貞觀十一年에 治書侍御史劉洎가 以爲左右丞을 宜特加精簡이라하여 上疏曰
臣聞尙書萬機는 實爲政本이라하니 伏尋此選授任誠難이라
是以八座
를 比於文昌
注+ 是以八座 比於文昌:左右僕射及六部是爲八座. 漢志曰 “斯乃, 衆務淵藪.”하고 二丞
을 方於管轄
注+ 二丞 方於管轄:二丞, 左右丞也. 六典曰 “掌管轄省事.”하며 爰至曹郞
히 上應列宿
注+ 宿:音秀. 漢明帝曰 “郞官上應列宿.”하니
苟非稱職
注+ 苟非稱職:稱, 去聲.이면 竊位興譏
라
伏見比來
에 尙書省
注+ 伏見比來尙書省:比, 音鼻. 後同.에 詔勅
이 稽停
注+ 稽停:稽, 音朞.하고 文案
이 壅滯
하니 臣誠庸劣
이어니와 請述其源
하리이다
貞觀之初
에 未有令僕
注+ 令僕:尙書令及僕射也.하고 于時省務繁雜
하여 倍多於今
한대
而左丞戴冑
와 右丞魏徵
이 竝曉達吏方
하고 質性平直
하여 事應彈擧
注+ 事應彈擧:應, 彈, 竝平聲.면 無所迴避
하고
陛下又假以恩慈하여 自然肅物하여 百司匪懈가 抑此之由니이다
比者
에 綱維不擧
는 竝爲勳親在位
注+ 竝爲勳親在位:爲, 去聲.하여 器非其任
이요 功勢相傾
이라
凡在官寮
가 未循公道
하니 雖欲自强
이나 先懼囂謗
注+ 先懼囂謗:囂音枵, 浮薄也.이라
所以郞中予奪
注+ 所以郞中予奪:予, 上聲.을 惟事諮稟
하고 尙書
는 依違
하여 不能斷決
이라
或紏彈聞奏를 故事稽延하여 案雖理窮이나 仍更盤下하니
去無程限하고 來不責遲하여 一經出手에 便涉年載라
는 以案成爲了
하여 不究是非
하며 尙書
는 用便僻爲奉公
하여 莫論當否
注+ 用便僻爲奉公 莫論當否:便論, 竝平聲. 當, 去聲.하고 互相姑息
하여 惟事彌縫
하니이다
天工人代
注+ 天工人代:虞書曰 “天工人其代之.” 言人君代天理物, 官所治皆天事.하니 焉可妄加
注+ 焉可妄加:焉, 於䖍切.리오
或年高及耄
注+ 或年高及耄:耄, 音冒, 八十九十曰耄.하고 或積病智昏
하여 旣無益於時宜
하면 當置之以閒逸
이니 久妨賢路
는 殊爲不可
라
將救玆弊
인댄 且宜精簡尙書左右丞及左右郞中
注+ 左右郞中:唐制, 副二丞所轄諸司事, 署錄目, 勘稽失, 知省內宿直之事.하여 如竝得人
하면 自然綱維備擧
하고 亦當矯正趨競
하리니 豈惟息其稽滯哉
리오
注
【集論】張氏九成曰 觀洎以章疏白尙書非人之弊하여 務欲擇賢任職하여 整綱維하고 振稽滯하니
注
愚按 唐制에 三省에 尙書省居其首니 樞機之要也라
左丞은 則總吏部戶部禮部하고 右丞은 則總兵部刑部工部하니 其所關繫가 豈小哉리오
劉洎는 以剛直果敢之才로 當紏彈擧劾之任하여 於是而極言委任之弊하니 其陳精簡之方은 可謂知政本稱厥職矣요
정관貞觀 11년(637)에 치서시어사治書侍御史 유계劉洎가 좌우승左右丞은 특별히 더욱 정밀히 선발해야 한다고 하여 상소하였다.
“신은 듣건대 상서성尙書省의 모든 임무는 실로 정치의 근본이 된다고 합니다. 삼가 살펴보니 이를 선발하여 임무를 주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이 때문에
팔좌八座를
문창성文昌星에 비유하고
注+좌‧우복야 및 6부部가 팔좌八座이다. 《한지漢志》에 이르기를 “이곳은 문창천부文昌天府이니, 모든 일이 모이는 곳이다.”라고 하였다. 좌우승을
관할管轄(열쇠와 비녀장)에 비유하며
注+이승二丞은 좌승과 우승이다. 《육전六典》에 이르기를 “중서성中書省의 핵심적인 일을 관장한다.”라고 하였다. 조랑曹郞(부서의 관리)에 이르기까지 위로 여러 별들에 대응하니
注+음音이 수秀이다. 한 명제漢 明帝가 이르기를 “낭관郞官은 위로 여러 별에 상응한다.”라고 하였다.,
만일 걸맞는 직임이 아니면
注+칭稱(걸맞다)은 거성去聲이다. 지위만 훔친다는 비난이 일어날 것입니다.
제가 보건대 근래 상서성에는
注+비比(근래)는 음音이 비鼻이다. 뒤에도 같다. 조칙이
계류稽留되어 있고
注+계稽(머무르다)는 음音이 기朞이다. 문건이 지체되어 있으니, 신이 참으로 용렬하지만 그 원인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정관 초기에는
상서령尙書令과
복야僕射가 없었고
注+상서령尙書令과 복야僕射이다., 그때에는 상서성의 업무가 번잡하여 지금보다 갑절이나 많았는데
좌승
대주戴冑와 우승
위징魏徵이 모두 관리의 업무 처리 방법에 밝게 통달하고, 성품이 공평 정직하여 탄핵할 일이 있으면
注+응應(마땅하다)과 탄彈(탄핵하다)은 모두 평성平聲이다. 피하지 않았으며,
폐하께서 또 은혜와 자애를 베푸시어 자연히 사람들이 엄숙해져서 모든 관사가 게으름을 피우지 않은 것은 또한 이 때문입니다.
두정륜杜正倫이 뒤이어 우승의 임무를 맡았을 때 역시 하급 관원들을 독려했는데,
근래에 기강이 제대로 서지 않은 것은 모두 공훈이 있는 자와 친척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注+위爲(때문에)는 거성去聲이다. 기량이 그 임무에 합당하지 않고 공로와 권세에 서로 힘쓰기 때문입니다.
관직에 있는 이들이 공정한 도리를 따르지 않으니, 비록 스스로 힘쓰고자 하나 시끄럽게 비방이 일까 먼저 두려워합니다.
注+효囂는 음音이 효枵니, 경박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낭중郎中의 임명과 면직을
注+여予(주다)는 상성上聲이다. 일마다 품의하여 처리할 뿐이고 상서는 머뭇거리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규탄하는 상소를 일부러 지연시켜 안건이 비록 심리가 다 끝났는데도 다시 아래에 추문推問해야 한다고 하니
보내는 것은 기한이 없고, 오는 것은 지체됨을 문책하지 않아 한번 손을 거쳐 나오는 데 몇 년이 걸립니다.
혹은 천자의 뜻을 바라다가 실정을 잃기도 하고 혹은 혐의를 피하려고 실리를 억압하기도 합니다.
담당 관리는 문건을 완성하는 것으로 일을 마쳤다고 여겨 시비를 추구하지 않으며, 상서는 아첨하고 비위를 맞추는 것으로 공무를 받든다고 여겨 마땅한지 아닌지를 따지지 않고
注+편便(아첨하다)과 논論(논란하다)은 모두 평성平聲이다. 당當(합당하다)은 거성去聲이다. 서로 눈앞의 편안함만을 취하여 오직 미봉책만을 일삼고 있습니다.
우선 많은 사람 중에서 선발하여 능력자를 임명하되 재능이 없으면 등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늘의 일을 사람이 대신하는 것이니
注+《서경書經》 〈우서虞書 고요모皐陶謨〉에 “하늘의 일을 사람이 대신한다.”라고 하였는데, 군주가 하늘을 대신해 사물을 다스려서 관직에서 다스리는 일은 모두 하늘의 일임을 말한 것이다., 어찌 함부로 벼슬을 줄 수 있겠습니까?
注+언焉(어찌)은 어於와 건䖍의 반절이다.
천자의 친척이나 공신에게는 다만 적당히 예우하고 녹봉을 넉넉히 줄 뿐입니다.
혹은 나이가 많아 팔구십 세가 되었거나
注+모耄(늙은이)는 음音이 모冒이니, 80세와 90세를 모耄라고 한다. 혹은 오랜 병에 지혜가 혼몽하여 이미 시대의 적합성에 도움이 되지 못하면 마땅히 한가하게 지내도록 해야 하니, 오래도록 현인의 벼슬길을 막는 것은 결코 옳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폐단을 제거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상서와 좌‧우승 및 좌우낭중을 정밀히 선발하여
注+당唐나라 제도에 의하면 좌‧우승이 관할하는 여러 직무를 보좌하여 목록을 작성하고 지연되거나 잘못된 것을 살피며, 상서성 내의 숙직하는 일을 맡는다. 만일 모두 적당한 사람을 얻게 되면 자연히 기강이 갖추어지게 될 것이고, 또한 마땅히 경쟁하는 풍토도 바로잡히게 될 것이니, 어찌 일이 지체되는 것만을 멈출 뿐이겠습니까.”
상소문이 올라가자 얼마 뒤에 유계를 상서좌승으로 삼았다.
注
장구성張九成이 말하였다. “살펴보건대 유계劉洎가 상소를 올려 상서성에 합당한 인물이 없는 폐단을 말함으로써 힘써 훌륭한 사람을 선택하여 직무를 맡겨서 기강을 바로잡고 지체되는 것을 진작시키고자 하였으니,
이는 모두 정치 체제를 잘 아는 것이고, 정치의 근본에 깊이 통달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구나! 충성과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을 자신에게 밀접하게 적용하지 못하였으니, 마땅히 후세 사람들이 경계로 삼아야 할 것이다.”
注
내가 살펴보건대 당唐나라 제도에 의하면 삼성三省 가운데 상서성尙書省이 최상에 있으니, 가장 중요한 부서이다.
상서령은 모든 관원을 맡아 통솔하는 일을 관장하는데, 그 소속에 6부部가 있다.
좌左‧우복야右僕射는 6관官을 총괄해 다스리는데, 상서령의 부관副官이니 모두 재상이다.
좌승은 이부吏部‧호부戶部‧예부禮部를 총괄하고, 우승은 병부兵部‧형부刑部‧공부工部를 총괄하니, 그들과 관계된 일이 어찌 작다고 하겠는가?
유계는 강직하며 과감한 자질을 지니고서 규탄하며 논핵하는 임무를 맡아 이때에 직무 유기의 폐단을 극론하니 관원을 정밀하게 선발하는 방법을 진술한 것은 정치의 근본을 알고 그 직책에 걸맞는다고 이를 만하고,
태종太宗은 곧바로 유계를 좌승에 임명하였으니, 사람을 잘 알아보았다고 이를 만하다.
태종太宗이 인재를 쓰고 부리는 것을 후세의 군주들은 마땅히 본보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