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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司空 양국공梁國公 방현령房玄齡(579~648)
방현령房玄齡 《
신당서新唐書》에는 자는
교喬라고 하였고 《
구당서舊唐書》에는 이름을
교喬라고 하였다.
제주齊州 임치臨淄 사람이다.
수隋나라 때
진사進士에 합격하였는데 그의 나이 18세였다. 방현령은 당시
진왕秦王이었던
이세민李世民을 만난 뒤로 그의 참모로써 활약하였다. 특히 현무문의 변 때 두여회와 함께 큰 공을 세웠으며, 이후 요직을 두루 거쳐 재상이 되었다. 그는 명재상으로 이름이 났는데, 사람을 발탁할 때에 완비되기를 구하지 않고 자기의 장점으로 남의 단점을 바로잡지 않았으며, 능력에 따라 거두어 서용하고 소원하거나 미천한 사람이라도 차별하지 않았다. 그는 15년 동안 재상의 지위에 있었는데, 나이가 많아 사직을 청하자 태종이 거절하면서 “하루아침에 갑자기 훌륭한 재상이 없게 된다면 마치 두 손을 잃는 것과 같소. 그대의 근력이 쇠약해졌다고 느끼면 다시 주청하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