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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政要集論(1)

정관정요집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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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집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貞觀十九年 太宗謂侍臣曰
觀古來帝王하니 驕矜而取敗者 不可勝數注+上, 平聲. 下, 上聲.
不能遠述古昔이요
至如注+見君道篇註.하고 隋文伐陳注+陳後主之世亡滅之.已後 心逾驕奢하여 自矜諸己하니 臣下不復敢言하여 政道因玆弛紊注+上, 音矢. 下, 音汶, 散亂也.이라
自平定突厥破高麗已後注+麗, 平聲. 凡言高麗竝同. 高麗, 東夷國名, 本扶餘別種, 居遼東. 周封箕子之國也. 今爲鎭東省. 兼幷鐵勒注+鐵勒, 匈奴苗裔, 其種類多居西海之北, 突厥北部也. 太宗旣平其國, 卽其部落, 列置州縣, 號爲覊縻, 以其首領爲都督刺史, 皆得世襲. 凡四夷内屬者, 皆然也.하고 席卷沙漠하여 以爲州縣하니 夷狄遠服하여 聲教益廣이라
恐懷驕矜하여 恒自抑折注+音舌.하고 日旰而食注+旰, 音幹, 晚也.하고 坐以待晨하여 每思臣下有讜言直諫注+讜, 音黨, 亦直也. 可以施於政教者注+施, 平聲.하면 當拭目하여 以師友待之注+一無友字.하니 如此하면 庶幾於時康道泰爾注+幾, 平聲.로다
【集論】愚按 是時 魏徵旣死하니 諫諍之臣 漸少
高麗雖破 之興未已
旣破鐵勒하얀 自謂雪恥酬百王하고 除兇報千古라하니 其驕矜滿溢之意 固形於歌詠矣
然猶能日旰而食하고 坐以待晨하여 俾群臣讜言直諫하여 欲以師友待之하니
嗚呼 此所以克終盛治하고 不失令名하여 有晉武隋文之功하고 而無晉武隋文之禍歟인저


정관貞觀 19년(645)에 태종太宗이 근신에게 말하였다.
“짐이 옛 제왕을 살펴보니, 교만하고 자만하여 실패한 자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소.注+위의 (감당하다)은 평성平聲이다. 아래의 (헤아리다)는 상성上聲이다.
멀리 옛일을 진술할 것도 없소.
예컨대 나라 무제武帝(司馬炎)가 나라를 평정하고注+지여진무평오至如晉武平吳는〉 본서 제1편 〈논군도論君道〉의 에 보인다.나라 문제文帝나라를 쳐서注+나라 후주後主의 시대를 멸망시킨 것이다. 멸망시킨 뒤에 마음이 더욱 교만하고 사치해져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였는데, 신하들이 감히 다시 말하지 못하여 정치의 도리가 이 때문에 흩어져 어지럽게 되었소.注+위의 (풀리다)는 음이 이다. 아래의 은 음이 이니, 흩어져 어지러움이다.
짐이 돌궐突厥을 평정하고 고구려高句麗를 격파한 후로注+(나라 이름)는 평성平聲이니, 〈고려高麗는〉 일반적으로 고려高麗(高句麗)라고 말하는 것과 동일하다. 고려高麗동이東夷의 나라 이름으로, 본래 부여夫餘에서 갈라진 종족이며 요동遼東에 거주하였다. 나라가 기자箕子를 봉해준 나라이다. 지금 진동성鎭東省이다.철륵鐵勒을 겸병하고注+철륵鐵勒흉노匈奴의 후예인데, 그 종족이 대부분 서해西海의 북쪽에 거주하니 돌궐의 북부이다. 태종太宗이 그 나라를 평정하고 나서 곧 그 부락에 주와 현을 나열해 설치하여 부르기를 기미覊縻(명분만 속국인 나라)라 하고, 그 수령으로 도독都督자사刺史를 삼아서 모두 세습하게 하였다. 무릇 사이四夷로서 나라에 내속內屬한 자들은 모두 그렇게 하였다. 사막을 휩쓸고서 을 설치하니, 이적夷狄이 멀리에서 복종하여 덕의 교화가 더욱 넓어졌소.
짐은 교만과 자만심이 생길까 두려워서 늘 자신을 억제하고注+(절제하다)은〉 음이 이다. 해가 저물어서야 밥을 먹고,注+은 음이 이니, 늦다는 뜻이다. 앉아서 새벽을 기다리며 신하들의 바른말과 곧은 간언 중에注+은 음이 이니, 또한 바르다는 뜻이다. 정치 교화에 베풀 만한 것이 있으면注+(베풀다)는 평성平聲이다. 눈을 닦고 자세히 보아서 사우師友로 대우할 것을 늘 생각하니,注+어떤 본에는 자가 없다. 이와 같이 하면 거의 시대가 편안하고 도가 통하게 될 것이오.”注+(거의)는 평성平聲이다.
【集論】내가 살펴보건대, 이때 위징이 죽고 나자 간쟁하는 신하가 점점 적어졌다.
고구려高句麗를 비록 격파하였으나 분병忿兵을 끊임없이 일으켰다.
태종太宗이 스스로 말하기를 ‘설욕하여 역대 제왕들에게 보답하고, 흉적을 제거하여 천고에 보답하였다.’라고 하였으니, 그의 교만과 자긍이 가득 차 넘치는 뜻이 진실로 노래하여 읊조리는 데에 나타났다.
그러나 오히려 해가 저물어서야 식사를 하고 앉은 채로 새벽을 맞이하여, 여러 신하들에게 정직한 말과 곧은 간언을 하도록 하여 사우師友로 대우하려고 하였다.
아, 이것이 마침내 성대하게 다스릴 수 있고 아름다운 명예를 잃지 않아 무제武帝 문제文帝의 공로는 있고 진 무제와 수 문제가 겪었던 재앙은 없었던 이유이다.


역주
역주1 晉武平吳 : 晉나라 武帝 司馬炎이 吳나라 군주 孫皓에게 항복을 받아 중국을 통일하였으나, 재물을 탐하고 돈을 좋아하여 지나친 행동을 일삼고 부패하였다. 그가 죽고 오래되지 않아 중국이 다시 분열하여 혼란한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역주2 忿兵 : 《漢書》 권74 〈魏相傳〉에 “적이 우리를 공격해서 어쩔 수 없이 대응하는 군대를 應兵이라고 하는데 군대가 어쩔 수 없이 응전하는 경우에는 승리하고, 사소한 일로 다투어 분을 참지 못하는 것을 忿兵이라고 하는데 군대가 분을 참지 못해 응전하는 경우에는 패한다.[敵加於己 不得已而應之 謂之應兵 兵應者勝 爭恨小故 不忍忿憤者 謂之忿兵 兵忿者敗]”라고 보인다.
역주3 鐵勒을……나서는 : 여기서 鐵勒은 철륵(투르크)의 한 부족인 薛延陀를 가리킨다. 당시 몽골 고원에서 설연타가 철륵의 여러 부족을 지배하고 있었다. 645년 唐 太宗이 고구려를 원정하였는데, 이해 설연타의 可汗이 죽자 唐나라는 이를 틈타 설연타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정관정요집론(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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