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古侯王能自保全者甚少
하니 皆由生長富貴
注+ 皆由生長富貴:長, 音掌. 後同.하여 好尙驕逸
注+ 好尙驕逸:好, 去聲.하여 多不解
注+ 多不解:解, 音懈.親君子遠小人故爾
注+ 君子遠小人故爾:遠, 去聲. 後同.라
朕所有子弟
를 欲使見前言往行
注+ 欲使見前言往行:行, 去聲.하여 冀其以爲規範
하라하고
因命徵하여 錄古來帝王子弟成敗事하여 名爲自古諸侯王善惡錄이라하여 以賜諸王하다
其序曰 觀夫
注+ 觀夫:夫, 音扶. 後同.膺期受命
하여 握圖御㝢
에 咸建懿親
하여 藩屛王室
하니
自軒分二十五子
注+ 自軒分二十五子:國語 “黃帝之子二十五子, 其同姓者二人, 靑陽與夷鼓是也. 其同生而異姓者十四人, 別爲十二姓, 姬酉祁己滕箴任荀僖姞儇依, 是也.”하고 舜擧一十六族
注+ 舜擧一十六族:卽八元八凱, 見擇官篇註.으로 爰歷周漢
하여 以逮陳隋
히 分裂山河
하여 大啓
者衆矣
라
然考其隆替하고 察其興滅하니 功成名立은 咸資始封之君이요
始封之君은 時逢草昧하여見王業之艱阻하고 知父兄之憂勤이라
是以在上不驕
하며 夙夜匪懈
하여 或設醴以求賢
注+ 或設醴以求賢:漢楚元王敬禮申公等, 穆生不嗜酒, 元王每置酒, 嘗爲穆生設醴.하고 或吐飱而接士
注+ 或吐飱而接士:.”라
故甘忠言之逆耳
注+ 故甘忠言之逆耳:家語曰 “忠言逆耳利於行.”하고 得百姓之懽心
注+ 得百姓之懽心:孝經曰 “治國者, 不敢侮於鰥寡, 故得百姓之懽心.”하여 樹至德於生前
하고 流遺愛於身後
라
暨夫子孫繼體
하여는 多屬隆平
이라 生自深宮之中
하고 長居婦人之手
하여 不以高危爲憂懼
하니 豈知稼穡之艱難
注+ 豈知稼穡之艱難:周書曰 “相小人, 厥父母勤勞稼穡, 厥子乃不知稼穡之艱難.”이리오
昵近小人
注+ 昵近小人:昵, 與暱同.하고 疎遠君子
하며 綢繆
하고 하여 犯義悖禮
하고 淫荒無度
하여 不遵典憲
하고 僭差越等
이라
矜一事之微勞
하여 遂有無厭之望
注+ 遂有無厭之望:厭, 平聲.하여 棄忠貞之正路
하고 蹈姦宄之迷塗
注+ 蹈姦宄之迷塗:宄, 音鬼. 書曰 “寇賊姦宄”, 注 “在外曰姦, 在內曰宄.”하여 注+ 愎諫違卜:愎, 音僻.하여 往而不返
이라
雖梁孝齊冏之勳庸
注+ 雖梁孝齊冏之勳庸:梁孝, 名武, 漢文帝子也. 封梁王. 七國反, 先擊梁, 殺虜有功, 諡曰孝. 齊冏, 姓司馬, 名冏, 晉齊王攸子也. 爲大司馬, 封齊王, 以功遷游擊將軍.과 淮南東阿之才俊
注+ 淮南東阿之才俊:淮南, 名安, 漢武帝諸父也. 封淮南王, 好書鼓瑟, 招賓客, 喜文辭, 後坐反謀, 自殺, 諡曰厲. 東阿, 見定分篇注.이라도 摧摩霄之逸翮
하며 成
하고
棄桓文之大功
注+ 棄桓文之大功:齊桓公, 晉文公, 皆春秋諸侯之伯, 有尊王室匡天下之功.하여 就梁董之顯戮
注+ 就梁董之顯戮:梁冀, 漢桓帝時, 爲大將軍, 後爲反謀, 冀與妻皆自殺. 董卓, 漢獻帝時, 自爲太尉相國, 作亂, 被誅, 夷三族.하니 垂爲炯戒
가 可不惜乎
아
皇帝以聖哲之資
로 拯傾危之運
하사 耀七德以淸六合
注+ 耀七德以淸六合:左傳, 楚子曰 “夫武, 禁暴, 戢兵, 保大, 定功, 安民, 和衆, 豐財者也, 使子孫無忘其章.” 註云 “此武王七德之義.”하시고 總萬國而朝百靈
하시며 懷柔四荒
하고 親睦九族
注+ 親睦九族:九族, 高祖玄曾之親也.하시며
念華萼於棠棣
注+ 念華萼於棠棣:棠棣, 詩小雅篇名, 燕兄弟之樂歌也.하시고 寄
於宗子
하시니
라 일새 爰命下臣
하여 考覽載籍
하여 博求鑑鏡
하여 라
凡
하여 有國有家者
가 其興也
는 必由於積善
이요 其亡也
는 皆在於積惡
이니
今錄自古諸王行事得失하여 分其善惡하고 各爲一篇하여 名曰諸王善惡錄이라하여
欲使
하여 足以揚名不朽
하고 聞惡能改
注+ 聞惡能改:能, 一作知.하여 庶得免乎大過
하니
從善則有譽하고 改過則無咎리라 興亡是繫니 可不勉歟아
太宗覽而稱善하고 謂諸王曰 此宜置于座右하여 用爲立身之本이로다
注
【集論】愚按 人性皆善也니 而惡則豈人之性哉리오 習於善則善하고 習於惡則惡耳니 況太子諸王乎아
嘗觀漢諸侯王컨대 恪謹以守國者何少며 放逸以失國者何多오
今太宗命集往古之事하여 爲諸侯王善惡錄하여 使知善之足以成名하고 惡之足以滅身하니 昭然可鑑矣라
然唐室興王之初에 其諸王如道宗道玄孝恭道彦은 皆相與艱難하고 共成大勳하여 賢德著聞하니 此善之可稱者也어늘
暨有天下之後에 諸王皆身享富貴福澤하여 順境而喪德者가 何多耶오
蓋太宗家廷之內에 恩常揜義하여 訓敎之言雖切이나 佩服之心蓋寡하니
정관貞觀 7년(633)에 태종太宗이 시중 위징魏徵에게 말하였다.
“예로부터
제후왕諸侯王 중에 스스로를 보전한 자가 극히 드물었으니, 모두가 부귀하게 자라
注+장長(자라나다)의 음은 장掌이다. 뒤에도 같다. 교만하고 방자한 것을 좋아하여
注+호好(좋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대부분 군자를 가까이하고 소인을 멀리해야 하는 까닭을
注+해解(이해하다)는 음이 해懈이다.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오.
注+원遠(멀리하다)은 거성去聲이다. 뒤에도 같다.
짐은 자식들에게 예전 사람들의 훌륭한 언행을 알게 하여
注+행行(행실)은 거성去聲이다. 자신들의 규범으로 삼기를 바라오.”
그리하여 위징에게 명하여, 옛날 제왕 자제들의 성공과 실패에 관한 사례를 기록하게 하여 《자고제후왕선악록自古諸侯王善惡錄》이라 이름하고 여러 왕에게 나누어주었다.
그 서문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살펴보니
注+부夫(대저)는 음이 부扶이다. 뒤에도 같다. 시운時運에 응하여
천명天命을 받아 천하를 통치할 적에 모두 친족을 제후로 봉하여 왕실의 울타리로 삼았으니,
이는 전적에 기록되어 있어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황제皇帝 헌원씨軒轅氏가 땅을 나누어 25명의 아들에게 나누어주고
注+《국어國語》 〈진어晉語4〉에 “황제黃帝의 아들은 25명인데, 성姓이 같은 사람이 두 명이니, 청양靑陽과 이고夷鼓가 이들이다. 함께 태어났으나 성姓이 다른 사람이 14명으로, 12개의 다른 성姓이 되었는데, 바로 희姬‧유酉‧기祁‧기己‧등滕‧잠箴‧임任‧순荀‧희僖‧길姞‧현儇‧의依이다.”라고 하였다.,
순舜임금이 16명의 친족을 등용함으로부터
注+바로 팔원팔개八元八凱이니, 〈택관擇官〉편의 주註에 보인다. 주周나라와
한漢나라를 거쳐
진陳나라와
수隋나라에 이르기까지
산하山河를 나누어 크게 제후를 봉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왕실을 잘 보전하여 시류時流에 따라 융성하거나 쇠락하였으며, 어떤 이들은 영토를 잃고 홀연히 멸망하여 제사를 잇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흥망성쇠를 살펴보면 공을 이루어 이름을 세운 것은 모두가 처음 봉함을 받은 군주에 의지하고,
나라를 멸망시키고 자신까지 망친 것은 대부분 보위를 물려받은 군왕들에게서 비롯되었으니, 그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처음 봉함을 받은 군주는 초창기의 혼란을 만나 왕업의 어려움을 보아서 부형의 근심과 근면을 잘 압니다.
그래서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교만하지 않고 밤낮으로 게으르지 않아
초楚나라
원왕元王처럼 단술을 준비하여 현인을 구한 사람도 있고
注+한漢나라의 초 원왕楚 元王이 신공申公 등을 공경하여 예우하였는데, 목생穆生이 술을 좋아하지 않자 원왕元王이 늘 술자리를 베풀 때면 목생穆生을 위해서는 단술을 마련하였다.,
주공周公 단旦처럼 입 안의 음식을 뱉어내고 손님을 맞이한 사람도 있습니다.
注+주공周公이 백금伯禽에게 경계하기를 “나는 천하에서 결코 비천하지 않은 사람이다. 나는 한 번 머리를 감을 때 세 번이나 머리를 움켜쥐었고, 한 번 밥을 먹을 때 세 번이나 입에 든 밥을 뱉고 나아가 선비를 접대하면서도 오히려 천하의 현인을 잃을까 염려했었다. 너는 노魯나라에 가면 삼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교만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귀에 거슬리는
충언忠言도 달게 여기고
注+《가어家語》 〈육예六藝〉에 “충성스러운 말은 귀에는 거슬리지만 행동에는 이롭다.”라고 하였다. 백성의 환심을 얻어
注+《효경孝經》 〈효치장孝治章〉에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감히 홀아비나 과부를 업신여기지 않았다. 그러므로 백성의 환심을 얻었다.”라고 하였다., 생전에는 지극한 덕을 세우고 죽은 후에도 남은
인애仁愛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손이 임금의 지위를 계승함에 미쳐서는 대부분 태평한 시대를 만나고 구중궁궐에서 태어나 부인의 손에서 자랐기에 지위가 높고 위태로운 것으로 근심하며 두려워하지 않으니, 어찌 경작과 수확의 어려움을 알겠습니까.
注+《서경書經》 〈주서周書 무일無逸〉에 “소인들을 살펴보면 부모는 부지런히 농사를 짓는데 자식은 농사의 어려움을 모른다.”라고 하였다.
소인을 가까이하고
注+일昵은 일暱과 같다., 군자를 소원하게 대하며, 모략이 많은 영리한 부인과 친하게 지내고, 밝은 덕성을 갖춘 사람들에게는 오만하게 굴어
예의禮義를 거스르고,
주색酒色에 빠져 법도가 없어 규율을 지키지 않고 신분을 넘는 행동을 일삼았습니다.
일시적인 권력과 총애를 믿고서 적자嫡子와 대등해지려는 마음을 품기도 하고,
한 가지 작은 공로를 자랑하여 마침내 만족함이 없는 야망을 지녀
注+염厭(만족하다)은 평성平聲이다. 충정忠貞의 바른 길을 버리고 간악한 혼미의 길로 들어서기도 하여
注+궤宄(어지럽히다)는 음이 귀鬼이다. 《서경書經》 〈우서虞書 순전舜典〉에 “약탈하고 죽이며, 밖을 어지럽히고 안을 어지럽힌다.”라고 하였는데, 그 주注에 “밖에 있는 것을 간姦이라 하고, 안에 있는 것을 궤宄라 한다.”라고 하였다., 간언을 거스르고 점괘를 어겨서
注+퍅愎(어긋나다)은 음이 벽僻이다. 한번 가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비록
양효왕梁孝王이나
제왕齊王 경冏의
훈공勳功과
注+양효梁孝는 이름이 무武이니, 한 문제漢 文帝의 아들로, 양왕梁王에 봉해졌다. 칠국七國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먼저 양梁을 공격하여 죽이고 사로잡는 데 공이 있었다. 시호는 효孝이다. 제왕齊王 경冏은 성이 사마司馬이고, 이름이 경冏이니, 진제왕晉齊王 유攸의 아들이다. 대사마大司馬가 되었고, 제왕齊王에 봉해졌으며, 공을 세워 유격장군游擊將軍으로 승진하였다. 회남왕淮南王이나
동아왕東阿王의 뛰어난 재주를 지닌 자라 하더라도
注+회남淮南은 이름이 안安이며, 한 무제漢 武帝의 제부諸父이다. 회남왕淮南王에 봉해졌으며, 책과 거문고 연주를 좋아하여 빈객을 초빙하여 문사文辭를 즐겼는데, 뒤에 모반에 연좌되어 자살하였다. 시호는 여厲이다. 동아東阿는 〈정분定分〉편 주석에 보인다.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는 날개가 꺾이며, 바퀴자국에 고인 물속의 물고기 신세가 되고,
제 환공齊 桓公이나
진 문공晉 文公의 큰 공을 버려
注+제 환공齊 桓公과 진 문공晉 文公은 모두 춘추시대春秋時代 제후諸侯 중에 패자霸者로서 왕실王室을 높이고 천하를 바로잡은 공로가 있었다. 양기梁冀나
동탁董卓처럼 죽임을 당하니
注+양기梁冀는 후한後漢 환제桓帝 때에 대장군을 지냈는데, 뒤에 모반이 일어나자 양기와 그 처가 모두 자살하였다. 동탁董卓은 후한後漢 헌제獻帝 때에 스스로 태위太尉 상국相國이 되어 난을 일으켰는데, 자신은 죽임을 당하고 삼족三族이 멸족을 당했다., 후세에 밝은 경계로 남는 것을 애석해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폐하께서는
성철聖哲의 자질로 기울어가는 위급한 세상의 운수를 구제하였고,
칠덕七德을 발휘하여
육합六合(
천하天下)을 깨끗이 하였으며
注+《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선공宣公 12년에, 초자楚子가 말하기를 “무武는 폭력을 멈추게 하고, 무기를 거두어들이며, 천명을 보전하고, 나라를 구하는 공을 세우고, 백성들을 안정시키고, 제후諸侯들을 화합하게 하고, 재물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손에게 그 공적을 잊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그 주註에 “이것이 무왕武王의 칠덕七德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만국萬國을 통합하여
백령百靈(
백신百神)을 제사하였으며, 사방의 오랑캐를 회유하고
구족九族들과 화목하게 지냈으며
注+구족九族은 고조高祖와 조부祖父, 현손玄孫과 증손曾孫의 친속이다.,
《
시경詩經》 〈
소아小雅 상체常棣〉와 같이 형제의 우애를 염두에 두고
注+당체棠棣는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명이니, 형제를 연향하는 악가樂歌이다., 《
시경詩經》 〈
대아大雅 판板〉과 같이
종자宗子가 나라의
성城이 되게 하는 데에 뜻을 두셨습니다.
그리하여 마음으로 사랑하여 하루도 생각지 않은 적이 없었기에 신에게 명하여 서적을 살펴 고찰하고 널리 귀감이 될 만한 것을 찾아 자손들에게 남기기를 도모하였습니다.
신이 번번이 어리석은 정성을 다하여 이전 가르침을 고찰해보니,
무릇 왕실의 울타리와 기둥이 되어 나라와 집을 소유한 자가 흥성했던 것은 반드시 선행을 쌓았기 때문이고, 멸망한 것은 모두 악행을 쌓은 데 원인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선행을 쌓지 않으면 공명을 이룰 수가 없고, 악행을 쌓지 않으면 자신을 망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재앙과 복은 문이 없고 길흉은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니 오직 사람이 부르는 것입니다. 어찌 헛된 말이겠습니까.
지금 옛날 여러 왕들의 행실의 득실을 기록하여 선악을 구분하고 각 한 편씩 만들어 명칭을 《제왕선악록諸王善惡錄》이라고 하여,
선을 보고는 그와 같이 되기를 생각하여 영원히 명성을 떨치게 하고, 악을 듣고는 고쳐서
注+능能은 어떤 본에는 지知로 되어 있다. 큰 과오를 면하게 되기를 바라니,
선을 따르면 명예가 있고, 과오를 고치면 허물이 없을 것입니다. 국가의 흥망이 여기에 달려 있으니, 힘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태종이 이를 보고는 좋다고 칭찬하고 제왕들에게 말하였다. “이 서책을 항상 좌석 오른편에 두고, 입신의 근본으로 삼으라.”
注
내가 살펴보건대, 사람의 본성은 모두 선하니, 악이 어찌 사람의 본성이겠는가. 선에 익숙하면 선해지고, 악에 익숙하면 악해질 뿐이니, 하물며 태자太子와 제왕諸王들은 말할 것이 있겠는가.
일찍이 한漢나라의 제후왕諸侯王을 살펴보건대 삼가서 나라를 지킨 이들이 어찌 그리 적으며, 방탕을 일삼아 나라를 잃은 이들이 어찌 그리 많은가.
지금 태종이 명하여 옛날의 일을 모아 《제후왕선악록諸侯王善惡錄》을 만들도록 하여, 선이 공명을 이룰 수 있고 악이 몸을 망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하였으니, 분명하여 거울로 삼을 만하다.
그러나 당나라 왕실의 왕업이 흥성하는 초기에 이도종李道宗‧이도현李道玄‧이효공李孝恭‧이도언李道彦 등의 제왕諸王들이 모두 서로 고난을 겪으며 함께 큰 공훈을 이루어 현덕賢德이 크게 이름났으니, 이는 칭송할 만한 선善을 지닌 자들인데,
천하를 소유하고 난 뒤에는 제왕諸王들이 모두 몸소 부귀와 복택을 누리며 순경順境에 쳐했는데 덕을 잃은 자가 어찌 그리도 많은가.
이는 태종이 가정 안에서 은혜가 항상 의義를 가려서 훈계하고 가르치는 말이 비록 간절하였으나 승복하는 마음이 적었던 것이니,
거처에 따라 기질이 바뀌고, 봉양에 따라 몸이 바뀌어 본연의 선善을 어지럽힌 것이 아니겠는가. 어찌 인성人性이 악해서 그런 것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