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天下者
는 以人爲本
하니 欲令百姓安樂
注+ 令百姓安樂:令, 平聲. 樂, 音洛.인댄 惟在刺史縣令
이로되
縣令은 旣衆이라 不能皆賢이니 若每州得良刺史면 則合境蘇息이라
天下刺史
가 悉稱聖意
注+ 悉稱聖意:稱, 去聲.면 則陛下可
이니 百姓
은 不慮不安
하리이다
欲有遷擢爲將相
注+ 將相:將相, 竝去聲. 後同.인댄 必先試以臨人
하고 或從二千石
注+ 從二千石:漢世郡守曰二千石.으로 入爲丞相及司徒太尉者
라
朝廷이 必不可獨重內臣하고 外刺史縣令하여 遂輕其選이니 所以百姓未安이 殆由於此니이다
太宗
이 因謂侍臣曰 刺史
는 朕當自簡擇
하리니 縣令
은 詔京官五品已上
하여 各擧一人
注+ 貞觀十一年……各擧一人:按史傳, 此與諫營造奢侈及同一疏.케하라
注
【集論】孫氏洙曰 民者는 國之本也요 守令은 民之本也니 古者天子列爵頒祿은 非爲臣下요 皆以爲民也라
故로 擇其人以牧養之하고 重其任以付責之하며 假其權以安固之하고 厚其祿以寵利之라
上之責吏가 一本於民하고 下之報上이 一本於民하면 則民重矣라
民重하면 則守令重하고 守令重하면 則天下國家重矣라
輕守令하면 是는 輕民也니 民輕하면 則天下國家輕矣니 可不愼歟아
又出諫大夫補郡吏하여 有治效者는 璽書勉勵하고 增秩賜金하여 而不輒遷이라가 公卿缺이면 則選其尤異者用之라
故로 吏多貪殘하여 而風俗日壞하여 失所重也러니 唐之失亦然이라
注
胡氏寅曰 刺史至多하니 人君安能徧識이리오 人才는 委大臣謹擧可也라
必欲得人인댄 使爲縣有政績하여 擧其人可也니 若展轉求之면 則千百賢令을 亦可致矣리라
注
唐氏仲友曰 周之意는 蓋謂察之於己任이면 則民被害가 不如悉以才德選이니 則所得多矣라
注
唐虞之時에 百揆는 統九官하고 四岳은 統十二牧이라
唐有天下하여 於重內輕外之時에 下至縣令하여는 士多不屑爲之라
夫令은 親民之尤者也어늘 以輕心處之하니 謂之何哉오
然이나 刺史錄名屛上하고 著政績善惡하여 可以自擇矣나 九重之尊이 豈能周知리오
惟當使內外輕重之平均하여 朝堂이 擇刺史都督하고 刺史都督이 擧縣令이 可也라
정관貞觀 11년(637)에 시어사侍御史 마주馬周가 상소하였다.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사람을 근본으로 하니, 백성들이 편안하고 즐겁도록 하려면
注+영令(하여금)은 평성平聲이다. 낙樂(즐겁다)은 음音이 낙洛이다. 이는 오직
자사刺史와
현령縣令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현령은 이미 그 수가 많아 모두 훌륭할 수는 없으니, 만일 주州마다 훌륭한 자사를 얻는다면 온 경내 백성들이 소생할 것입니다.
천하의 자사가 모두
성상聖上의 뜻에 걸맞으면
注+칭稱(걸맞다)은 거성去聲이다. 폐하께서는 조정에서 팔짱만 끼고 있어도 될 것이니, 백성들은 불안하게 될까 염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옛날부터 군수郡守와 현령은 모두 훌륭하고 덕이 있는 사람을 정밀하게 뽑았습니다.
선발하여 장군이나 재상으로 삼으려고 하면
注+장將(장수)과 상相(재상)은 모두 거성去聲이다. 뒤에도 같다. 반드시 먼저 시험 삼아 백성을 다스리게 하였고, 혹은 2천 석 녹봉을 받는 군수에서
注+한漢나라 때에 군수郡守를 이천석二千石이라 하였다. 조정에 들어가
승상丞相과
사도司徒,
태위太尉가 되는 자가 있었습니다.
조정이 반드시 조정 내부의 신하들만 중시하고 자사와 현령을 도외시하여 드디어 그 선발을 가벼이 해서는 안 되니, 백성들이 편안하지 못한 까닭이 아마 여기에서 말미암기 때문일 것입니다.”
태종太宗이 이로 인해 근신들에게 말하였다. “자사는 짐이 응당 직접 선발할 것이니, 현령은
경관京官 5품 이상인 자들에게 명하여 각자 1명씩 천거하게 하시오.”
注+사전史傳을 살펴보건대 이것은 ‘건축을 사치롭게 함에 대해 간하다.’와 ‘태자와 여러 왕들의 분수를 정하는 것을 논하다.’는 것과 동일한 상소이다.
注
손수孫洙가 말하였다. “백성은 국가의 근본이고, 수령은 백성의 근본이니, 옛날에 천자가 작위를 두어 봉록을 나누어준 것은 신하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 백성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적합한 사람을 선발하여 백성을 거두어 양육하게 하였고, 그 직임을 무겁게 하여 부쳐 책임 지웠으며, 권세를 빌려주어 안정하게 하였고, 녹봉을 후하게 하여 총애하여 이롭게 해주었다.
임금이 관리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이 한결같이 백성에게 근본을 두고, 신하가 임금에게 보답하는 것도 한결같이 백성에게 근본을 두게 되면, 백성이 소중하게 되는 것이다.
백성이 소중해지면 군수와 현령이 소중해지며, 군수와 현령이 소중해지면 천하 국가가 소중해진다.
수령을 가벼이 여기면 이는 백성을 가벼이 여기는 것이니, 백성이 가벼이 여겨지면 천하 국가도 가벼이 여겨질 것이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옛날 한漢나라의 제도에 군수가 조정에 들어와 삼공三公이 되고, 낭관郞官이 지방에 나가 백리百里(지방 고을)에 수령을 지내기도 하며,
또 간대부諫大夫를 내보내 군리郡吏로 보임하여 치적이 있는 자에게는 칙서勅書를 내려 권면하고 품계를 더해주며 재물을 하사하여 바로 자리를 옮기지 않다가, 공경公卿에 결원이 생기면 그중에서 더욱 뛰어난 자를 선발하여 등용하였다.
그러므로 훌륭한 관리들이 이때 많았으니, 이는 소중히 해야 할 것을 알았던 것이다.
위魏‧진晉 이후로는 조정에 있는 사람을 요직이라고 하고, 지방을 다스리는 사람을 좌천되었다고 하였다.
그 때문에 관리들 중에 탐욕스럽고 잔인한 자들이 많아져 풍속이 나날이 무너져서 소중히 여길 것을 잃었더니 당唐나라의 과오 역시 그러하였다.
그 때문에 내직內職에 있는 사람은 항상 승진하고 외직外職에서 발탁하는 것은 항상 지체되었다.
그러나 수령들 중 기풍과 절도를 세운 이들은 여전히 빛나서 말할 만하다.”
注
호인胡寅이 말하였다. “자사刺史의 수가 아주 많으니 군주가 어떻게 두루 알 수 있겠는가? 인재는 대신에게 맡겨 부지런히 천거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
현령은 지위가 낮은 데다 더욱 수가 많으며 백성과 더욱 가까우니 더욱 가려 뽑지 않을 수 없다.
반드시 인물을 얻고자 한다면 현縣을 위해 정무의 치적을 이룩하도록 하여 그 인물을 천거하는 것이 옳으니, 만약 반복하여 구한다면 다수의 훌륭한 현령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인물은 각각 재주가 있어 그 쓰임이 같지 않으니 지식과 뜻한 바가 각각 다르다.
5품 이상의 경관京官이 어떻게 현령의 재주를 모두 얻을 수 있겠는가?”
注
당중우唐仲友가 말하였다. “마주馬周의 뜻은 자기의 임무를 잘 살핀다면 백성들의 피해가 모두 재주와 덕이 있는 사람을 선발한 것과 같지 않음을 말한 것이니, 얻은 것이 많다.”
注
내가 살펴보건대 성인은 천하를 하나의 집으로 여기니, 조정朝廷은 당내의 안방이고, 주현州縣은 안마당이다.
요堯임금과 순舜임금 때에 백규百揆는 구관九官을 통솔하고 사악四岳은 12목을 통솔하였다.
그러므로 “안에는 백규百揆와 사악四岳이 있고, 밖에는 주목州牧과 후백侯伯이 있어 모든 정치가 조화롭고 만방萬邦이 모두 편안했다.” 라고 하였으니, 어찌 내외의 경중이 있었겠는가?
당唐나라가 천하를 소유하여 내직을 중시하고 외직을 경시하던 때에 아래로 현령縣令에 이르러서는 선비들이 대부분 그 자리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현령은 더욱 백성과 가까운 자리인데, 경시하는 마음으로 대하였으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마주馬周의 말은 그 요체를 안 것이라 하겠다.
천하를 다스리는 데 있어 수령을 신중히 선발하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없으니, 태종太宗의 말이 참으로 훌륭하다.
그러나 병풍에다 자사의 이름을 기록하고 치적의 잘잘못을 드러내어 스스로 선발할 수 있다고 하나, 구중궁궐에 있는 지존이 어찌 두루 알 수 있겠는가?
오직 마땅히 내외 경중을 공평하게 하도록 하여 조정에서 자사刺史와 도독都督을 선발하고 자사와 도독이 현령을 추천하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