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李勣注+〈이적李勣은〉 본명本名은 세적世勣이며, 자字는 무공茂功이다. 영휘永徽(650~655) 연간에 태종太宗(李世民)의 이름과 ‘세世’자가 겹친 탓에 이름을 적勣 한 글자로 고쳤다. 나머지는 아래에 보인다.은조주曹州이호현離狐縣 사람이다.注+조주曹州는 지금 옛 지명 그대로 쓰니, 복리腹裏에 속한다. 이호離狐는 현縣의 이름이니, 뒤에 남화南華로 고쳤다. 지금은 폐현廢縣되었다.
본래 성은 서徐이다.
처음에 이밀李密에게 벼슬하여 좌무후대장군左武侯大將軍이 되었다.注+이밀李密은 자字가 원수元邃이다. 그 조상은 요동遼東 사람이다. 대업大業(605~618) 말년에 위성韋城 사람 적양翟讓이 무리들을 모아 도적이 되었는데, 이적이 가서 그를 따랐다. 이밀이 처음에 양현감楊玄感을 따라 거병하여 일을 도모했는데, 양현감이 패하자 옹구雍丘 지역으로 망명하였다. 이적이 적양에게 유세하여 이밀을 추대하여 주군으로 삼고 위공魏公이라 불렀다. 뒤에 이밀이 적양을 죽이자 인심이 떠났다. 무덕武德(618~626) 초기에 함곡관으로 들어가 고조를 알현하여 광록경光祿卿에 임명되었으나, 다시 배반하여 주살되었다.
이밀이 뒤에 왕세충王世充에게 격파당하여注+왕세충王世充은 자字가 행만行滿이다. 본래 서역西域 사람으로 성姓이 지支인데, 어릴 때 왕씨王氏에게 시집간 어머니를 따라가서 그대로 그 성씨를 썼다. 수隋나라에 벼슬하여 민부시랑民部侍郞이 되었고, 은밀히 호걸들과 결탁하여 스스로 태위太尉가 되었다. 수왕隋王양동楊侗(恭帝)의 책서策書를 위조하여 선위禪位를 받은 뒤에 양동을 시해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 무덕武德(618~626) 초년에 왕세충이 이밀李密을 격파하자 고조高祖가 진왕秦王에게 조서를 내려 왕세충을 공격하도록 하였는데, 왕세충은 사로잡혀 장안으로 압송되었고, 가족들은 촉蜀으로 이주시켰다. 무리들을 이끌고 당唐나라로 귀의했으나 이적은 여전히 이밀의 옛 영토 10개 군을 차지하고 있었다.注+이밀李密의 옛 영토는 동쪽으로 바다에 이르고, 남쪽으로 장강에 이르고, 서쪽으로 여주汝州에 이르고, 북쪽으로 위군魏郡에 이르렀다. 당시에는 아직 당唐나라에 귀속되지 않았고 이적李勣이 이를 모두 점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