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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政要集論(1)

정관정요집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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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집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太宗謂玄素曰
以我不如煬帝하니 何如桀紂
對曰
若此殿卒興注+卒, 子聿切.하시면 所謂同歸於亂이니이다
太宗嘆曰
我不思量注+平聲.하여 遂至於此라하고
顧謂房玄齡曰
今玄素上表하니 洛陽實亦未宜修造
後必事理須行이니 露坐 亦復何苦리오
所有作役 宜即停之하라
然以卑 古來不易注+以豉切. 非其忠直이면 安能如此리오
且衆人之唯唯注+竝音葦. 不如一士之諤諤
이니 可賜絹五百匹하라하다
魏徵嘆曰
張公 遂有之力이라
可謂仁人之言이니 其利博哉注+, 此疏有曰 “臣聞東都始平, 太上皇詔宮室過度者焚之. 陛下謂瓦木可用, 請賜貧人, 事雖不從, 天下稱爲盛德. 今復度而營之, 是隋役又興, 不五六年間, 一捨一取, 天下將謂何.” 帝顧玄齡曰 “洛陽朝貢天下中, 朕營之, 意欲便四方百姓. 今玄素言如此, 使後必往, 雖露坐. 庸何苦.” 即詔罷役.로다
【集論】范氏祖禹曰
上之所好者 下之所競也
太宗 虛己以求直言이라 故群臣爭救其失하여 惟恐其言之不切하니
太宗 不惟悅而從之 又賞以勸之하니 此人君之所難能也
夫如是 何患於有過乎리오
張氏九成曰
古人 以片言干知己하고 以疏賤投至貴할새 非至誠切直이면 豈足以遇合이리오
始玄素 以小吏在擾攘間이라가 蒙天子訪問隋唐興替之由하여 遂獲寵遇하고 洛陽之役 懇切疏諫하여 遂有回天之力이라
惜乎 匪人淫慢하고 厭疾忠誨하여 功無成而遷播之禍至하니 忠良 所以於悒而痛哭也
呂氏祖謙曰
堯舜 天下之至善也 故人情莫不欲爲之하고 桀紂 天下之至惡也 故人情莫不恥言之
世之爲人君者 未嘗不是堯舜이로되 而未必爲堯舜之所爲하고 亦未嘗不非桀紂로되 而未必不爲桀紂之所爲하니
如是 則雖知以堯舜自名이라도 而未必不爲桀紂之歸也
惟聖明之君 知所以爲堯舜者 在於力行이요 而不在於空言이라
苟其行之未善이면 人雖被以桀紂之名이라도 而不怒하니
夫然後 可以進於堯舜이니 則漢高祖 唐太宗 其人也
高祖問周昌曰 我何如主 對曰桀紂之主라하고 太宗謂玄素曰 我何如桀紂 對曰 此役不息이면 同歸于亂이라하니
夫二君 三代而下之英主也
雖其臣 比之桀紂라도 而二君受之하니 雖不能盡如堯舜이나 而亦堯舜之徒耳
此無他 知以桀紂自儆이라 故不敢爲桀紂之歸也
愚按 洛邑 爲土中하여 以四方貢賦道里均也
周之都鎬京也에도 洛爲東都하여 於此而朝諸侯焉하고 漢之都長安也에도 洛有南宮하여 於此而臨幸焉하니 唐都長安하고 視洛陽 與周漢同하여 天下旣平 修治洛邑 若未甚害也
然洛陽 多隋宮室하고 制度過侈하여 非所宜修 太宗納玄素之諫하여 遽令罷役 善矣
他日 飛山翠微玉華之役 又非洛陽陪京之事 勢能追思玄素之言이면 則尤善矣


태종太宗장현소張玄素에게 말하였다.
이 나를 양제煬帝만 못하다고 했는데 걸왕桀王주왕紂王과 비교하면 어떠하오?”
장현소가 대답하였다.
“만일 이 궁전을 결국 세우신다면注+(마침내)은 의 반절이다. 이른바 똑같이 혼란으로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태종이 탄식하며 말하였다.
“내가 깊이 생각하지 못하여注+(헤아리다)은〉 평성平聲이다. 결국 여기에 이른 것이오.”
그리고 방현령房玄齡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지금 장현소가 올린 표문을 보니 낙양洛陽에 실로 건물을 수리 개조하는 것은 온당치 않소.
뒤에 반드시 사리事理에 맞게 실행하면 될 터이니, 그냥 맨땅 위에 앉는다 해도 다시 무슨 괴로움이 있겠소.
하던 공사를 즉시 중지하도록 하시오.
하지만 지위가 낮은 사람이 지위가 높은 사람을 저촉하는 것은 예로부터 쉽지 않으니注+(쉽다)는〉 의 반절이다.충직忠直한 사람이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겠소.
또 뭇사람들이 ‘예예’ 하고 순종하는 것은注+유유唯唯(수긍을 나타내는 대답)는〉 모두 음이 이다. 한 선비가 바르게 간언하는 것만 못하니 비단 500을 하사하시오.”
위징魏徵이 탄식하며 말하였다.
장공張公(張玄素)은 마침내 황제의 뜻을 되돌린 힘이 있다.
인인仁人의 말이라 할 만하니 그 이로움이 크도다.”注+살펴보건대, 사전史傳에는 이 소장疏章에 아뢰기를 “신이 들으니 동도東都(洛陽)가 처음 평정될 때 태상황太上皇(高祖 이연李淵)께서 조서를 내려 도에 지나치게 화려한 궁궐은 불에 태우라고 명하자, 폐하(太宗)께서는 쓸 만한 기와나 나무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하사할 수 있는지 물으셨는데 그 일이 비록 시행되지는 않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모두 훌륭한 덕을 갖추셨다고 칭찬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를 다시 경영하면, 이는 나라의 공사를 다시 일으켜 5, 6년이 안 되어 버렸다가 취하기를 반복하게 되니, 세상 사람들이 장차 무어라 하겠습니까?” 하였다.
태종太宗방현령房玄齡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낙양洛陽조공朝貢에 편리한 천하의 중심지이니 짐이 경영하려는 것은 뜻이 사방의 백성들을 편리하게 하는 데 있소. 지금 장현소張玄素가 이와 같이 말하니, 후에 반드시 가서 맨땅에 앉는다고 해도 무슨 괴로움이 있겠소.”라 하고, 즉시 조칙을 내려 공사를 그만두라고 했다.
【集論】范禹祖가 말하였다.
“윗사람이 좋아하는 것은 아랫사람이 경쟁적으로 하려 한다.
태종太宗이 자신을 비우고 직언直言을 구하였으므로 뭇 신하들이 앞다퉈 그 잘못을 구제하려 하여 자신들의 말이 절실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태종은 이를 기뻐하며 따랐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상을 주며 권장했으니, 이는 임금이 잘하기 어려운 점이다.
이와 같이 한다면 어찌 과오가 있을까 걱정하겠는가.”
장구성張九成이 말하였다.
“옛사람이 한마디 말로 자기를 알아주기를 구하며, 소원하고 천한 사람이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투신投身할 적에 지성스럽고 아주 정직한 사람이 아니면 어찌 서로 뜻이 맞을 수 있겠는가.
애초에 장현소張玄素가 하찮은 관리로서 별 볼 일 없이 지내다가 천자天子나라가 망하고 나라가 흥한 이유를 묻는 기회를 만나서 결국 총애와 지우知遇를 얻게 되었고, 낙양洛陽의 공사에 대해 간절하게 상소로 간언하여 마침내 황제의 뜻을 되돌리는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애석하다, 바르지 못한 사람은 방종하고 태만하며 충성스러운 말을 질시하여 공은 이루지도 못한 채 좌천되는 재앙이 따르니, 이것이 충성스럽고 어진 신하가 억울해하며 통곡하는 이유이다.”
여조겸呂祖謙이 말하였다.
임금‧임금은 천하의 최고 선인善人이므로 사람들의 마음에 모두 그렇게 되고 싶어 하였고, 걸왕桀王주왕紂王은 천하의 최고 악인惡人이므로 사람들 마음에 모두 그들에 대해 말하는 것을 수치스러워하였다.
세상의 임금들이 요임금‧순임금을 옳다고 여기지 않은 적이 없지만 반드시 요임금‧순임금이 행한 것을 행하지는 못하였고, 또 걸왕‧주왕을 그르다고 하지 않은 적이 없지만 반드시 걸왕‧주왕이 행한 것을 행하지 않지는 못하였다.
이와 같다면 비록 스스로는 요임금‧순임금으로 명명할 줄 안다 하더라도 반드시 걸왕‧주왕으로 귀결되지 않음이 없다.
오직 성스럽고 현명한 임금만이 요임금‧순임금이 되는 것은 힘써 실행하는 데 달려 있고 공허한 말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참으로 그 행동이 선하지 못하면 사람들이 비록 걸왕‧주왕이라고 명명해도 그에 대해 노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만 요임금‧순임금에 나아갈 수 있으니 고조高祖 태종太宗이 그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한 고조가 주창周昌에게 묻기를 ‘나는 어떠한 군주인가?’라고 하자, 대답하기를 ‘걸왕‧주왕과 같은 군주입니다.’라고 하였고, 당 태종이 장현소張玄素에게 묻기를 ‘내가 걸왕‧주왕과 견주어 어떠한가?’라고 하자, 대답하기를 ‘이 공사를 멈추지 않으면 똑같이 혼란으로 귀결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두 임금은 삼대三代 이후의 훌륭한 군주이다.
비록 신하가 걸왕‧주왕에 견주었어도 두 임금이 이를 받아들였으니, 비록 완전히 요임금‧순임금과 같지는 못하다고 해도 또한 요임금‧순임금의 무리에 속한다.
이는 다름이 아니라 걸왕‧주왕을 스스로 경계해야 할 줄 알았으므로 감히 걸왕‧주왕으로 귀결되지 않은 것이다.”
내가 살펴보건대, 낙읍洛邑(洛陽)은 사방의 중앙이 되어 사방四方에서 공물과 세금을 운송하는 길의 거리가 균등하다.
나라가 호경鎬京에 도읍하고도 낙읍을 동도東都로 삼아 이곳에서 제후諸侯에게 조회 받았고, 나라가 장안長安에 도읍하고도 낙읍에 남궁南宮을 두어 이곳에 행차했으니, 나라가 장안에 도읍하고서 낙양을 나라와 나라처럼 간주하여 세상이 평안해지고 나서 낙양을 수리하는 것은 큰 피해가 되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낙양에는 나라의 궁궐이 많고 그 제도가 지나치게 화려하여 수리하기에 온당치 않은 것들이었으니, 태종太宗장현소張玄素의 간언을 받아들여 바로 공사를 멈추도록 한 것은 훌륭하다.
그런데 훗날 비산궁飛山宮취미궁翠微宮옥화궁玉華宮의 공사는 또 배경陪京(제2의 도읍지)인 낙양과 관련된 것이 아니었으나 형세상 장현소의 말을 미루어 생각할 수 있었다면 더욱더 훌륭했을 것이다.


역주
역주1 (于)[干] : 저본에는 ‘于’로 되어 있으나, 《舊唐書》 권75 〈張玄素列傳〉에 의거하여 ‘干’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 且衆人之唯唯 不如一士之諤諤 : 《史記》 〈商君列傳〉에 “천 명의 신하가 예예 하는 것은 한 명 선비의 올곧은 간언만 못하다.[千人之諾諾 不如一士之諤諤]”라고 하였다.
역주3 回天 : 간언을 통해 皇帝의 마음을 되돌리는 것이다. 天은 皇帝를 뜻한다.
역주4 史傳 : 《新唐書》 권103 〈張玄素列傳〉에 보인다.

정관정요집론(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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