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突厥頡利破後
로 諸部落首領來降者
를 皆拜將軍中郞將
注+⑰ 皆拜將軍中郞將:郞將之將, 去聲.하여 布列朝廷
하니
唯
不至
注+⑱ 唯拓跋不至:拓, 他各切. 拔, 蒲末切. 夷複姓.어늘 又遣招慰之
하여 使者相望於道
注+⑲ 使者相望於道:使, 去聲.하니
涼州都督李大亮이 以爲於事無益이요 徒費中國이라하여 上疏曰
中國百姓은 天下根本이요 四夷之人은 猶於枝葉이어늘
擾其根本하여 以厚枝葉하고 而求久安은 未之有也라
故春秋云 戎狄
은 豺狼
이니 不可厭也
요 諸夏
는 親昵
하니 不可棄也
注+⑳ 春秋云……不可棄也:左傳閔公元年, 管仲告齊侯之辭.라하니이다
自陛下君臨區宇로 深根固本하며 人逸兵强하며 九州殷富하여 四夷自服이라
今者招致突厥하여 雖入提封이나 臣愚稍覺勞費요 未悟其有益也로소이다
然河西民庶
가 鎭禦藩夷
에 州縣蕭條
하고 戶口鮮少
注+㉑ 戶口鮮少:鮮, 上聲.어늘 加因隋亂
하여 減耗尤多
하니
突厥未平之前에 尙不安業이라가 匈奴微弱以來로 始就農畝어늘 若卽勞役이면 恐致防損이라
以臣愚惑
으로 請停招慰
하고 且謂之
者
를 故臣而不納
하노이다
돌궐의
힐리頡利가 격파된 후부터 투항해온 여러 부락의 우두머리들을 모두
장군將軍이나
중랑장中郞將으로 임명하여
注+낭장郞將의 장將(장수)은 거성去聲이다. 조정에 나열하게 하니
5품 이상이 100여 명이므로, 거의 당나라 조정의 관리와 서로 절반쯤 되었다.
탁발拓跋만 오지 않았는데
注+탁拓은 타他와 각各의 반절이다. 발拔은 포蒲와 말末의 반절이니, 〈탁발拓跋은〉 이적夷狄의 복성複姓이다. 그들을 불러 위로하고자 사자가 길에 서로 이어졌다.
注+사使(사신)는 거성去聲이다.
이에 양주도독涼州都督 이대량李大亮이 무익한 일이고 다만 중국의 재력을 소모시킬 뿐이라고 생각하여 상소를 올렸다.
“신이 듣건대 먼 곳을 안정시키려는 사람은 반드시 가까운 곳을 먼저 안정시켜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중국의 백성은 천하의 뿌리이고 사방의 오랑캐는 가지와 잎인데,
뿌리를 흔들어 가지와 잎을 무성하게 하고 오래도록 안정을 구한 법은 아직 없었습니다.
예로부터 명철한 임금은 중국을 신의信義로 교화하고 융적戎狄을 권도權道로 제어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춘추좌씨전》에 이르기를 ‘
이적夷狄은 승냥이나 이리와 같은 존재이니 만족시킬 수 없고, 중국은 친근하게 대해야 할 대상이니 버릴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注+《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민공閔公 원년元年에 관중管仲이 제후齊侯에게 고하는 말이다.
폐하께서 천하를 다스린 이후로 나라의 뿌리는 매우 깊고 견고해졌으며, 백성은 편안해지고 병력은 강해졌으며, 구주九州가 풍요로워져서, 사방의 오랑캐들이 스스로 항복하였습니다.
지금 돌궐을 불러 비록 국내에 들어오게 하셨지만 신의 생각으로는 노고와 비용만 들고 유익한 점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서河西의 백성들은 변방의 오랑캐를 방어하느라
주州와
현縣은 황량해졌고,
호구戶口는 적어졌는데
注+선鮮(적다)은 상성上聲이다., 게다가
수隋나라의 난리로 인하여 더욱더 감소되었습니다.
돌궐이 평정되기 전에는 생업에 편히 종사하지 못하다가 흉노(돌궐)가 미약해진 이후로 비로소 농토에 나아가 농사를 지을 수 있었으니, 만일 백성들을 노역에 나가게 한다면 생업에 방해가 될까 우려됩니다.
신의 어리석고 미혹된 생각으로 청하건대 이적夷狄 불러 위로하는 것을 멈춰주시고, 또 황복荒服에 있는 자들을 설사 칭신하더라도 받아들이지 마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