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貞觀政要集論(3)

정관정요집론(3)

범례 |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정관정요집론(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貞觀九年 太宗謂魏徵曰 頃讀周齊史하니 末代亡國之主 爲惡多相類也하니 齊主注+① 齊主:齊後主也, 名緯, 世祖之子.深好奢侈注+② 深好奢侈:好, 去聲.하여 所有府庫 用之略盡 乃至無不稅歛注+③ 歛:去聲.이라
정관貞觀 9년(635)에 태종太宗위징魏徵에게 말하였다. “근래에 북주北周북제北齊의 역사를 읽어보니, 말기에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 군주들은 저지른 악행에 유사한 점이 많았소. 북제北齊후주後主注+제주齊主는〉 북제北齊후주後主로, 이름은 이고, 세조世祖(무성제武成帝)의 아들이다. 사치를 몹시 즐겨注+(좋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소유한 국고國庫를 거의 탕진하여 관문이나 시장에 세금을 징수하지 않은 곳이 없었소.注+(거두어들이다)은〉 거성去聲이다.
朕常謂此猶如饞人自食其肉하여 肉盡必死 人君賦歛不已 百姓旣弊하고 其君亦亡하니 齊主卽是也 然天元注+④ 天元:後周宣帝, 名贇, 自稱天元皇帝.齊主 若爲優劣고하니
짐은 늘 생각하기를 이런 사람은 마치 음식 탐내는 사람이 스스로 제 살점을 뜯어먹다가 살점이 다하면 반드시 죽는 것과 같다고 하였소. 군주가 끊임없이 세금을 거두면 백성들이 곤궁해지고 나서 군주 역시 멸망하니, 북제北齊후주後主가 이 경우에 해당하오. 그렇다면 천원天元(북주北周선제宣帝)과注+천원天元은〉 후주後周(북주北周)의 선제宣帝로, 이름은 이고 스스로를 천원황제天元皇帝라 칭하였다. 북제北齊후주後主의 우열이 어떠하오?”
徵對曰 二主亡國雖同이나 其行則別注+⑤ 其行則別:行, 去聲.하니
위징이 대답하였다. “두 군주가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 것은 동일하지만 그 행동에는 차이가 있습니다.注+(행실)은 거성去聲이다.
齊主愞弱注+⑥ 齊主愞弱:愞, 與懦同.하여 하고 國無綱紀하여 遂至亡滅하며 天元性兇而强하여 威福在己하니 亡國之事 皆在其身이라 以此論之컨대 齊主爲劣注+⑦ 貞觀九年……齊主爲劣:舊本此章重出奢縱篇, 今去彼存此.이니이다
북제의 후주는 나약하여注+(여리다)은 와 동자이다. 정령政令이 여러 곳에서 나왔고, 국가에 기강이 없어 결국 멸망에 이르렀으며, 천원天元은 성격이 흉악하고 드세어 위엄과 복이 군주의 독단에서 나왔으니, 나라를 멸망시킨 일은 모두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를 가지고 논해보자면 북주의 후주가 더 열등합니다.”注+구본舊本에는 이 장이 〈논사종論奢縱에 거듭 나왔는데, 지금 그 편에서 떼어 여기에 두었다.
【集論】愚按 詩曰 殷鑑不遠하니 在夏后之世라하고 又曰 宜鑑于殷이어다 峻命不易로다하니 夫殷之鑒以夏하고 周之鑑以殷이라
내가 살펴보건대 《시경詩經》 〈대아大雅 〉에 이르기를 “나라의 거울은 멀리 있지 않으니, 나라에 있다.” 라 하였고, 또 《시경詩經》 〈대아大雅 문왕文王〉에 이르기를 “은나라를 거울로 삼을지어다. 준엄한 명은 〈보전하기가〉 쉽지 않다.” 라고 하였으니, 은나라는 하나라를 거울로 삼았고, 나라는 은나라를 거울로 삼은 것이다.
太宗以開基之明君으로 而能以亡國之庸君爲鑒하니 可謂知所鑑矣 其得爲寡過也宜哉로다
태종은 나라의 기틀을 개척한 명철한 군주로 멸망한 나라의 어리석은 군주를 거울로 삼았으니, 거울로 삼아야 할 대상을 알았다고 할 만하다. 그러니 허물이 적었던 것이 마땅한 일이다.
至論周齊之君孰優하여는 魏徵以齊主爲劣이로대
북제北齊북주北周의 군주 중에 어느 쪽이 더 나았는가 하는 논의에 이르러서는 위징魏徵이 북제의 후주後主가 더 못하다고 하였으나,
이라 然則天元其剛惡이요 齊主其柔惡歟인저 剛柔雖異 亡國則一하니 政未易以優劣論也
내가 살펴보건대 주돈이周敦頤의 《통서通書》에 강악剛惡유악柔惡에 관한 설이 있으니, 그렇다면 천원天元(북주北周선제宣帝)은 강악剛惡에 해당하고, 북제의 후주는 유악柔惡에 해당할 것이다. 강유剛柔가 다르지만 나라를 멸망시킨 것은 마찬가지이니, 정치를 우열로 논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역주
역주1 關市 : 관문과 시장을 뜻한다. 《孟子》 〈梁惠王 下〉에 “관문과 시장은 살펴보기만 하고 세금을 징수하지 않는다.[關市譏而不征]”라고 하였다.
역주2 政出多門 : 지도력이 없어 권력이 분산됨을 말한다. 《春秋左氏傳》 成公 16년에 “晉나라 정령은 여러 곳에서 나와서 따를 수 없다.[晉政多門 不可從也]”라고 하였다.
역주3 愚觀周子之書 有剛惡柔惡之說 : 周敦頤의 《通書》 〈師第〉에 “剛惡은 사납고 좁고 강경한 것이며, ……柔惡은 나약하고 결단이 없는 것이며 간사하고 아첨하는 것이다.[剛惡 爲猛爲隘爲强梁……柔惡 爲懦弱爲無斷爲邪佞]”라고 하였다.

정관정요집론(3)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