貞觀十一年
에 時屢有閹宦
이 充外使
注+ 時屢有閹宦 充外使:閹, 音淹. 使, 去聲. 後同.하여 妄有奏
라가 事發
하여
閹豎雖微
나 狎近左右
하여 時有言語
하면 輕而易信
注+ 輕而易信:易, 以豉切.하니 이 爲患特深
이니이다
今日之明에 必無此慮나 爲子孫敎인댄 不可不杜絶其源이니이다
太宗이 曰 非卿이면 朕이 安得聞此語리오 自今已後로 充使宜停이라
臣
이 聞爲人君者
는 在乎善善而惡惡
注+ 在乎善善而惡惡:惡, 烏, 去聲. 下如字. 後同.하고 近君子而遠小人
注+ 近君子而遠小人:遠, 去聲. 後同.이라하니
善善明이면 則君子進矣이요 惡惡著면 則小人退矣며
近君子하면 則朝無粃政이요 遠小人이면 則聽不私邪니이다
君子小過는 盖白玉之微瑕요 小人小善은 乃鈆刀之一割이니
鈆刀一割은 良工之所不重이니 小善이 不足以掩衆惡也요
白玉微瑕
는 善賈之所不棄
注+ 善賈之所不棄:賈, 音古.니 小疵
가 不足以妨大美也
니이다
善小人之小善
을 謂之善善
하고 惡君子之小過
注+ 惡君子之小過:惡, 烏去聲.를 謂之惡惡
하면
此則蒿蘭同嗅
요 玉石不分
이니 屈原所以沈江
注+ 屈原所以沈江:屈原, 名平, 楚懷王大夫. 王信讒而不見用, 乃自沈汨羅江而死.이요 卞和所以泣血者也
注+ 卞和所以泣血者也:卞和, 楚人. 得玉璞, 獻厲王, 王以爲僞, 刖其足, 和抱璞而泣, 繼之以血.니이다
旣識玉石之分
하고 又辨蒿蘭之臭
하여 善善而不能進
하고 惡惡而不能去
注+ 惡惡而不能去:去, 上聲.하면
此郭氏所以爲墟
注+ 此郭氏所以爲墟:事見納諫篇.요 史魚所以遺恨也
注+ 史魚所以遺恨也:家語曰 “史魚病將卒, 命其子曰 ‘吾不能進蘧伯玉, 退彌子瑕, 是吾爲臣不能正其君也. 生不能正其君, 則死無以成禮, 我死, 汝置屍牖下.’ 靈公弔, 其子以告公, 公曰 ‘寡人之過也.’ 命殯之客位, 進遽伯玉而用之, 退彌子瑕而遠之. 孔子聞之曰 ‘古之諫者, 死則已矣, , 忠感其君者也, 可不謂直乎.’”니이다
정관貞觀 11년(637)에 당시 환관들이 곧잘
외사外使에 충당되어
注+엄閹(환관)은 음音이 엄淹이다. 사使(사신)는 거성去聲이다. 뒤에도 같다. 제멋대로
상주上奏를 했다가 사실이 발각되곤 해서
태종太宗이 노여워하니, 위징魏徵이 진언하였다.
“환관들이 한미한 이들이긴 하지만 임금 가까이에 있으며 이따금 건의를 하면 가볍게 믿기가 쉬우니
注+역易(쉽다)는 이以와 시豉의 반절이다., 어느 사이에 조금씩 스며드는
참소讒訴의 우환거리가 특히 깊습니다.
지금 성명聖明의 시대에는 반드시 이러한 걱정거리가 없겠습니다만 자손에게 가르침을 남기기 위해선 그 근원을 단절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경卿이 아니면 짐이 어떻게 이런 말을 들을 수 있겠소. 이제부터는 외사外使에 충당하는 일을 멈춰야 할 것이오.”
위징이 이에 의해 다음과 같은 소疏를 올렸다.
“신이 들으니, 임금 노릇을 한다는 것은
선善을 좋아하고
악惡을 미워하며
注+위의 악惡(미워하다)는 오烏의 거성去聲이고, 아래의 위爲는 본래 음의音義대로 독해한다. 뒤에도 같다. 군자를 가까이하고 소인을 멀리하는 데에 있다고
注+원遠(멀리하다)은 거성去聲이다. 뒤에도 같다. 했습니다.
선을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면 군자가 나오고, 악을 미워하는 것이 확실하면 소인이 물러납니다.
군자를 가까이하면 조정에 몹쓸 정치가 없고 소인을 멀리하면 들을 때 사사롭거나 사악하지 않게 됩니다.
소인에게도 작은 선이 없지 않고 군자에게도 작은 과실이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군자의 작은 과실은 백옥白玉의 작은 흠이고 소인의 작은 선은 무딘 칼로 한 번 베는 것입니다.
무딘 칼로 한 번 베는 것은 훌륭한 장인이 중요시하지 않는 일인데 작은 선이 수많은 악을 가릴 수 없기 때문이며,
백옥의 작은 흠은 훌륭한 상인이 버리지 않는 것인데
注+고賈(좌상)는 음音이 고古이다. 작은 흠이 큰 아름다움을 방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소인이 작은 선을 좋아하는 것을 두고 ‘선을 좋아한다.’라고 하고, 군자가 작은 허물을 미워하는 것을 두고
注+악惡(미워하다)는 오烏의 거성去聲이다. ‘악을 미워한다.’라고 한다면,
이는 쑥과 난초의 냄새를 함께 간주하고 옥과 돌을 구분하지 않는 것이니
굴원屈原이 강물에 빠져 죽고
注+굴원屈原은 이름이 평平이며 초 회왕楚 懷王의 대부大夫이다. 초왕楚王이 참소하는 자를 신임하여 등용되지 못하자, 스스로 멱라강汨羅江에 몸을 던져 죽었다. 변화卞和가 울며 피를 흘린 예에 해당합니다.
注+변화卞和는 초楚나라 사람이다. 옥덩이를 얻어 여왕厲王에게 바치자 여왕이 허위라 여겨 그의 발꿈치를 잘랐고, 변화가 옥덩이를 안고 울자, 계속 피가 나왔다.
옥과 돌의 구분을 인식하고 또 쑥과 난초의 냄새를 분별하여 선을 좋아하면서도 진출시키지 않고 악을 미워하면서도 버리지 못한다면
注+거去(버리다)는 상성上聲이다.
이는
곽씨郭氏가 빈터가 되고
注+이 일과 관련된 내용은 〈납간納諫〉편에 보인다. 사어史魚가 한을 남긴 것에 해당합니다.
注+《공자가어孔子家語》 〈곤서困誓〉편에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사어史魚가 병으로 죽으려 할 때 그 아들에게 명하기를, ‘내가 거백옥蘧伯玉을 진출시키는 일과 미자하彌子瑕를 물리치는 일을 하지 못했으니 이는 내가 신하로서 그 임금을 바로잡지 못한 것이다. 살아서 그 임금을 바로잡지 못하였으니 죽어서 장례 예절禮節을 이룰 수 없다. 내가 죽으면 너는 시신을 창문 아래에 두도록 하라.’라고 하니, 그 아들이 명대로 했다. 영공靈公이 조문을 오자, 그 아들이 영공에게 사실을 아뢰니, 영공이 ‘과인의 과실이다.’라고 하고, 객의 위치에 빈소를 마련하라고 명한 뒤, 거백옥을 나오게 해서 등용하고 미자하를 물리쳐 멀리했다. 공자가 이를 듣고 말하였다. ‘옛날 간언한 자는 죽으면 그만이어서, 사어처럼 죽어서도 시신으로 간언하여 그 임금을 충성으로 감동시킨 자가 없었으니, 곧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