觀近古帝王이 有傳位十代者하고 有一代兩代者하고 亦有身得身失者하니
卿可爲朕言之
注+① 卿可爲朕言之:爲, 去聲.어다 當以爲楷則
하리이다
賢者는 能節之하여 不使過度하고 愚者는 縱之하여 多至失所하나니
伏願陛下는 常能自制하여 以保克終之美하시면 則萬代永賴하리이다
注
【集論】愚按 太宗이 問運祚長短之殊어늘 魏徵이 對以自制克終之美하니 其論可謂的矣라
然嘗論之컨대 古昔聖賢著書立言에 其托始終之際에 皆有深意라
其意之所存은 雖不可知나 以事實攷之하면 則二者는 皆太宗之所不足也니 何也오
屈己而納諫하고 任賢而使能하며 恭儉節用하고 寬仁而愛人하니
太宗能納諫矣나 而晩年有仆碑之失하고 能愼刑矣나 而晩年有君羨之誅하고
能息兵矣나 復有高麗西域之師하고 能節用矣나 復有飛山翠微之作하니
合二者而論之하면 則太宗所以不能克終者는 由其不能正身也라
정관貞觀 16년(642)에 태종太宗이 위징魏徵에게 물었다.
“근고近古의 제왕을 살펴보면 지위를 10대를 전한 자도 있고 1대나 2대를 전한 자도 있고 또한 자신이 지위를 얻었다가 잃은 자도 있소.
짐이 이러한 이유로 항상 근심과 두려운 마음을 품어서 혹은 백성들을 길러 안무함이 제자리를 얻지 않을까 우려하며
혹은 교만하고 안일한 마음이 생겨서 기쁨과 성냄이 법도를 넘을까 우려하지만 스스로 알아채지 못하니,
경은 짐을 위하여 말해주기 바라오.
注+위爲(때문에)는 거성去聲이다. 짐이 마땅히 법칙으로 삼겠소.”
위징이 대답하였다. “기호嗜好‧욕망欲望‧희환喜歡‧분노忿怒의 감정은 현명한 사람과 우매한 사람이 모두 같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절제할 수 있어서 법도를 넘지 않게 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방종하여 대부분 처할 곳을 잃는 데 이릅니다.
폐하陛下께서는 성덕聖德이 멀리 생각하시어 편안할 때에 위태로움을 생각하십니다.
삼가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항상 스스로 절제하여 끝을 잘 마무리하는 미덕을 보전하소서. 그렇게 하신다면 자손만대까지 영원히 힘입을 것입니다.”
注
내가 살펴보건대 태종太宗이 국운國運에 장단長短의 차이가 있는 이유를 물었는데 위징魏徵이 스스로 절제하여 끝을 잘 맺는 미덕을 가지라고 대답하였으니, 위징의 논의는 적실하다고 할 만하다.
그러나 일찍이 논해보건대 옛날의 성현들이 글을 지어 처음과 끝을 붙일 적에 모두 깊은 뜻이 있었다.
오긍吳兢이 이 책을 저술한 것은 시작을 태종이 위징에게 몸을 바르게 하는 도리를 물은 것으로 하고, 마무리를 위징이 태종에게 끝을 잘 마무리하라는 말로 대답하는 것으로 하였다.
그 의도는 비록 알 수 없으나 사실을 가지고 살펴보면 이 두 가지는 모두 태종이 부족한 것이니, 어째서인가.
태종이 화란禍亂을 제거하고 몸소 태평성대를 이루었는데,
자신을 굽히고 간언을 받아들이며 현인을 임용하고 능력 있는 이를 부리며 공손하고 검소하며 물자를 아껴 쓰며 관대하고 인자하여 백성을 아꼈으니
삼대三代 이후의 군주들 중에 전혀 없다가 겨우 태종에게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군신君臣‧부자父子‧형제兄弟‧부부夫婦의 사이에 모두 참덕慙德이 있었으니, 어찌 몸을 바르게 하는 도리가 부족한 것이 아니겠는가.
태종이 간언을 잘 받아들였지만 만년에 위징의 비석을 무너뜨리는 실수가 있었고, 형벌을 신중히 하였지만 만년에 이군선李君羨을 죽였고,
전쟁을 정지하였지만 다시 고구려高句麗와 서역西域의 전쟁이 있었고, 물자를 아껴 사용하였지만 다시 비산궁飛山宮과 취미궁翠微宮을 지었으니
어찌 끝을 잘 마무리하려는 도리가 부족한 것이 아니겠는가.
두 가지를 합하여 논의한다면 태종이 끝을 잘 맺지 못했던 이유는 그가 몸을 바르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긍의 글이 어찌 처음에 그 근본을 말하고 끝에 그 효과를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