朕
이 觀古來帝王
하니 驕矜而取敗者
를 不可勝數
注+上, 平聲. 下, 上聲.라
至如
注+見君道篇註.하고 隋文伐陳
注+陳後主之世亡滅之.已後
에 心逾驕奢
하여 自矜諸己
하니 臣下不復敢言
하여 政道因玆弛紊
注+上, 音矢. 下, 音汶, 散亂也.이라
朕
이 自平定突厥破高麗已後
注+麗, 平聲. 凡言高麗竝同. 高麗, 東夷國名, 本扶餘別種, 居遼東. 周封箕子之國也. 今爲鎭東省.로 兼幷鐵勒
注+鐵勒, 匈奴苗裔, 其種類多居西海之北, 突厥北部也. 太宗旣平其國, 卽其部落, 列置州縣, 號爲覊縻, 以其首領爲都督刺史, 皆得世襲. 凡四夷内屬者, 皆然也.하고 席卷沙漠
하여 以爲州縣
하니 夷狄遠服
하여 聲教益廣
이라
朕
은 恐懷驕矜
하여 恒自抑折
注+音舌.하고 日旰而食
注+旰, 音幹, 晚也.하고 坐以待晨
하여 每思臣下有讜言直諫
注+讜, 音黨, 亦直也.이 可以施於政教者
注+施, 平聲.하면 當拭目
하여 以師友待之
注+一無友字.하니 如此
하면 庶幾於時康道泰爾
注+幾, 平聲.로다
【集論】愚按 是時에 魏徵旣死하니 諫諍之臣이 漸少라
旣破鐵勒하얀 自謂雪恥酬百王하고 除兇報千古라하니 其驕矜滿溢之意가 固形於歌詠矣라
然猶能日旰而食하고 坐以待晨하여 俾群臣讜言直諫하여 欲以師友待之하니
嗚呼라 此所以克終盛治하고 不失令名하여 有晉武隋文之功하고 而無晉武隋文之禍歟인저
정관貞觀 19년(645)에 태종太宗이 근신에게 말하였다.
“짐이 옛 제왕을 살펴보니, 교만하고 자만하여 실패한 자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소.
注+위의 승勝(감당하다)은 평성平聲이다. 아래의 수數(헤아리다)는 상성上聲이다.
예컨대
진晉나라
무제武帝(司馬炎)가
오吳나라를 평정하고
注+〈지여진무평오至如晉武平吳는〉 본서 제1편 〈논군도論君道〉의 주註에 보인다.수隋나라
문제文帝가
진陳나라를 쳐서
注+진陳나라 후주後主의 시대를 멸망시킨 것이다. 멸망시킨 뒤에 마음이 더욱 교만하고 사치해져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였는데, 신하들이 감히 다시 말하지 못하여 정치의 도리가 이 때문에 흩어져 어지럽게 되었소.
注+위의 이弛(풀리다)는 음이 시矢이다. 아래의 문紊은 음이 문汶이니, 흩어져 어지러움이다.
짐이
돌궐突厥을 평정하고
고구려高句麗를 격파한 후로
注+려麗(나라 이름)는 평성平聲이니, 〈고려高麗는〉 일반적으로 고려高麗(高句麗)라고 말하는 것과 동일하다. 고려高麗는 동이東夷의 나라 이름으로, 본래 부여夫餘에서 갈라진 종족이며 요동遼東에 거주하였다. 주周나라가 기자箕子를 봉해준 나라이다. 지금 진동성鎭東省이다.철륵鐵勒을 겸병하고
注+철륵鐵勒은 흉노匈奴의 후예인데, 그 종족이 대부분 서해西海의 북쪽에 거주하니 돌궐의 북부이다. 태종太宗이 그 나라를 평정하고 나서 곧 그 부락에 주와 현을 나열해 설치하여 부르기를 기미覊縻(명분만 속국인 나라)라 하고, 그 수령으로 도독都督과 자사刺史를 삼아서 모두 세습하게 하였다. 무릇 사이四夷로서 당唐나라에 내속內屬한 자들은 모두 그렇게 하였다. 사막을 휩쓸고서
주州와
현縣을 설치하니,
이적夷狄이 멀리에서 복종하여 덕의 교화가 더욱 넓어졌소.
짐은 교만과 자만심이 생길까 두려워서 늘 자신을 억제하고
注+〈절折(절제하다)은〉 음이 설舌이다. 해가 저물어서야 밥을 먹고,
注+간旰은 음이 간幹이니, 늦다는 뜻이다. 앉아서 새벽을 기다리며 신하들의 바른말과 곧은 간언 중에
注+당讜은 음이 당黨이니, 또한 바르다는 뜻이다. 정치 교화에 베풀 만한 것이 있으면
注+시施(베풀다)는 평성平聲이다. 눈을 닦고 자세히 보아서
사우師友로 대우할 것을 늘 생각하니,
注+어떤 본에는 우友자가 없다. 이와 같이 하면 거의 시대가 편안하고 도가 통하게 될 것이오.”
注+기幾(거의)는 평성平聲이다.
【集論】내가 살펴보건대, 이때 위징이 죽고 나자 간쟁하는 신하가 점점 적어졌다.
고구려高句麗를 비록 격파하였으나 분병忿兵을 끊임없이 일으켰다.
태종太宗이 스스로 말하기를 ‘설욕하여 역대 제왕들에게 보답하고, 흉적을 제거하여 천고에 보답하였다.’라고 하였으니, 그의 교만과 자긍이 가득 차 넘치는 뜻이 진실로 노래하여 읊조리는 데에 나타났다.
그러나 오히려 해가 저물어서야 식사를 하고 앉은 채로 새벽을 맞이하여, 여러 신하들에게 정직한 말과 곧은 간언을 하도록 하여 사우師友로 대우하려고 하였다.
아, 이것이 마침내 성대하게 다스릴 수 있고 아름다운 명예를 잃지 않아 진晉 무제武帝와 수隋 문제文帝의 공로는 있고 진 무제와 수 문제가 겪었던 재앙은 없었던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