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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政要集論(3)

정관정요집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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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七年 太常卿蕭瑀奏言호대 今破陳樂舞注+① 今破陳樂舞:陳, 音陣. 破陳樂, 卽七德舞也. 太宗爲秦王時, 破劉武周, 軍中相與作破陳樂, 用樂工百二十八人, 被銀甲執戟而舞. 凡三變, 每變爲四陣象刺, 左圓右方, 先偏後伍, 交錯曲伸, 以象魚龍鵝鸛, 觀者莫不扼腕踊躍. 元日‧冬至, 朝會慶賀常奏. 後舞人改用進賢冠‧虎文袴‧騰蛇帶‧烏皮靴, 二人執旌居前. 更號神功破陣樂. 七德者, 取左傳名之也, 所以示其發揚蹈厲之容也. 天下之所共傳이니이다
정관貞觀 7년(633)에 태상경太常卿 소우蕭瑀가 아뢰었다. “지금의 〈파진악무破陳樂舞〉는注+(진지)은 이다. 〈파진악破陳樂〉은 바로 〈칠덕무七德舞〉이다. 태종太宗진왕秦王이었을 때 유무주劉武周를 격파하고 군중軍中에서 〈파진악破陳樂〉을 만들었으니 128명의 악공樂工 갑옷을 입고 창을 들고 추는 춤이다. 3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매 마다 네 개의 을 이루어 찌르는 것을 형상한다. 왼쪽은 둥글고 오른쪽은 각이 지며 앞은 (25명 군대 편제)이, 뒤는 (5명 군대 편제)가 서로 교차하며 굽혔다 폈다 하여, 물고기‧거위‧용‧황새를 형상화해서, 구경하는 자들이 모두 손목을 불끈 쥐고 펄쩍펄쩍 뛰었다. 원일元日(정월 초하루)과 동지冬至조회朝會경하慶賀가 있을 때마다 연주한다. 뒤에 무용수들이 진현관進賢冠, 호문고虎文袴, 등사대騰蛇帶, 오피화烏皮靴로 바꿔 입고 두 사람이 깃발을 들고 앞에 섰다. 악명을 〈신공파진악神功破陣樂〉이라 바꾸었다. 칠덕七德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에 일곱 가지 덕이 있다.”라는 표현을 취해 명명한 것으로, 기세 좋게 움직이고 세차게 발돋움하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천하에 모두 전해졌습니다.
然美盛德之形容 尙有所未盡하니 前後之所破劉武周注+② 劉武周:馬邑人, 隋世爲鷹揚校尉. 義寧初據馬邑郡起兵, 附于突厥, 突厥立武周爲定楊可汗, 稱帝改元. 後太宗敗之于幷州, 奔突厥, 爲突厥所斬.薛擧注+③ 薛擧:蘭州人, 隋末起兵, 自號西秦霸王. 建元後僭帝號于蘭州, 太宗降擧于高墌城, 未幾死. 子仁杲代立, 秦王率諸將討之, 以仁杲及其黨歸京師, 斬之.竇建德王世充等 臣願圖其形狀하여 以寫戰勝攻取之容하소서
하지만 성대한 의 모습을 찬미하는 데는 여전히 미진한 바가 있으니, 신은 전후에 걸쳐 유무주劉武周注+유무주劉武周는〉 마읍馬邑 사람이며 나라 때 응양교위鷹揚校尉였다. 의녕義寧(수 공제隋 恭帝 연호) 초기에 마읍군馬邑郡을 근거지로 병사를 일으켜 돌궐突厥에 붙자 돌궐이 유무주를 정양가한定楊可汗으로 옹립하니, 라 칭하고 연호를 바꿨다. 뒤에 태종太宗병주幷州에서 패퇴시키자 돌궐로 도망갔다가 돌궐에 의해 참수당했다.설거薛擧注+설거薛擧는〉 난주蘭州 사람이며 나라 말기에 병사를 일으켜 스스로 서진패왕西秦霸王이라 불렀다. 연호를 만든 뒤 난주蘭州에서 제호帝號를 참칭했는데, 태종太宗이 설거를 고척성高墌城에서 항복시켰고 얼마 있지 않아 죽었다. 아들 설인고薛仁杲가 뒤이어 즉위했는데 진왕秦王이 제장들을 이끌고 토벌하여 설인고와 그 무리들을 경사京師로 데리고 돌아와 참수했다.두건덕竇建德왕세충王世充 등을 격파한 내용에 대한 형상을 그림으로 그려, 싸움에서 승리하고 공격하여 취득한 모습을 묘사하기를 청합니다.”
太宗曰 朕當四方未定하여 因爲天下注+④ 因爲天下:爲, 去聲, 後我爲同.救焚拯溺이라 故不獲已乃行戰伐之事注+⑤ 戰伐之事:戰, 一作攻.하니 所以人間遂有此舞하고 國家因玆亦制其曲이라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짐이 사방四方이 안정되지 않았을 때 천하를 위해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며, 뒤 ‘아위我爲’의 도 같다. 불에 탄 것을 구제하고 물에 빠진 것을 건져주려 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전쟁을 벌인 것이니注+은 어떤 본에는 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세상에 이러한 춤이 있게 되고 국가에서 이것을 근거로 그 곡을 만든 것이오.
然雅樂之容 止得陳其梗槪 若委曲寫之하면 則其狀易識注+⑥ 其狀易(이)識:易, 以豉切.이라
하지만 아악雅樂의 모습은 단지 그 대강만을 서술하는 것이니, 만일 세세히 묘사하게 되면 그 형상이 쉽게 알려지게 될 것이오.注+(쉽다)는 의 반절이다.
朕以見在將相注+⑦ 朕以見(현)在將相:見, 音現. 將‧相, 竝去聲. 多有曾經受彼驅使者注+⑧ 多有曾經受彼驅使者:曾, 音層.하니 旣經爲一日君臣이어늘 今若重見其被擒獲之勢注+⑨ 今若重見其被擒獲之勢:重, 平聲.하면 必當有所不忍하리니 我爲此等所以不爲也로라
짐은 현재의 장수와 재상들이注+(현재, 나타나다)은 이다. (장수)과 (재상)은 모두 거성去聲이다. 대부분 일찍이 그들의 부림을 받고注+(일찍이)은 이다. 잠깐 임금과 신하로 지냈는데, 지금 만약 그들이 사로잡힌 상황을 거듭 보게 된다면注+(거듭)은 평성平聲이다. 반드시 차마 어찌할 수 없는 감정이 일 것이니, 나는 이 때문에 이러한 일을 하지 못하오.”
蕭瑀謝曰 此事 非臣思慮所及注+⑩ 非臣思慮所及:按史志, 太宗令魏徵與李百藥等, 更製破陣樂, 名曰七德舞. 舞初成, 觀者皆踊躍, 諸將上壽, 群臣皆稱萬歲, 蠻夷在庭者, 請相率以舞. 自是朝會慶賀, 與九功舞同奏.이니이다
소우가 송구해하며 말하였다. “이 일은 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注+살펴보건대, 《신당서新唐書》 〈예악지禮樂志〉에 태종太宗위징魏徵이백약李百藥 등에게 〈파진악破陳樂〉을 다시 만들도록 했는데 그 이름이 ‘칠덕무七德舞’이다. 춤이 처음 완성됐을 때 관람자들이 함께 나와 춤을 췄고 제장들이 헌수를 올렸으며 여러 신하들이 모두 만세를 불렀고 조정에 있던 만이蠻夷들이 서로 어울려 춤을 췄다. 이때부터 조회의 경하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구공무九功舞〉와 함께 공연되었다.
【集論】愚按 古之樂 莫善於韶舞 韶舞尙矣하니 今不可得而知矣
내가 살펴보건대, 옛 소무韶舞(임금의 음악)보다 훌륭한 것이 없지만 소무韶舞는 아주 오래전 것이니 지금 알 수가 없다.
부자夫子(공자孔子)가 무무武舞(무왕武王 음악)를 논하면서, “대무大武의 춤이 시작되자 무용수들이 북쪽으로 나가고, 두 번째 악곡을 연주하여 나라를 멸망시키고, 세 번째 악곡을 연주하여 남쪽으로 나가고,
四成而南國是疆하고 五成而分周公左召公右하고 六成復綴以崇이라하여
네 번째 악곡을 연주하여 남쪽의 나라들을 복속시키고, 다섯 번째 악곡을 연주하여 주공周公을 왼쪽으로 소공召公을 오른쪽으로 나누고, 여섯 번째 악곡을 연주하여 다시 하나로 모여 존숭한다.” 라고 하여,
其發揚蹈厲之容 進退擊刺之節 不過以象其克殷紂服荆蠻之事而已 固未聞圖畫亡國之君而陳之也
기세 좋게 움직이고 세차게 발돋움하는 모습과 나가고 물러나고 치고 찌르는 과정들이 나라 주왕紂王을 치고 형만荆蠻을 굴복시키는 일을 형상화하는 데 지나지 않았으니, 진실로 망국의 임금을 그림으로 그려 진열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唐七德之舞 銀甲執戟하고 先偏後伍하여 交錯屈伸하여 以象魚麗鵝鸛之陣 雖不能上法三代 蓋亦庶幾武舞之遺意矣
나라의 〈칠덕무七德舞〉가 갑옷에 창을 들고 앞의 과 뒤의 가 서로 교차하며 굽혔다 폈다 하여 물고기‧꾀꼬리‧거위‧황새의 을 형상한 것은 비록 삼대三代의 것을 본받지는 못했지만 또한 무무武舞의 남긴 뜻에 가까운 것이다.
蕭瑀以爲未盡하여 請圖畫劉武周等形狀以識之하니어늘 瑀何所據而云耶
소우蕭瑀가 이를 미진하다고 여겨 유무주劉武周 등의 형상을 그림으로 그려 사실을 알리자고 했으니, 무릇 군자君子는 잘 모르는 것에 대해 그냥 그대로 두는 법인데 소우가 무엇에 근거하여 이렇게 말한 것인가.
太宗謂 今日將相有嘗爲其臣者하니 觀之有所不忍이라하니
태종太宗이, “오늘날 장수와 재상 가운데 일찍이 그들의 신하가 된 이들이 있었으니 이를 볼 때 차마 어찌할 수 없는 감정이 있을 것이다.” 라고 했으니,
此特言當時之情耳 要之瑀之論 非特不便於當時 蓋亦無稽於往古也
이는 단지 당시의 실정을 이야기한 것일 뿐이다. 요컨대 소우의 의견은 당시에 불편할 뿐만 아니라 고사古事에 살펴볼 수 있는 것이 또한 없다.
역주
역주1 武有七德 : 《春秋左氏傳》 宣公 12년 조에 “武는 폭력의 제지, 전쟁의 방지, 강력한 힘의 보장, 승리의 공고, 사회의 안정, 백성의 단결, 생산의 발전을 하기 위한 것이다.[夫武禁暴戢兵保大定功安民和衆豐財者也]”라고 했는데, 杜預의 주석에 “이것을 武의 七德이다.[此武七德]”라고 했다.
역주2 武始而北出……六成復綴以崇 : 《禮記》 〈樂記〉에 보인다.
역주3 君子於所不知 蓋闕如也 : 《論語》 〈子路〉에 보인다.

정관정요집론(3)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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