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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政要集論(4)

정관정요집론(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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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집론(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貞觀十一年 太宗幸洛陽宮하여 泛舟于積翠池하고 顧謂侍臣曰
此宮觀臺沼注+① 此宮觀臺沼:觀, 去聲. 竝煬帝所爲
所謂驅役生人하여 窮此雕麗
復不能守此一都하여 以萬人爲慮하고 好行幸不息注+② 好行幸不息:好, 去聲.하니 人所不堪이라
昔詩人云호대 何草不黃하며 何日不行注+③ 何草不黃 何日不行:詩雅何草不黃篇之辭.가하고
大東小東 杼柚其空注+④ 大東小東 杼軸其空:詩小雅大東篇之辭.이라하니 正謂此也
遂使天下怨叛하여 身死國滅이라
今其宮苑 盡爲我有하니 隋氏傾覆者 豈惟其君無道 亦由股肱無良이니
如宇文述虞世基裴蘊之徒注+⑤ 如宇文述虞世基裴蘊之徒:皆隋之臣. 居高官하여 食厚祿하고
受人委任하여 惟行諂佞하여 蔽塞聰明하니 欲令其國無危注+⑥ 欲令其國無危:令, 平聲. 不可得也
司空長孫無忌奏言호대
隋氏之亡 其君則杜塞忠讜之言하고 臣則苟欲自全하여
左右有過 初不糾擧하고 寇盜滋蔓 亦不實陳하니
據此 卽不惟天道 實由君臣不相匡弼이니이다
太宗曰 朕與卿等으로 承其餘弊하니 惟須弘道移風하여 使萬世永賴矣리라


정관貞觀 11년(737)에 태종太宗낙양궁洛陽宮에 행차하여 적취지積翠池에 배를 띄우고 근신近臣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이 궁궐‧누관樓觀대각臺閣‧연못은注+(누각)은 거성去聲이다. 모두 수 양제隋 煬帝가 만든 것이오.
이른바 백성들을 부려서 이처럼 매우 화려하게 지었는데도,
이 도성(장안) 한 곳에 머물면서 만민을 생각지 않고 여러 지역에 행차하기를 좋아하여 그치지 않았으니注+(좋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이로 인해 백성들이 견디지 못한 것이오.
옛 시인은 말하기를, ‘어떤 풀인들 시들지 않으며, 어느 날인들 가지 않으랴.’라고 하였고注+시경詩經》 〈소아小雅 하초불황何草不黃〉편의 말이다.,
‘동쪽의 큰 나라 작은 나라에 베 짜는 북과 바디가 비어 있구나.’라고 하였으니注+
시경詩經》 〈소아小雅 대동大東〉편의 말이다., 바로 이것을 말한 것이오.
마침내 천하 사람들을 원망하고 배반하게 하여 자신은 죽임을 당하고 나라는 멸망되었소.
지금 그의 궁원宮苑이 모두 나의 소유가 되었으니, 나라가 멸망하게 된 것이 어찌 오직 그 군주의 무도함 때문이겠소. 또한 팔다리 같은 신하 중에 어진 자가 없었기 때문이오.
우문술宇文述우세기虞世基배온裴蘊 등의 무리가注+우문술宇文述우세기虞世基배온裴蘊은〉 모두 의 신하이다. 높은 관직에 있으면서 후한 봉록을 받아먹고
백성들의 위임을 받아서 오직 아첨을 행하여 임금의 총명을 가렸으니, 그 국가를 위태롭지 않게 하고자 하더라도注+(하여금)은 평성平聲이다. 할 수 없었던 것이오.”
사공司空 장손무기長孫無忌가 상주하였다.
“수나라의 멸망은, 군주는 충직한 간언을 막고 신하는 구차하게 자신만 보존하기를 바라서
좌우의 신하들이 허물이 있어도 애초에 적발하지 않고 도적이 들끓어도 사실대로 진술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의거하면 수나라의 멸망은 바로 천도天道일 뿐만 아니라 진실로 군신君臣 간에 바르게 보필하지 않았던 것에 따른 것입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들과 수나라의 남은 폐단을 이어받았으니 오직 도의를 넓히고 풍속을 변화시켜 만세토록 길이 그 혜택을 입게 해야 할 것이오.”
隋 煬帝가 궁전을 꾸미기 위해 비단을 잘라 꽃을 만들다隋 煬帝가 궁전을 꾸미기 위해 비단을 잘라 꽃을 만들다


역주
역주1 (大)[小] : 저본에는 ‘大’로 되어 있으나, 《詩經》에 의거하여 ‘小’로 바로잡았다.

정관정요집론(4)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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