큰 뜻이 있고, 겸손하고 선비를 우대하여 호걸들과 교유를 맺으며, 고조를 보좌하여 천하의 난리를 평정하니 공업功業이 날로 높아졌다.
수隋나라 의녕義寧 원년元年(617)에 고조가 당왕唐王으로 있으면서 수隋나라의 선위禪位를 받아 국호國號를 당唐이라고 하였다.
이듬해에 연호를 무덕武德(618~626)으로 바꾸고 세민을 봉하여 진왕秦王으로 삼았다.
무덕 9년(626)에 진왕 세민을 세워 황태자皇太子로 삼고 정무를 맡겼다.
그해 8월에 세민이 황제皇帝에 즉위하고, 이듬해(627)에 연호를 정관貞觀으로 바꾸었다.
재위 기간이 모두 23년이고 한 시대의 현명한 임금[一代之賢君]이 되었다.”
그 언행의 아름다움, 정치의 성대함, 현인을 임용하여 능력 있는 이를 부리는 방략, 간언을 따르고 선행을 즐거워하는 도道가 대략 이 책에 모두 실려 있다.
뒤에 당唐나라 문종文宗이 이 책을 읽고 강개하여 사모하였으므로 태화太和(문종 연호, 827~835) 초기의 정치가 맑고 밝다고 일컬어졌으니, 이 책이 정치에 보탬이 없다고는 못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