貞觀十八年
에 高宗
이 初立爲皇太子
注+ 初立爲皇太子:貞觀十七年四月, 立晉王治爲皇太子, 是爲高宗.하여 尙未尊賢重道
하고
太宗
이 又嘗令太子
注+ 又嘗令太子:令, 平聲. 後同.로 居寢殿之側
하여 絶不往東宮
하니 散騎常侍劉洎上書曰
臣聞郊迎四方
은 孟侯所以成德
注+ 孟侯所以成德:月令 “天子立春迎春於東郊, 立夏迎夏於南郊, 立秋迎秋於西郊, 立冬迎冬於北郊.” 按此非王世子之事. 或曰 “周制東西南北之學, 在於四郊.” 孟, 長也, 孟侯謂世子也. 此說於成德爲切. 迎字疑誤.이요 齒學三讓
은 元良由是作貞
注+ 元良由是作貞: “行一物而三善皆得者, 唯世子而已, 其齒於學之謂也. 故世子齒於學, 國人觀之曰 ‘將君我而與我齒讓.’ 曰 ‘有父在則禮然.’ 然而衆知父子之道矣. 二曰 ‘君在則禮然, 而衆著於君臣之義矣.’ 三曰 ‘長, 長也. 然而衆知長幼之節矣.’ 故父子君臣長幼之道得而國治. 禮曰 ‘一有元良, 萬邦作貞.’”이라하니
斯皆屈
之尊
注+ 斯皆屈主祀之尊:主祀, 一作嗣主하여 申下交之義
라
故得芻言咸薦
하고 睿問旁通
하여 하니 率由玆道
하여 永固鴻基者焉
이라
至若生乎深宮之中
하여 長乎婦人之手
注+ 長乎婦人之手:長, 音掌.하면 未曾識憂懼
注+ 未曾識憂懼:曾, 音層.하고 無由曉風雅
리니
匪夫崇彼
注+ 匪夫崇彼干籥:夫, 音扶. 後同. 籥, 音約. 干, 舞者所執之楯也. 籥, 樂管, 以竹爲之, 三孔, 長三尺, 以和衆聲者也.하고 聽玆謠頌
하면 何以辨章庶類
하고 甄覈彛倫
注+ 甄覈彛倫:甄, 音珍.이리오
歷考聖賢
하니 咸資琢玉
注+ 咸資琢玉:學記 “玉不琢, 不成器, 人不學, 不知道.”이라
是故周儲上哲
이나 師望奭而加裕
注+ 師望奭而加裕:周儲, 謂成王也. 望, 太公號, 奭, 召公名. 成王以二公爲師保.하고 漢嗣深仁
하나 引園綺而昭德
注+ 漢嗣深仁 引園綺而昭德:漢嗣, 謂惠帝盈也. . 四皓, 東園公綺里季夏黃公甪里先生也.이라
不勤于始
면 將悔于終
할새 是以鼂錯上書
하여 令通政術
注+ 是以鼂錯上書 令通政術:鼂, 音潮, 錯, 音措. 漢文帝時, 鼂錯爲太子舍人, 遷博士, 上書曰 “人主所以尊顯功名, 揚於萬世者, 以知術數也. 故人主知所以臨制臣下, 而治其衆, 則群臣畏服矣, 知所以聽言受事, 則不欺蔽矣, 知所以安利萬民, 則海內必從矣, 知所以忠孝事上, 則臣子之行備矣. 此四者, 臣竊爲皇太子急之 .”하고 賈誼獻策
하여 務知禮敎
注+ 賈誼獻策 務知禮敎:賈誼, 雒陽人. 漢文帝時, 爲梁懷王傅, 上書曰 “.”하니이다
정관貞觀 18년(644)에
고종高宗이 처음
황태자皇太子가 되어
注+정관貞觀 17년 4월, 진왕晉王 이치李治를 세워 황태자로 삼으니, 이가 고종高宗이다. 아직 현인을 높이고 도덕을 중히 여기는 일이 없었다.
태종이 또 일찍이 태자를
注+영令(하여금)은 평성平聲이다. 뒤에도 같다. 침전寢殿 옆에 기거하도록 하고 절대 동궁으로 가지 못하게 하니,
산기상시散騎常侍 유계劉洎가 다음과 같이 상소를 올렸다.
“신이 듣건대 사방의 제후를 교외에서 영접하는 것은 태자의 덕을 이루게 하는 일이며
注+《예기禮記》 〈월령月令〉에 “천자가 입춘에는 동쪽 교외에 나가서 봄을 맞이하고, 입하에는 남쪽 교외에 나가서 여름을 맞이하며, 입추에는 서쪽 교외에 나가 가을을 맞이하고, 입동에는 북쪽 교외에 나가 겨울을 맞이한다.”라고 하였는데, 살펴보니 이는 왕세자의 일이 아니다. 혹자는 “주周나라 제도에 동서남북의 학교가 사방의 교외에 있었다.”라고 한다. 맹孟은 우두머리이니, 맹후孟侯는 세자世子를 말한다. 이 설은 덕德을 이루는 데 있어 절실한 것이 된다. ‘영迎’자는 오류인 듯하다., 국학에서 나이로 차서를 따져 세 번 겸양하는 것은 태자가 이를 통해 국가를 바르게 할 수 있다고 하였으니
注+《예기禮記》 〈문왕세자文王世子〉에 말하였다. “한 가지 일을 행하여 세 가지의 선한 것을 모두 얻을 수 있는 이는 〈오직 세자뿐이니〉, 세자가 국학에서 〈신분으로 존비를 따지지 않고〉 나이로 차서를 따지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세자가 국학에서 나이로 차서를 따지면 나라 사람이 보고 말하기를, ‘장차 우리의 군주가 될 터인데 우리들과 나이로 차서를 따져 겸양한다.’라고 하면 예를 아는 사람이 말하기를 ‘부모가 살아 계시면 예법이 그러하다.’라고 하니, 그렇게 하면, 일반 사람도 부자간의 도리를 알게 된다. 둘째로, ‘임금이 그 자리에 계시면 예법이 그러하다.’라고 하니, 그렇게 하면 일반 사람도 군신간의 의리에 밝아지게 된다. 셋째로,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하는 것이다.’라고 하니, 그렇게 하면 일반 사람도 어른과 어린이의 예절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부자, 군신, 장유의 도를 얻게 되어 나라가 다스려지는 것이다. 예禮에 ‘한 사람의 원량元良이 있으면 만국이 바르게 된다.’라고 하였다.”,
이는 모두 태자의 존엄한 몸을 굽혀
注+주사主祀는 어떤 본에는 사주嗣主로 되어 있다. 아랫사람들과 교유하는 의리를 밝힌 것입니다.
그러므로 꼴꾼의 말까지도 모두 듣게 되고 태자의 명성이 멀리 퍼져서 궁정을 나오지 않고도 앉아서 천하의 일을 알 수 있으니, 이러한 방법을 따라 영원히 제왕의 대업을 굳건히 할 수 있습니다.
깊은 궁중에서 태어나 부인의 손에 자라면
注+장長(자라나다)은 음이 장掌이다. 근심과 두려움을 알지 못하고
注+증曾(일찍)은 음이 층層이다. 풍속을 알 수가 없을 것이니,
비록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신기하고 타고난 지혜가 있다 하더라도 만물의 뜻을 통하여 일을 이루는 것은 결국 외부의 권장에서 비롯됩니다.
예악을 숭상하지 않고
注+부夫(발어사)는 음이 부扶이다. 뒤에도 같다. 약籥(피리)은 음이 약約이다. 간干은 춤추는 사람이 잡는 방패이다. 약籥은 악관樂管으로, 대나무로 만드는데, 구멍이 3개이고 길이는 3척이며, 여러 가지 소리를 조화롭게 하는 것이다. 요송謠頌을 듣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만물을 분별하고 인륜의 도리를 밝힐 수 있겠습니까.
注+견甄(밝히다)은 음이 진珍이다.
성현들을 자세히 고찰해보니, 모두가 자질을 갈고 닦은 데에 의거하였습니다.
注+《예기禮記》 〈학기學記〉에 “아름다운 옥도 다듬지 않으면 기물을 만들지 못하고, 사람도 배우지 않으면 도를 알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주周나라 세자는 매우 명철했으나
태공망太公 望과
소공召公 석奭을 스승으로 삼아 더욱 넉넉할 수 있었고
注+주저周儲(주周나라 태자)는 성왕成王을 말한다. 망望은 태공太公의 호號이며, 석奭은 소공召公의 명名이다. 성왕成王은 이공二公을 태사太師와 태보太保로 삼았다.,
한漢나라 태자는 인덕이 깊었으나
동원공東園公과
기리계綺里季를 맞이하여 덕을 밝게 하였습니다.
注+한사漢嗣(한漢나라 태자)는 혜제惠帝 유영劉盈을 말한다. 한 고조漢 高祖가 태자 유영劉盈을 폐위하려고 하자, 장량張良이 태자에게 사호四皓를 맞이해 오도록 하였다. 고조가 술자리를 마련하자, 태자가 고조를 모실 때 사호가 태자를 따랐는데, 모두 나이가 팔십 남짓이었다. 고조가 말하기를 “공들에게 번거롭게 당부하니 부디 끝까지 태자를 잘 보필하시오.”라고 하였다. 사호가 떠나가자 고조가 눈빛으로 그들을 전송하며 말하기를 “저 네 사람이 태자를 보필하여 우익羽翼(지지하는 기반)이 이미 이루어졌으니, 태자를 변동시키기는 어렵소.”라고 하고, 결국 태자를 폐위하지 않았다. 사호四皓는 동원공東園公‧기리계綺里季‧하황공夏黃公‧녹리선생甪里先生이다.
본래 태자에게 국가의 운명이 달려 있으니, 태자의 선악에 의해 나라의 흥망이 좌우됩니다.
처음에 노력하지 않는다면 끝에 후회하게 될 것이니, 이 때문에
조조鼂錯가 상소를 올려 정치하는 방법을 깨닫게 하였고
注+조鼂는 음이 조潮이고, 착錯는 음이 조措이다. 한 문제漢 文帝 때에 조조鼂錯가 태자사인太子舍人으로 있다가 박사博士로 자리를 옮겨 다음과 같이 상소를 올렸다. “임금이 존귀해지고 공명을 높이 드러내 만대에 떨치게 되는 것은 술수術數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임금이 신하의 위에 군림하여 많은 사람들을 다스리는 줄 안다면 여러 신하들이 두려워하여 복종할 것이며, 간언하는 말을 듣고 일을 받아들일 줄 안다면 속이고 가릴 수가 없을 것이며, 백성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이롭게 해줄 줄 안다면 천하의 사람들이 반드시 따를 것이며, 충성과 효도로 윗사람을 섬길 줄 안다면 신하들의 행실이 갖추어질 것입니다. 이 네 가지를 신은 황태자의 급선무라고 여깁니다.” 가의賈誼가 계책을 올려
예교禮敎를 알게 하였습니다.
注+가의賈誼는 낙양雒陽 사람이다. 한 문제漢 文帝 때에 양회왕梁懷王의 태부太傅가 되었는데, 다음과 같이 상소를 올렸다. “옛날의 제왕은 태자가 태어나면 원래 예禮로 거행하여, 사士에게 업도록 하고, 유사有司가 재계齋戒하고 현단복에 면류관을 쓰고 남교南郊에 뵙고 하늘에 뵈었습니다. 대궐을 지날 때에는 수레에서 내리고 종묘를 지날 때에는 추창趨蹌(예에 맞게 걸음)하게 하였으니, 효자의 도道입니다. 그러므로 어릴 때부터 이미 가르침이 이미 행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