貞觀十九年
에 太宗征高麗
하여 次定州
注+① 定州:今中山府, 隷腹裏.할새 有兵士到者
하니
帝御州城北門樓
하여 撫慰之
러니 有從卒一人
注+② 有從卒一人:從, 去聲, 後同.이 病不能進
이어늘 詔至床前
하여 問其所苦
하고 仍勅州縣醫療之
하니
是以
로 將士
注+③ 將士:將, 去聲, 後同.莫不欣然願從
이러라
及大軍回次柳城
注+④ 及大軍回次柳城:屬營州, 今廢.하여 詔集前後戰亡人骸骨
하여 設太牢致祭
注+⑤ 設太牢致祭:牛羊豕曰太牢.하고 親臨
하여 哭之盡哀
注+⑥ 親臨 哭之盡哀:臨, 去聲.하니 軍人無不灑泣
이라
兵士觀祭者가 歸家以言하니 其父母曰 吾兒之喪에 天子哭之하시니 死無所恨이라하다
太宗征遼東
하여 攻白巖城
注+⑦ 攻白巖城:唐置巖州, 今廢.할새 右衛大將軍李思摩
注+⑧ 右衛大將軍李思摩:頡利族人, 諸部納欵, 思摩獨留. 高祖封和順郡王, 與秦王結爲兄弟, 賜姓李, 爲化州都督, 統頡利故部, 爲可汗, 思摩遣使謝曰 “望世世爲國一犬, 守天子北門, 如延陀侵逼, 願入保長城.” 太宗詔許之, 居三年, 不得其衆, 入朝從伐遼.가 爲流矢所中
注+⑨ 爲流矢所中:去聲.이어늘 帝親爲吮血
注+⑩ 帝親爲吮血:去聲. 吮, 粗兗切.하니 將士莫不感勵
하니라
注
【集論】愚按 太宗親征하여 葬戰亡之骨하고 吮思摩之瘡하니 可謂仁恕也已라 然遠國强臣이 雖不義라도 而未至於虔劉邊鄙也라
若以偏方不霑王化
면 自有大司馬
之制在
어늘 何至躬率
乎
아
思遼水之無極하고 慮扈從之匪輕이면 仁恕一念이 油然發生於中이니 則可以已矣라 惻隱之心은 何待形於遂事之後乎아
정관貞觀 19년(645)에
태종太宗이
고구려高句麗를 정벌하려고
정주定州에 머물고 있을 때
注+〈정주定州는〉 지금의 중산부中山府이니, 복리腹裏에 속해 있다. 도착한 병사가 있었다.
태종이
정주성定州城 북문의 망루에 나아가 위로하였는데 종군하던 군졸 한 사람이
注+종從(수행원)은 거성去聲이다. 뒤에도 같다. 병들어 진군하지 못하자 조칙으로 침상 앞으로 오게 하여 아픈 곳을 묻고 이어서 조칙으로
주현州縣의 의사에게 치료하도록 하였다.
이 때문에 장수와 병사들이
注+장將(장수)은 거성去聲이다. 뒤에도 같다. 기뻐하며 종군하기를 원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대군大軍이 회군할 적에
유성柳城에 머물면서
注+〈유성柳城은〉 영주營州에 속하니, 지금은 폐하였다. 조칙을 내려 전후로 전사한 자들의 해골을 모아
태뢰太牢의 제물을 차려 제사를 지내고
注+소‧양‧돼지로 제사하는 것을 태뢰太牢라고 한다. 친히 조문하여 곡하고 애도를 다하니
注+임臨(조문하다)은 거성去聲이다. 군인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었다.
제사를 본 병사들이 집으로 돌아가서 이것을 전하니 그 부모들이 말하기를 “내 아들의 초상에 천자가 곡을 하셨으니, 죽었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요.” 라고 하였다.
태종이
요동遼東을 정벌하여
백암성白巖城을 공격할 때
注+당唐나라가 〈백암성白巖城에〉 암주巖州를 설치했는데, 지금은 폐하였다. 우위대장군右衛大將軍 이사마李思摩가
注+〈이사마李思摩는〉 힐리頡利의 족인族人으로, 여러 부部들이 당唐나라에 귀부하였으나 이사마만이 힐리가한에게 홀로 남았다. 고조高祖가 화순군왕和順郡王으로 봉하고, 진왕秦王과 결연을 맺고 형제가 되었다. 이씨李氏 성姓을 하사받고 화주도독化州都督이 되었고, 힐리의 옛날 부部를 통솔케 하여 가한可汗으로 삼았다. 이사마가 사신을 보내 사양하며 말하기를 “대대로 당나라의 한 마리 개가 되어서 천자의 북문을 지키기를 바랍니다. 만약 연타延陀가 침범하면 장성長城을 보호하러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하니, 태종太宗이 조서를 내려 허락하였다. 장성 안에서 3년을 살았는데도 그 무리들의 뜻을 얻지 못하여 당나라 조정으로 들어와 요동遼東 정벌에 따라갔다.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에 맞았는데
注+〈중中(들어맞다)은〉 거성去聲이다., 태종이 친히 입으로 상처의 피를 빨아주니
注+위爲(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전吮(빨다)은 조粗와 연兗의 반절이다., 장수와 병사들은 감동하여 분발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注
내가 살펴보건대, 태종太宗이 친히 정벌하여 전사戰死한 이의 뼈를 장사 지내고 이사마의 상처를 빨아주었으니, 인서仁恕라고 말할 만하다. 그러나 먼 나라의 강포한 신하가 비록 의롭지 않더라도 변방을 도륙할 지경에 이른 것은 아니었다.
만약 한쪽 변방이 제왕의 교화에 젖지 않으면 본래 대사마大司馬가 구벌九伐하는 제도가 있거늘 어찌 몸소 육군六軍의 군사를 거느리고 간 것인가.
요수遼水가 한없음을 생각하고 호종扈從이 가볍지 않음을 염려하였다면 인서仁恕의 한 가지 생각이 뭉클하게 마음에서 나왔을 것이니, 〈친정親征을〉 그만둘 수 있는 것이다. 측은한 마음은 어찌 일이 이루어진 후에 나타나기를 기다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