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貞觀政要集論(1)

정관정요집론(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정관정요집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貞觀 太宗 與秘書監注+唐制, 秘書省置監一人, 掌邦國經籍圖書之事. 有二局曰著作曰太史, 皆率其屬而修其職. 少監爲之貳.魏徵으로 從容論自古理政得失注+從, 卽容切. 從容, 和緩貌.하고 因曰
當今大亂之後하여 造次不可致理注+造, 七到切, 後同. 造次, 急遽也.로다
徵曰
不然하니이다
凡人 在危困則憂死亡하고 憂死亡則思理하고 思理則易教注+易, 以豉切, 後同.
然則亂後易教 猶飢人易食也니이다
太宗曰
善人 爲邦百年然後 勝殘去殺注+勝, 平聲. 去, 上聲. 此述論語之辭.이라하니 大亂之後 將求致理인들 寧可造次而望乎
徵曰
此據常人이요 不在聖哲이니
若聖哲施化注+施, 平聲.하여 上下同心하면 人應如響하여 이라
朞月而可 信不爲難이니 三年成功 猶謂其晚注+論語曰 “苟有用我者, 朞月而已可也, 三年有成.”이니이다
太宗以爲然하다


정관貞觀 4년(630)에 태종太宗비서감秘書監注+나라 제도에 의하면, 비서성秘書省 1인을 두어 국가의 경적과 도서의 일을 관장하였다. 2을 두었는데 저작국著作局태사국太史局이니, 모두 그 요속僚屬을 거느리고 그 관직을 수행하였다. 소감少監은 부관이다.위징魏徵과 함께 옛날 이래로 정사를 다스린 득실을 조용히 논하고注+의 반절이다. 종용從容은 온화한 모양이다. 이어서 말하였다.
“지금은 큰 난리를 격은 뒤라 갑자기 다스림을 이룰 수 없소.”注+의 반절이다. 뒤에도 같다. 조차造次는 갑자기이다.
위징이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무릇 사람이 위험하고 곤궁하면 죽음을 걱정하고, 죽음을 걱정하면 다스려지기를 생각하고, 다스려지기를 생각하면 가르치기 쉽습니다.注+(쉽다)는 의 반절이다. 뒤에도 같다.
그렇다면 어지러운 뒤에 가르치기 쉬운 것이 배고픈 사람에게 먹이기 쉬운 것과 같습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논어論語》 〈자로子路〉에 ‘훌륭한 인물이 나라를 다스린 지 백년 뒤에야 잔악한 자들을 감당해 다스려 사형을 없앨 수 있다.’注+(견디다, 교화하다)은 평성平聲이다. (버리다)는 상성上聲이다. 이는 《논어論語》 〈자로子路〉의 말을 서술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큰 난리 뒤에 다스림을 이루고자 한들 어찌 갑자기 바랄 수 있겠소?”
위징이 대답하였다.
“이는 보통 사람에 근거한 것이고 성스럽고 명철한 임금의 경우는 다릅니다.
만약 성스럽고 명철한 임금이 교화를 베풀어注+(베풀다)는 평성平聲이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마음을 함께하면 사람들의 호응이 메아리와 같아서 빨리 하지 않아도 빠릅니다.
1년 만 다스려도 괜찮다고 한 것은 진실로 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니, 3년에 공을 이룬다는 것이 오히려 늦다고 할 것입니다.”注+논어論語》 〈자로子路〉에 “만일 나를 등용해주는 자가 있다면 1년 만 되면 괜찮을 것이고, 3년이면 이루어짐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태종은 위징의 말을 옳다고 생각했다.


역주
역주1 (七)[四] : 저본에는 ‘七’로 되어 있으나, 謝保成의 《貞觀政要集校》에는 “貞觀四年”으로 교감하였고, 《資治通鑑》에도 이 기사가 “貞觀四年”에 실려 있다. 이에 의거하여 ‘四’로 바로잡았다.
역주2 不疾而速 : 《周易》 〈繫辭傳 上〉에 “오직 神妙하기 때문에 빨리 하지 않아도 빠르며 가지 않아도 이른다.[唯神也 故不疾而速 不行而至]”라고 하였다.

정관정요집론(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