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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政要集論(4)

정관정요집론(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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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집론(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是以周室愛民攘狄하여 竟延八百之齡하고 秦王輕戰事 故四十載而絶滅하고
이 때문에 왕실王室은 백성을 사랑하고 이적夷狄을 물리쳐 마침내 이어져 800년이나 지속하였으며, 진 시황秦 始皇은 경솔하게 (흉노匈奴)와 전쟁을 일삼았으므로 40년 만에 멸망하였으며,
漢文養兵靜守하여 天下安豐하고 孝武揚威遠略 海內虛耗하니
한 문제漢 文帝는 병력을 양성하고 조용히 지켜서 천하가 안정되고 부유해졌으며, 효무제孝武帝는 무위를 떨쳐 멀리 침략하는 바람에 천하의 재물을 헛되이 소모하였으니
비록 〈윤대죄기조輪臺罪己詔〉(윤대輪臺 지역을 버린다는 자기반성 조칙)를 내려 후회하였으나 후회막급이었습니다.注+한 무제漢 武帝는 멀리 정벌 나간 것을 후회하였는데. 수속도위搜粟都尉 상홍양桑弘羊승상丞相어사御史와 함께 상주하기를 “옛날 윤대輪臺의 동쪽에 관개灌漑할 만한 농지 5천 이상이 있는데 교위校尉를 두어 분담시켜 감독케 하고 해마다 그 이익을 거두어 서역 나라들에게 위엄을 보이소서.”라고 하였으나, 무제가 따르지 않고 이에 조서를 내려 지난날의 잘못을 깊이 뉘우쳤다.
至于隋室하얀 早得伊吾하고 兼統鄯善注+㉓ 兼統鄯善:伊吾‧鄯善, 竝西域國名. 伊吾在大磧外, 南至玉門關八百里, 漢宜禾都尉所治.이나
나라에서는 일찍 이오伊吾를 얻고, 겸하여 선선鄯善을 통합하였지만注+이오伊吾선선鄯善은 모두 서역의 나라 이름이다. 이오는 큰 사막의 밖에 있고 남쪽으로 옥문관玉門關까지 거리가 800리인데 나라 의화도위宜禾都尉가 다스리던 곳이다.
且旣得之後 勞費日甚하여 虛內致外하여 竟損無益하니
또한 얻은 이후에 수고와 비용이 날로 심하여 국내를 고갈시키면서 국외에 힘을 다하여, 결국 손해만 보고 이익은 없었습니다.
遠尋秦漢하고 近觀隋室하면 動靜安危 昭然備矣
멀리는 진나라와 한나라를 살펴보고 가까이는 수나라를 살펴보면 동정과 안위가 밝게 갖추어져 있습니다.
伊吾雖已臣附 遠在하고 民非夏人이요 地多
이오가 비록 이미 신하로 예속되었지만 멀리 변방 지역의 사막 지대에 있고 백성은 중국인이 아니고 땅의 토질은 대부분 염분을 포함한 사막입니다.
其自竪立 稱藩附庸者受之하여 使居塞外 必畏威懷德하여 永爲藩臣하리니
자립한 나라로 변방의 부용국附庸國을 칭하는 자들을 청컨대 기미羈縻 형식으로 받아들여 변방 밖에 살게 한다면 반드시 위엄을 두려워하고 덕을 그리워하여 영원히 번신藩臣이 될 것입니다.
蓋行虛惠而收實福矣니이다
이는 형식적인 은혜를 베풀어 실질적인 복을 거두어들이는 것입니다.
역주
역주1 : 북쪽의 오랑캐 匈奴를 말한다. 盧生이 귀신의 말이라 하며 《錄圖書》를 秦 始皇에게 바쳤는데, 그 속에 ‘秦나라는 胡가 망친다.[亡秦者 胡也]’라는 말이 있었다. 이 예언 때문에 진 시황은 蒙恬에게 30만 대군을 이끌고 가서 胡를 토벌한 뒤 장성을 쌓게 했다. 그러나 진나라는 진 시황의 아들 二世皇帝인 胡亥에 의해 멸망되었는데, 후일 그 예언의 ‘胡’는 胡亥의 ‘胡’라고 말한다. 《史記 秦始皇本紀》
역주2 漢武帝旣悔遠征伐……乃下詔深陳旣往之悔 : 《漢書》 〈西域傳〉에 보인다. 漢 武帝가 지난날 서역에 군대를 파견해 주둔하여 백성에게 큰 피해를 준 것을 후회한 조칙을 내렸다.
역주3 藩磧 : 西域의 사막 지역이다.
역주4 沙鹵 : 모래와 자갈이 많고 소금기가 있는 땅이다.
역주5 羈縻 : 夷狄에 대한 외교 정책으로, 관계를 끊지도 않고 친근하게 하지도 않아서 반발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얽어매어두는 것을 말한다. 前漢 司馬相如의 〈難蜀父老〉에 “대개 천자가 이적을 다루는 것은 그 이치가 기미의 방책을 써서 관계를 끊지 않는 것일 뿐이다.[蓋天子之牧夷狄也 其義羈縻勿絶而已]”라고 하였다.

정관정요집론(4)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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