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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政要集論(2)

정관정요집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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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三年 太子少師注+ 太子少師:少, 去聲.李綱注+ 太子少師李綱:李綱, 字文紀, 觀州人. 始名瑗, 慕爲人改焉. 仕隋爲太子洗馬, 擢尙書右丞. 隋末, 賊帥何潘仁劫爲長史, 高祖平京師, 綱上謁. 旣受禪, 拜禮部尙書太子詹事, 諫建成不聽, 遂乞骸骨. 貞觀初拜是職, 五年卒, 諡曰貞. 有脚疾하여 不堪踐履어늘
정관貞觀 3년(629)에 태자소사太子少師注+거성去聲(적다)이다. 이강李綱注+이강李綱문기文紀이며 관주觀州 사람이다. 처음 이름은 이었는데, 장강張綱의 인물됨을 흠모하여 이름을 바꾸었다. 나라에서 벼슬하여 태자세마太子洗馬가 되었고, 상서우승尙書右丞에 발탁되었다. 나라 말기에 적의 장군 하반인何潘仁이 겁박하여 장사長史가 되었다가 당 고조唐 高祖경사京師를 평정하자 이강이 찾아가 뵈었다. 고조가 선양을 받고 나서는 예부상서禮部尙書태자첨사太子詹事에 제수되었는데, 이건성李建成에게 간언을 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아 결국 벼슬에서 물러났다. 정관 초년에 이 직위에 제수되었고, 5년에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이다.이 다리에 병이 생겨 걷기가 힘들게 되었는데,
太宗 賜步輿하여 令三衛 擧入東宮注+ 令三衛擧入東宮:令, 平聲. 唐制東宮, 分爲上中下三等, 掌宿衛之事, 是爲三衛.하고 詔皇太子하여 引上殿親拜之하여 大見崇重이라
태종이 보여步輿(가마)를 하사하여 삼위三衛에게 들어서 동궁東宮으로 들이도록 하고注+(하여금)은 평성平聲이다. 제도에 동궁육솔부東宮六率府가 있어 3으로 나누고 숙위宿衛의 일을 담당하였는데 이것이 삼위三衛이다., 황태자皇太子에게 명하여 소사少師를 부축하여 전각에 오르도록 하여 직접 배알하게 하였으니, 매우 존숭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綱爲太子注+ 綱爲太子:爲, 去聲.陳君臣父子之道 之方注+ 問寢侍膳之方:見封建篇註.할새 理順辭直하니 聽者忘倦이러라
이강은 태자를 위하여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군신과 부자의 도리와 부황의 취침 문안과 음식을 맛보는 방법에 대해注+봉건封建〉편의 에 보인다. 설명하였는데, 이치에 맞고 올바른 말이라서 듣는 사람이 피로함을 잊었다.
太子嘗商略古來君臣名敎 竭忠盡節之事러니
태자는 일찍이 옛날부터 전해오는 군신간의 명교名敎충절忠節을 다하는 것에 대해 토론하였는데,
綱懍然曰注+ 綱懍然曰:懍, 音凜, 嚴毅貌.託六尺之孤하며 寄百里之命注+ 託六尺之孤寄百里之命:論語曾子之言, 謂輔幼君, 攝國政也. 古人以爲難이로되 綱以爲易注+ 綱以爲易:易, 以豉切.하노이다
이강이 엄정하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注+은 음이 이니, 엄하고 굳센 모습니다. “어린 군주를 맡기며 국정을 위임하는 것을注+논어論語》 〈태백泰伯〉에 나오는 증자曾子의 말로 어린 군주를 보좌하고 국정國政을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옛사람들은 어려운 일이라 여겼지만 저는 쉽다고 생각합니다.”注+(쉽다)는 의 반절이다.
每吐論發言 皆辭色慷慨하여 有不可奪之志하니 太子未嘗不聳然禮敬하다
항상 논의를 하거나 말할 때에는 모두 말투와 표정이 격앙되어 있어 굳은 의지를 빼앗을 수 없었으니, 태자가 예의와 공경을 경건히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集論】愚按 世子爲王之貳 天下之本也
내가 살펴보건대 세자世子는 왕에 다음가는 사람으로, 천하의 근본이니,
太宗卽位之後 蚤建太子하여 以固天下之本하고 而嚴太子尊敬師傅之禮하여 稽之古典하니 允合其宜
태종이 즉위한 뒤에 일찍 태자太子를 세워 천하의 근본을 굳건히 하고 태자가 사부를 존경하는 예를 엄하게 하여 고전古典에 상고하였으니, 진실로 도리에 합당한 일이다.
李綱少慷慨하고 有風節이라 故其發言吐論 辭色毅然하니 宜皇儲之所禮敬也
이강이 젊어서부터 강개하고 절조節操의 풍모가 있었기 때문에 말을 하고 논의를 할 적에 말투와 기색이 엄정하였으니, 황태자가 예의를 갖추고 존경한 것이 마땅하다.
古人謂라하니 綱之謂歟인저
옛사람이 말하기를 “한 마음으로 백 명의 군주를 섬길 수 있다.” 라고 하였으니, 이강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역주
역주1 問寢侍膳 : 부모의 취침과 음식을 보살피는 것으로, 《禮記》 〈文王世子〉에 게재된 文王이 세자였을 때 하루에 세 번 이를 살피러 아버지 王季에게 문안한 일을 말한다.
역주2 張綱 : 後漢 사람이다. 지방을 감찰하는 명을 받자 洛陽의 都亭에서 수레바퀴를 묻고는 “豺狼 같은 자들이 조정 요로에 가득한데 州郡의 狐狸 따위를 어찌 따지겠는가?” 하고는 梁冀를 탄핵하였다. 또 廣陵에 張嬰 등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廣陵太守로 발령받아 혼자 수레를 타고 가서 장영 등을 타일러서 항복을 받았다. 《後漢書 권56 張綱傳》
역주3 六率府 : 左右衛率府‧左右司御率府‧左右淸道率府이다.
역주4 一心可以事百君者 : 春秋時代 齊나라 晏嬰이 靈公과 莊公과 景公을 각각 潔과 勇과 儉의 덕목에 입각해서 섬긴 것을 두고, 梁丘據가 “어진 사람은 원래 이렇게 마음이 많은 것인가.[仁人固多心乎]”라고 묻자, 안영이 “한 마음으로는 백 명의 군주를 섬길 수 있으나, 백 가지 마음으로는 한 군주도 섬길 수가 없다.[一心可以事百君 百心不可以事一君]”라고 대답하였다. 《孔叢子 詰墨》

정관정요집론(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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