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集論】愚按 古之樂은 莫善於韶舞나 韶舞尙矣하니 今不可得而知矣라
四成而南國是疆하고 五成而分周公左召公右하고 六成復綴以崇이라하여
其發揚蹈厲之容과 進退擊刺之節이 不過以象其克殷紂服荆蠻之事而已니 固未聞圖畫亡國之君而陳之也라
唐七德之舞는 銀甲執戟하고 先偏後伍하여 交錯屈伸하여 以象魚麗鵝鸛之陣은 雖不能上法三代나 蓋亦庶幾武舞之遺意矣라
蕭瑀以爲未盡
하여 請圖畫劉武周等形狀以識之
하니 夫
어늘 瑀何所據而云耶
아
太宗謂 今日將相有嘗爲其臣者하니 觀之有所不忍이라하니
此特言當時之情耳라 要之瑀之論은 非特不便於當時라 蓋亦無稽於往古也라
注
내가 살펴보건대, 옛 낙樂은 소무韶舞(순舜임금의 음악)보다 훌륭한 것이 없지만 소무韶舞는 아주 오래전 것이니 지금 알 수가 없다.
부자夫子(공자孔子)가 무무武舞(무왕武王 음악)를 논하면서, “대무大武의 춤이 시작되자 무용수들이 북쪽으로 나가고, 두 번째 악곡을 연주하여 상商나라를 멸망시키고, 세 번째 악곡을 연주하여 남쪽으로 나가고,
네 번째 악곡을 연주하여 남쪽의 나라들을 복속시키고, 다섯 번째 악곡을 연주하여 주공周公을 왼쪽으로 소공召公을 오른쪽으로 나누고, 여섯 번째 악곡을 연주하여 다시 하나로 모여 존숭한다.” 라고 하여,
기세 좋게 움직이고 세차게 발돋움하는 모습과 나가고 물러나고 치고 찌르는 과정들이 은殷나라 주왕紂王을 치고 형만荆蠻을 굴복시키는 일을 형상화하는 데 지나지 않았으니, 진실로 망국의 임금을 그림으로 그려 진열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당唐나라의 〈칠덕무七德舞〉가 은銀 갑옷에 창을 들고 앞의 편偏과 뒤의 오伍가 서로 교차하며 굽혔다 폈다 하여 물고기‧꾀꼬리‧거위‧황새의 진陣을 형상한 것은 비록 삼대三代의 것을 본받지는 못했지만 또한 무무武舞의 남긴 뜻에 가까운 것이다.
소우蕭瑀가 이를 미진하다고 여겨 유무주劉武周 등의 형상을 그림으로 그려 사실을 알리자고 했으니, 무릇 군자君子는 잘 모르는 것에 대해 그냥 그대로 두는 법인데 소우가 무엇에 근거하여 이렇게 말한 것인가.
태종太宗이, “오늘날 장수와 재상 가운데 일찍이 그들의 신하가 된 이들이 있었으니 이를 볼 때 차마 어찌할 수 없는 감정이 있을 것이다.” 라고 했으니,
이는 단지 당시의 실정을 이야기한 것일 뿐이다. 요컨대 소우의 의견은 당시에 불편할 뿐만 아니라 고사古事에 살펴볼 수 있는 것이 또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