朕比尋討經史
注+ 朕比尋討經史:比, 音鼻.하니 明王聖帝
가 曷嘗無師傅哉
아 前所進令
에 遂不覩三師之位
하니 意將未可
라
何以然
고 黃帝學大顚
하고 顓頊學錄圖
하고 堯學尹壽
注+ 堯學尹壽:尹壽, 一作君疇.하며 舜學務成昭
하고 禹學西王國
하고
湯學威子伯
하고 文王學子期
하며 武王學虢叔
注+ 黃帝學大顚……武王學虢叔:已上出劉向新序.하니
前代聖王이 未遭此師면 則功業不著乎天下하고 名譽不傳乎載籍이리라
況朕接百王之末하되 智不同聖人하니 其無師傅이면 安可以臨兆民者哉아
詩不云乎
아 不愆不忘
하여 率由舊章
注+ 不愆不忘 率由舊章:詩大雅嘉樂篇之辭.이라하니
夫不學則不明古道
注+ 夫不學則不明古道:夫, 音扶.하니 而能政致太平者
는 未之有也
라
可卽著令
하여 置三師之位
注+ 置三師之位:按, 史志隋廢三師, 貞觀十一年復置, 與三公皆不設官屬.하라
注
【集論】愚按 周書曰 立太師太傅太保하노니 曰三公이니
論道經邦하고 燮理陰陽하나니 官不必備라 惟其人이니라
少師少傅少保는 曰三孤니 貳公弘化하여 寅亮天地라하니 豈易其人哉리오
若論其極하면 必皐夔稷契伊傅周召而後可어니와 世變無窮하니 隨世升降이라도 可也라
唐以太師太傅太保爲三師하여 天子所師法으로 無所總職이요
太尉司徒司空爲三公하여 佐天子理陰陽하고 平邦國하여 無所不統하니 此則非古制也라
以太宗之時에 固皆元勳碩德居之하니 制雖殊古나 而名意則同이요
人君欲稽古以正名하되 苟捨周官하면 愚未見其可也라
정관貞觀 6년(632)에 태종이 조서를 내렸다.
“짐이 근래에
경사經史를 깊이 궁구해보니
注+비比(근래)는 음이 비鼻이다., 명철한 제왕과 훌륭한 황제가 어찌
사부師傅가 없었던 적이 있었는가. 이전에 올린 법령 중에
삼사三師의 지위에 대한 것은 보지 못했으니, 내 생각에는 옳지 않은 듯하다.
어째서인가.
황제黃帝는
대전大顚에게 배웠고,
전욱顓頊은
녹도錄圖에게 배웠으며,
요堯임금은
윤수尹壽에게 배웠고
注+윤수尹壽는 어떤 본에 군주君疇로 되어 있다.,
순舜임금은
무성소務成昭에게 배웠으며,
우禹임금은
서왕국西王國에게 배웠고,
탕湯임금은
위자백威子伯에게 배웠으며,
문왕文王은
자기子期에게 배웠고,
무왕武王은
괵숙虢叔에게 배웠으니
注+이상은 유향劉向의 《신서新序》에 나온다.,
이전 시대의 성왕들이 이러한 스승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들의 공업은 천하에 드러나지 못했을 것이며, 명예는 전적에 전해질 수 없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짐은 역대 군왕들의 뒤를 이었지만 성인과 같은 지혜가 없으니, 사부師傅가 없다면 어찌 백성들을 대할 수 있겠는가.
《
시경詩經》 〈
대아大雅 가락嘉樂〉에도 ‘과오를 저지르지 말고 잊지 말아, 옛 제도를 따르라.’
注+《시경詩經》 〈대아大雅 가락嘉樂〉의 가사이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배우지 않으면 옛날의 도에 밝지 못하니
注+부夫(발어사)는 음이 부扶이다., 그렇게 하고도 정치를 잘하여 태평성대를 이룬 사람은 없었다.
즉시 법령을 제정하여
삼사三師의 지위를 마련하라.”
注+살펴보건대 사지史志에는 수隋나라 때 삼사三師를 폐지하고, 정관 11년에 다시 설치하였는데, 삼공三公과 함께 모두 관속官屬을 두지 않았다.
注
내가 살펴보건대, 《서경書經》 〈주서周書 주관周官〉에 “태사太師‧태부太傅‧태보太保를 세우노니, 이들이 삼공三公이다.
도道를 논하고 나라를 다스리며 음양陰陽을 조화하여 다스리니, 관원을 반드시 구비할 것이 아니요, 오직 그러한 사람이 있으면 임명한다.
소사少師‧소부少傅‧소보少保를 삼고三孤라 하니, 공公의 다음이 되어 교화를 넓혀 천지를 공경하여 밝힌다.” 라고 하니, 어찌 그러한 사람을 쉽게 얻을 수 있겠는가.
지극한 경우를 논하자면 반드시 고요皐陶‧기夔‧후직后稷‧설契‧이윤伊尹‧부열傅說‧주공周公‧소공召公과 같은 뒤에야 가하거니와, 세상의 변화가 끝이 없으니 세대에 따라 오르내리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당唐나라는 태사太師‧태부太傅‧태보太保를 삼사三師로 삼아서 천자가 스승으로 받들어 본받는 바였고 총괄하는 직책이 없었으며,
태위太尉‧사도司徒‧사공司空을 삼공三公으로 삼아서 천자를 보좌하여 음양을 다스리고 나라를 평안히 하여 통솔하지 않는 일이 없었으니, 이는 옛날의 제도가 아니다.
태종의 시대에는 진실로 모두 나라에 큰 공을 세운 공신들과 큰 덕을 지닌 이들이 그 자리에 있었으니, 제도는 비록 옛날과 달랐지만 명칭과 뜻은 동일하였다.
이 이후로는 관직을 더하여 품계를 높여주는 것만 보였을 뿐이니, 어찌 모두 그에 걸맞는 사람들이었겠는가.
군주가 옛날의 제도를 상고하여 명분을 바로 세우고자 하면서 만일 〈주관周官〉을 버려둔다면 나는 그것이 옳은 줄을 알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