是以周室愛民攘狄
하여 竟延八百之齡
하고 秦王輕戰事
라 故四十載而絶滅
하고
漢文養兵靜守하여 天下安豐하고 孝武揚威遠略에 海內虛耗하니
雖悔輪臺
나 追已不及
注+㉒ 雖悔輪臺……追已不及:이라
至于隋室
하얀 早得伊吾
하고 兼統鄯善
注+㉓ 兼統鄯善:伊吾‧鄯善, 竝西域國名. 伊吾在大磧外, 南至玉門關八百里, 漢宜禾都尉所治.이나
且旣得之後에 勞費日甚하여 虛內致外하여 竟損無益하니
遠尋秦漢하고 近觀隋室하면 動靜安危가 昭然備矣라
其自竪立 稱藩附庸者
를 請
受之
하여 使居塞外
면 必畏威懷德
하여 永爲藩臣
하리니
이 때문에 주周 왕실王室은 백성을 사랑하고 이적夷狄을 물리쳐 마침내 이어져 800년이나 지속하였으며, 진 시황秦 始皇은 경솔하게 호胡(흉노匈奴)와 전쟁을 일삼았으므로 40년 만에 멸망하였으며,
한 문제漢 文帝는 병력을 양성하고 조용히 지켜서 천하가 안정되고 부유해졌으며, 효무제孝武帝는 무위를 떨쳐 멀리 침략하는 바람에 천하의 재물을 헛되이 소모하였으니
비록 〈
윤대죄기조輪臺罪己詔〉(
윤대輪臺 지역을 버린다는 자기반성 조칙)를 내려 후회하였으나 후회막급이었습니다.
注+한 무제漢 武帝는 멀리 정벌 나간 것을 후회하였는데. 수속도위搜粟都尉 상홍양桑弘羊이 승상丞相‧어사御史와 함께 상주하기를 “옛날 윤대輪臺의 동쪽에 관개灌漑할 만한 농지 5천 경頃 이상이 있는데 교위校尉를 두어 분담시켜 감독케 하고 해마다 그 이익을 거두어 서역 나라들에게 위엄을 보이소서.”라고 하였으나, 무제가 따르지 않고 이에 조서를 내려 지난날의 잘못을 깊이 뉘우쳤다.
수隋나라에서는 일찍
이오伊吾를 얻고, 겸하여
선선鄯善을 통합하였지만
注+이오伊吾와 선선鄯善은 모두 서역의 나라 이름이다. 이오는 큰 사막의 밖에 있고 남쪽으로 옥문관玉門關까지 거리가 800리인데 한漢나라 의화도위宜禾都尉가 다스리던 곳이다.
또한 얻은 이후에 수고와 비용이 날로 심하여 국내를 고갈시키면서 국외에 힘을 다하여, 결국 손해만 보고 이익은 없었습니다.
멀리는 진나라와 한나라를 살펴보고 가까이는 수나라를 살펴보면 동정과 안위가 밝게 갖추어져 있습니다.
이오가 비록 이미 신하로 예속되었지만 멀리 변방 지역의 사막 지대에 있고 백성은 중국인이 아니고 땅의 토질은 대부분 염분을 포함한 사막입니다.
자립한 나라로 변방의 부용국附庸國을 칭하는 자들을 청컨대 기미羈縻 형식으로 받아들여 변방 밖에 살게 한다면 반드시 위엄을 두려워하고 덕을 그리워하여 영원히 번신藩臣이 될 것입니다.
이는 형식적인 은혜를 베풀어 실질적인 복을 거두어들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