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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政要集論(1)

정관정요집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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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집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馬周注+字賓王. 家貧嗜學, 資志曠遠. 武徳中, 補州助教, 不治事而去. 密州趙仁本高其才, 厚贈使入關. 留汴, 爲浚儀令崔賢所辱, 遂感激而西. 舍新豐逆旅, 主人不之顧, 周命酒一斗八升, 悠然獨酌, 衆異之. 餘見下文. 博州茌平人也注+茌, 士疑切. 博州, 今東昌路. 茌平, 縣名, 今仍舊, 隷山東.
貞觀五年 至京師하여 舍於中郞將注+去聲. 唐制, 中郞將, 太子府屬, 掌校尉‧旅帥及親勲‧翊衛之屬.常何之家注+常姓, 何名. 史無傳.
太宗令百官으로 上書言得失注+令, 平聲, 後同.하니 周爲何하여 陳便宜二十餘事注+爲, 去聲.하여 令奏之하니 事皆合旨
太宗怪其能하여 問何하니 何對曰
非臣所發意 乃臣家客馬周也라하니
太宗卽日召之호대 未至하여 間凡四度遣使催促注+使, 去聲.이라
及謁見 與語甚悅하여 令直門下省하고 授監察御史注+唐制, 掌分察百寮, 巡按州郡, 獄訟‧軍戎‧祭祀‧營作‧太府出納, 皆隷焉.하며 累除中書舍人注+唐制, 掌侍‧進奏‧參議‧表章.이라


마주馬周注+마주馬周는〉 빈왕賓王이다. 집이 가난했으나 배우기를 좋아하였고 자질과 포부가 크고 원대하였다. 무덕武德(618~626) 연간에 조교助教로 보임되었는데, 직책을 수행하지 않고 떠났다. 밀주密州조인본趙仁本이 그의 재주를 높이 사 재물을 넉넉히 주어 함곡관函谷關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변주汴州에 머무를 때 준의령浚儀令 최현崔賢에게 모욕을 당하자 결국 분격해 서쪽으로 갔다. 신풍新豐의 여관에 머물렀을 때 주인이 거들떠보지 않았지만, 마주는 술 1말 8되를 달라고 해 혼자 유유자적하며 마시자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겼다. 나머지는 아래에 보인다.박주博州 치평현茌平縣 사람이다.注+의 반절이다. 박주博州는 지금의 동창로東昌路이다. 치평茌平의 이름이니 지금 옛 지명 그대로 쓰이며, 산동山東에 속한다.
정관貞觀 5년(631)에 장안長安으로 와 중랑장中郞將注+(장수)은〉 거성去聲이다. 나라 제도에 의하면 중랑장中郞將태자부太子府 소속이며, 교위校尉여수旅帥친훈親勲익위翊衛의 부류들을 관장한다.상하常何의 집에 기거하였다.注+은 성이며 는 이름이다. 사서史書에 전해지는 것이 없다.
당시 태종太宗이 백관들에게 정치의 득실을 글로 써서 올리라고 하자,注+(하여금)은 평성平聲이다. 뒤에도 같다. 마주가 상하를 위하여 국가에 편리하고 시의時宜에 적합한 일 20여 가지 항목을 지어주며 아뢰도록 하였는데,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내용이 모두 태종의 뜻에 맞았다.
태종이 상하의 유능함을 이상하게 여겨 상하에게 물으니, 상하가 대답하였다.
“이것은 신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신의 집에 식객으로 있는 마주의 생각입니다.”
태종이 그날로 마주를 불렀는데, 채 도착하기도 전에 네 번이나 사람을 보내 재촉하였다.注+使(사신)는 거성去聲이다.
마주가 알현하자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몹시 기뻐하여 문하성門下省에 배치하도록 하고 감찰어사監察御史에 임명하였으며,注+감찰어사監察御史는〉 나라 제도에 의하면 백관을 나누어 살피고 주군州郡을 순찰하는 일을 관장하며, 옥송獄訟, 군융軍戎, 제사祭祀, 영작營作, 태부太府의 출납이 모두 그 관할에 속한다. 여러 번 자리를 옮겨 중서사인中書舍人이 되었다.注+중서사인中書舍人은〉 나라 제도에 의하면 시봉侍奉과 진언과 논의와 표장表章에 관한 일을 관장한다.


역주
역주1 [奉] : 저본에는 ‘奉’이 없으나, 《舊唐書》 권43 〈職官志〉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정관정요집론(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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