貞觀
年
에 太宗
이 與秘書監
注+唐制, 秘書省置監一人, 掌邦國經籍圖書之事. 有二局曰著作曰太史, 皆率其屬而修其職. 少監爲之貳.魏徵
으로 從容論自古理政得失
注+從, 卽容切. 從容, 和緩貌.하고 因曰
當今大亂之後
하여 造次不可致理
注+造, 七到切, 後同. 造次, 急遽也.로다
凡人
이 在危困則憂死亡
하고 憂死亡則思理
하고 思理則易教
注+易, 以豉切, 後同.니
善人
이 爲邦百年然後
에 勝殘去殺
注+勝, 平聲. 去, 上聲. 此述論語之辭.이라하니 大亂之後
에 將求致理
인들 寧可造次而望乎
아
若聖哲施化
注+施, 平聲.하여 上下同心
하면 人應如響
하여 이라
朞月而可
가 信不爲難
이니 三年成功
이 猶謂其晚
注+論語曰 “苟有用我者, 朞月而已可也, 三年有成.”이니이다
정관貞觀 4년(630)에
태종太宗이
비서감秘書監注+당唐나라 제도에 의하면, 비서성秘書省에 감監 1인을 두어 국가의 경적과 도서의 일을 관장하였다. 2국局을 두었는데 저작국著作局과 태사국太史局이니, 모두 그 요속僚屬을 거느리고 그 관직을 수행하였다. 소감少監은 부관이다.위징魏徵과 함께 옛날 이래로 정사를 다스린 득실을 조용히 논하고
注+종從은 즉卽과 용容의 반절이다. 종용從容은 온화한 모양이다. 이어서 말하였다.
“지금은 큰 난리를 격은 뒤라 갑자기 다스림을 이룰 수 없소.”
注+조造는 칠七과 도到의 반절이다. 뒤에도 같다. 조차造次는 갑자기이다.
무릇 사람이 위험하고 곤궁하면 죽음을 걱정하고, 죽음을 걱정하면 다스려지기를 생각하고, 다스려지기를 생각하면 가르치기 쉽습니다.
注+이易(쉽다)는 이以와 시豉의 반절이다. 뒤에도 같다.
그렇다면 어지러운 뒤에 가르치기 쉬운 것이 배고픈 사람에게 먹이기 쉬운 것과 같습니다.”
“《
논어論語》 〈
자로子路〉에 ‘훌륭한 인물이 나라를 다스린 지 백년 뒤에야 잔악한 자들을 감당해 다스려 사형을 없앨 수 있다.’
注+승勝(견디다, 교화하다)은 평성平聲이다. 거去(버리다)는 상성上聲이다. 이는 《논어論語》 〈자로子路〉의 말을 서술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큰 난리 뒤에 다스림을 이루고자 한들 어찌 갑자기 바랄 수 있겠소?”
“이는 보통 사람에 근거한 것이고 성스럽고 명철한 임금의 경우는 다릅니다.
만약 성스럽고 명철한 임금이 교화를 베풀어
注+시施(베풀다)는 평성平聲이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마음을 함께하면 사람들의 호응이 메아리와 같아서 빨리 하지 않아도 빠릅니다.
1년 만 다스려도 괜찮다고 한 것은 진실로 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니, 3년에 공을 이룬다는 것이 오히려 늦다고 할 것입니다.”
注+《논어論語》 〈자로子路〉에 “만일 나를 등용해주는 자가 있다면 1년 만 되면 괜찮을 것이고, 3년이면 이루어짐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