貞觀十三年
에 諫議大夫褚遂良
이 以每日
注+ 以每日:日, 一作月.特給魏王泰府料物
이 有逾於皇太子
라하여 上疏諫曰
昔聖人制禮
에 尊嫡卑庶
하여 謂之儲君
注+ 謂之儲君:儲, 音除, 副也. 太子君之副, 故謂之儲君.이라하고 道亞霄極
하니 甚爲崇重
이라
用物을 不計하여 泉貨財帛을 與王者共之하고 庶子는 體卑라 不得爲例하니
而先王이 必本於人情하여 然後制法하니 知有國家면 必有嫡庶라
然庶子
가 雖愛
라도 不得超越嫡子
하고 는 特須尊崇
이니
如不能明立定分하여 遂使當親者疎하고 當尊者卑하면
則佞巧之徒가 承機而動하여 私恩害公하여 或至亂國하리이다
伏惟陛下功超萬古
하시고 道冠百王
注+ 道冠百王:冠, 去聲.하사 發施號令
注+ 發施號令:施, 平聲.하여 爲世作法
注+ 爲世作法:爲, 去聲.하시니
一日萬幾에 或未盡美하면 臣職諫諍이라 無容靜默이니
伏見儲君料物이 翻少魏王하니 朝野見聞이 不以爲是라
臣聞傳曰
注+ 臣聞傳曰:傳, 去聲.이라하니 忠孝恭儉
이 義方之謂
라
昔漢竇太后及景帝竝不識義方之理하여 遂驕恣梁孝王하여 封四十餘城하고 苑方三百里요
大營宮室
하여 彌望
하고 積財鏹巨萬計
요 出警入蹕
이라가 小不得意
에 發病而死
注+ 積財鏹巨萬計……發病而死:鏹, 擧兩切, 貫錢索也. 蹕, 音畢, 天子出稱警, 入稱蹕. 竇太后, 漢文帝之后, 生景帝及梁王, 王名武, 諡曰孝, 事見本傳.하고
宣帝亦驕恣淮陽王
하여 幾至於敗
러니 賴其輔以
하여 僅乃獲免
注+ 幾至於敗……僅乃獲免:幾, 平聲. 淮陽王, 名欽, 漢宣帝庶子也. 諡曰憲, 事見本傳.이라
且魏王
이 旣新
하니 伏願恒存禮訓
하시고 妙擇師傅
하사 示其成敗
하고
旣敦之以節儉
하고 又勸之以文學
하니 惟忠惟孝
로 因而獎之
하여 道德齊禮
注+ 道德齊禮:論語曰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라야 乃爲良器
리니
注
太宗旣立承乾爲太子하고 而所以眷眷於泰而寵錫之者는 其禮乃過於承乾하니 其理何邪오
是時雖未嘗許泰爲太子나 而禮數優異하니 則立泰之意가 固已見於不言之間矣라
及其邪心旣啓하여 然後從而裁抑之하여 旣幽之하고 復降之하니
注
愚按 古者에 不以私恩害公義라 故嫡長之重하여 衆子雖愛나 不得而竝焉이라
太宗以聰明之君으로 而於太子魏王之事에 獨不能定其分하여 異其禮하니
雖深納遂良之言나 而私愛之心을 終不能自克하여 卒至於兩廢焉하니 其亦可監也夫인저
정관貞觀 13년(639)에
간의대부諫議大夫 저수량褚遂良이 매일
注+일日은 어떤 본에는 월月로 되어 있다. 위왕魏王 이태李泰의 궁에 특별히 공급되는 물품이 황태자에게 지급되는 것보다 훨씬 많다고 여겨 다음과 같이 상소하여 간언하였다.
“옛 성인은 예법을 제정하여
서자庶子를 낮추고
적자嫡子를 존중하여
저군儲君이라고 불렀고
注+저儲는 음이 제除이니, 버금간다는 뜻이다. 태자太子는 군주에 버금가기 때문에 저군儲君이라고 한다.,
도道는 군주에 버금갔으니 깊이 추앙을 받았습니다.
사용하는 물품에는 제한을 두지 않았고, 화폐 같은 재물과 비단은 군주와 함께 사용하였으며, 서자는 출신이 비천하기에 이와 같은 규례를 행할 수 없었으니,
혐의를 받을 조짐을 막고 화란의 근원을 없애기 위함이었습니다.
선왕은 반드시 인정人情에 근본을 둔 연후에 예법을 제정하였고, 국가가 있으면 반드시 적자와 서자의 구별이 있어야 함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서자가 비록 사랑스러워도 적자를 넘어설 수는 없고, 황태자는 특별히 존숭尊崇해야 하니,
만일 정해진 분수를 명확히 세우지 못하여 이윽고 마땅히 친하게 지내야 할 사람을 멀리하고 마땅히 존중해야 할 사람을 천시하게 되면
아부하는 무리들이 기회를 틈타 움직여 사사로운 은혜가 공사公事를 해쳐 혹은 나라에 혼란을 야기할 것입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폐하의 공적은
만고萬古를 초월하고
도道는
백왕百王에 으뜸가며
注+관冠(으뜸간다)은 거성去聲이다., 호령을 발하고 시행하여
注+시施(시행하다)는 평성平聲이다. 세상을 위해 법을 제정하셨습니다.
注+위爲(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매일 만기萬機를 다스리실 때 모두 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면, 신은 간쟁諫諍의 직책을 맡은 자로서 묵묵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엎드려 살펴보건대 황태자에게 제공되는 물품이 도리어 위왕보다 적으니, 조정의 신하들과 백성들이 보고 듣고는 옳지 않다고들 합니다.
신은 듣건대 《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이르기를
注+전傳(기록)은 거성去聲이다., ‘자식을 사랑한다면 그에게 올바른 길로 가도록 가르쳐야 한다.’라고 하였으니, 충성‧효도‧공손‧검소가 올바른 길임을 말한 것입니다.
옛날 한漢나라 두태후竇太后와 경제景帝는 올바른 길의 이치를 알지 못하고 이윽고 양효왕梁孝王을 교만하고 방자하게 만들어 40여 성을 봉해주었고, 궁원宮苑은 사방 300리나 되었으며,
큰 궁실을 지어
복도複道를 더 멀리서 바라볼 수 있게 하였고, 억만금의 재물을 쌓아놓고 천자와 똑같은 의식으로 드나들도록 하였다가 조금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자 병이 나서 죽었습니다.
注+강鏹은 거擧와 양兩의 반절로, 돈꿰미이다. 필蹕은 음이 필畢로, 천자가 행차하는 것을 경警이라 하고, 들어오는 것을 필蹕이라 한다. 두태후竇太后는 한 문제漢 文帝의 황후로, 경제景帝와 양왕梁王을 낳았는데, 양왕梁王은 이름이 무武이며, 시호는 효孝이다. 사실이 《한서漢書》 권47 〈양효왕무열전梁孝王武列傳〉에 보인다.
한 선제漢 宣帝 역시
회양왕淮陽王을 교만하고 방자하게 만들어 거의 패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가 겸양하는 신하로 보좌하도록 하여 그에 힘입어 간신히 화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注+기幾(거의)는 평성平聲이다. 회양왕淮陽王은 이름이 흠欽으로, 한 선제漢 宣帝의 서자庶子이다. 시호는 헌憲으로 사실이 《한서漢書》 권80 〈회양헌왕흠열전淮陽憲王欽列傳〉에 보인다.
또 위왕은 이미 왕부王府를 개설하였으니 엎드려 원하건대 항상 예의로 가르치시고, 태사太師와 태부太傅를 잘 선택하여 성공과 실패를 보여주십시오.
이미 절약과 검소로 돈독하게 하고, 또
문학文學을 권하였으니 오직
충효忠孝로 거듭 장려하여
덕德으로 이끌고
예禮로 가지런히 해야
注+《논어論語》 〈위정爲政〉에 이르기를 “덕으로 이끌고 예로 가지런히 하면 사람들이 부끄러움이 있고 바르게 된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훌륭한 그릇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성인의 가르침이 엄숙하지 않아도 이루어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태종이 저수량의 말을 깊이 받아들였다.
注
진돈수陳惇修가 말하였다. “심하구나. 태종太宗이 좋은 아버지 노릇을 하지 못하였음이여!
이태李泰의 사악한 마음을 열어준 것은 태종이니, 이태의 죄가 아니다.
태종이 이미 이승건李承乾을 세워 태자로 삼고, 늘 이태를 마음에 두어 특별히 내려준 물품은 그 예수禮數가 승건보다 훨씬 많았으니, 무슨 이치인가.
이때에 비록 이태가 태자가 되는 것을 허락하지는 않았으나 예수禮數가 넉넉하고 특별하였으니, 이태를 태자로 세우려는 뜻이 진실로 이미 말을 하지 않은 사이에 이미 드러난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 이태가 태자 자리를 넘봄이 없이 이승건을 끌어내리려는 계획을 하지 않을 것을 면할 수 있겠는가?
그의 사악한 마음이 이미 발동하고 난 뒤에 억눌러서 유폐幽閉하고 다시 끌어내렸으니,
이것이 어찌 들어오도록 유인하여 다시 그 문을 닫아버리는 것과 다르겠는가. 또한 미혹된 것이 아닌가?”
注
내가 살펴보건대 옛날에는 사사로운 은혜로 공의公義에 해를 끼치지 않았다. 그러므로 적장자嫡長者를 중히 하여 여러 아들들을 비록 사랑하였지만, 그와 나란할 수 없게 하였다.
존비尊卑의 등급을 분명히 하는 것은 분수를 넘는 일의 근원을 막는 것이다.
태종은 총명한 군주로서 태자太子와 위왕魏王의 일에 있어서만은 그 분수를 정해주지 못하여 그 예수禮數를 특별하게 해주었으니,
비록 저수량의 간언을 깊이 받아들이기는 하였지만 편애하는 마음을 결국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여 결국 두 명 모두를 폐위하는 데 이르렀으니, 역시 귀감으로 삼을 만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