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集論】張氏九成曰 君子以謹密成德하고 而疎直致患이어늘 而況處重之地가 可不戒哉아
洎每剛直敢言에 始以受知라가 終以速禍하니 蓋太宗英明剛武로 以取天下하여 挾振矜之態일새니라
雖議論及於群臣이나 而是正之語는 或不容下하고 或往復詰難하고 或面折其短하며 才辯自逞하여 氣驕於人이라
而洎遠引聖人不言과 大辯若訥하여 深爲勸戒하니 所以恢寬厚之德하고 獎進言之路라
觀其所陳하면 若有優柔樂易之性矣나 及其發言處身하여는 或不自慮라
夫以太宗之明으로도 竟不深察하니 何知之不審하여 始卒有異乎아 抑疑似之詰이 有以啓之也라
注
장구성張九成이 말하였다. “군자는 신중함과 치밀함으로 덕을 이루고 경솔하고 솔직함으로 근심에 이르게 되거늘 하물며 중요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유계가 매번 강직하고 과감하게 말할 때마다 처음에는 알아줌을 받다가 끝에는 재앙을 자초하게 되었다. 이는 태종太宗이 영명함과 강한 무용으로 천하를 취하여 오만한 태도를 지녔기 때문이다.
비록 여러 신하에게 의론하게 하였으나, 바로잡는 말을 하면 혹은 아랫사람을 용납하지 않고, 혹은 반복하여 힐난하고, 혹은 면전에서 단점을 꺾었으며, 교묘한 말솜씨를 마음껏 구사하여 남에게 교만한 기운이 있었다.
지척咫尺에 뵈옵는 위엄으로 죽이고 살리는 것을 수중에서 마음대로 하였으니 강직한 무리가 아니면 누가 상대하여 대들겠는가.
그러나 유계는 멀리 ‘성인이 말하지 않는다.’는 것과 ‘대단한 언변은 어눌한 것 같다.’는 것을 인용하여 깊이 권장하고 경계시켰으니 관후한 덕을 넓히고 진언하는 길을 장려한 것이었다.
그 진술한 것을 보면 마치 여유로우며 화락한 성품이 있는 듯하지만, 말을 하고 처신하는 데에 미쳐서는 조금도 자신을 우려하지 않았다.
태종의 명철함으로도 끝내 이를 깊이 살피지 못하였으니, 어찌 아는 것이 자세하지 않아서 처음과 끝에 다름이 있었던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반신반의하는 힐난이 그 길을 열어주었을 것이다.”
注
당중우唐仲友가 말하였다. “위에서 겸손함을 지니고 아래에서 직언을 바치니 이것은 논의의 대체이다. 곤鯀이 재주가 없음을 요堯임금은 홀로 알았으나 곤鯀이 할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그만두게 해야 한다는 논의를 따랐으니 임금의 말이 어찌 힘써 이기기를 구하겠는가.
태종太宗이 지혜로움과 언변을 자처하고 반복하여 끝까지 물었으니, 이는 간언의 아름다움을 따르는 데에 가장 해로운 것이다. 유계의 두 가지 말은 태종의 결점을 잘 지적한 것이니 맹자孟子가 말한 ‘천리의 밖에서 사람을 막는다.’라는 것이다.
답변 조서에 오히려 옳고 그름에 대한 말을 반복한 것이 있으니 태종의 성인聖人을 자처하는 병통은 매우 고치기 어려운 것이다. 유계가 끊임없이 간언하였기 때문에 태종이 고치겠다고 허락하게 되었으니 그렇지 않으면 덕과 거리가 어찌 멀어지지 않겠는가.
거울 하나(위징魏徵)가 떠나가자 홀로 유계가 나왔으니 이 말이 또한 어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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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펴보건대, 유계劉洎의 상소에서 태종太宗이 영웅의 자태를 가지고도 신묘한 기지를 발휘하고 타고난 말재주를 마음껏 구사하여 남을 경시하고 교만하게 대하는 실수를 면하지 못함을 상상해보게 된다.
진실로 사욕을 극복하여 스스로 힘쓰고 노력하여 간언을 따르지 않으면, 이른바 지혜는 간언을 막기에 충분하며 말은 잘못을 꾸미기에 충분하다는 것이 이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다.
태종이 ‘지금 직언을 들었으니 마음을 비워서 고치겠다.’라고 하였으니, 태종이 어진 임금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