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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政要集論(1)

정관정요집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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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집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時房玄齡魏徵李靖注+詳見下章.溫彥博注+字大臨, 幷州人. 警悟而辯. 隋末, 幽州總管羅藝以州降, 彦博預謀, 召入爲郞. 戰突厥被執, 貞觀初, 始得還. 尋檢校吏部侍郞, 時譏其煩碎. 後遷尙書右僕射. 卒, 追贈特進, 謚曰恭.戴冑注+字玄胤, 相州人. 性明正, 善簿最. 王世充謀簒, 冑以大義說之. 秦王引爲府士曹參軍. 貞觀初, 遷大理少卿, 又遷尙書左丞, 號稱職. 拜諫議大夫. 杜如晦遺言, 請以選擧委冑, 遂檢校吏部尙書. 卒謚曰忠. 與珪 同知國政이라
당시에 방현령房玄齡위징魏徵이정李靖注+이정李靖은〉 아래 장에 자세히 보인다.온언박溫彥博注+온언박溫彥博은〉 대림大臨이니, 병주幷州 사람이다. 민첩하고 총명하며 말을 잘하였다. 나라 말엽에 유주총관幽州總管 나예羅藝유주幽州 지역을 들어서 항복할 때 온언박이 모의에 참여하였는데 온언박을 불러 으로 삼았다. 돌궐突厥과의 전쟁에서 포로로 잡혔다가 정관 초기에 비로소 돌아왔다. 얼마 후에 검교이부시랑檢校吏部侍郞이 되었는데, 당시에 번잡하고 자질구레하다는 비난이 있었다. 그 뒤에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로 자리를 옮겼다. 세상을 떠나자 특진特進을 추증하였으며, 시호는 이다.대주戴冑注+대주戴胄는〉 현윤玄胤이니, 상주相州 사람이다. 성품이 밝고 정직하였으며 재물의 출납 장부를 잘 관리했다. 왕세충王世充이 찬탈을 도모할 때, 대주가 대의를 들어 유세하였다. 진왕秦王(太宗)이 데려다 진왕부秦王府사조참군士曹參軍으로 삼았다. 정관 초기에 대리소경大理少卿으로 승진하고, 다시 상서좌승尙書左丞으로 승진하였는데, 직책에 걸맞는다는 말이 있었다. 간의대부諫議大夫에 임명되었다. 두여회杜如晦의 유언에 인재의 선발과 등용을 대주에게 맡길 것을 청하여, 마침내 검교이부상서檢校吏部尙書가 되었다. 세상을 떠나자 시호를 이라고 하였다.왕규王珪와 함께 국정을 맡았다.
嘗因侍宴하여 太宗謂珪曰
일찍이 모시고 연회할 적에 태종太宗왕규王珪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識鑑精通하고 尤善談論하니 自玄齡等으로 咸宜品藻注+定其差品文質也.하라
“경은 감식안이 정통하고 담론을 더욱 잘하니, 방현령 등을 시작으로 모두를 품평해보시오.注+등급을 나누어 외형과 내용을 정하는 것이다.
又可自量孰與諸子賢注+量, 平聲.고하니
또 스스로 생각하기에 여러 사람들과 비교할 때 누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오?”注+(헤아리다)은 평성平聲이다.
對曰
왕규가 대답하였다.
孜孜奉國하여 知無不爲 臣不如玄齡이요
“열심히 나라를 위해 봉직하여 아는 것을 행하지 않음이 없는 것은 신이 방현령房玄齡만 못합니다.
每以諫諍爲心하여 恥君不及堯舜 臣不如魏徵이요
늘 간쟁을 마음속에 두어 군주를 임금‧임금처럼 되게 할 수 없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신이 위징魏徵만 못합니다.
才兼文武하여 出將入相 臣不如李靖注+將相, 竝去聲.이요
재주가 문무를 겸비하여 조정을 나가서는 장수가 되고 들어와서는 재상이 되는 것은 신이 이정李靖만 못합니다.注+(장수)과 (재상)은 모두 거성去聲이다.
敷奏詳明하여 出納惟允 臣不如溫彥博이요
정사에 대해 상주하는 것이 상세하고 명확하여 출납을 진실하게 하는 것은 신이 온언박溫彥博만 못합니다.
處繁理劇하여 衆務必擧 臣不如戴冑注+處, 上聲.어니와
번거로운 것을 처리하고 어려운 것을 다스려서 모든 사무가 반드시 거행되게 하는 것은 신이 대주戴冑만 못합니다.注+(처리하다)는 상성上聲이다.
至如激濁揚淸하고 嫉惡好善注+好, 去聲.하여는 臣於數子 亦有一日之長이니이다하니
그러나 탁류濁流(惡類)를 쳐내고 청류淸流(善類)를 옹호하며, 을 미워하고 을 좋아함에 있어서는注+(좋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신이 이 몇 사람에 비해 조금 낫습니다.”
太宗 深然其言하고 群公 亦各以爲盡己所懷하여 謂之確論注+, 珪後進爵郡公. 八年, 拜禮部尙書, 十一年, 正定五禮, 兼魏王師. 十三年, 卒, 上素服擧哀, 詔魏王泰率百官臨哭, 贈吏部尙書, 謚曰懿.이라하다
태종이 그 말을 깊이 수긍하였고 제공들 또한 각각 자신의 소회를 잘 말했다고 여겨 확실한 논평이라 평하였다.注+사전史傳을 살펴보건대, 왕규王珪는 뒤에 승진하여 군공郡公의 작위를 받았다. 정관貞觀 8년(634)에 예부상서禮部尙書에 임명되었고, 정관 11년(637)에 오례五禮를 바로잡아 정하고, 위왕魏王왕사王師를 겸하였다. 정관 13년(639)에 세상을 떠나니, 태종太宗소복素服으로 애도를 표하고 위왕魏王 이태李泰에게 명하여 백관들을 이끌고 가서 곡하게 하였다.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이다.
【集論】劉氏昫曰
【集論】劉昫가 말하였다.
王珪 履正不回하고 忠讜無比하니 君臣時命 胥會于玆
왕규王珪정도正道를 행하고 사특한 행동을 하지 않으며, 충성스러움과 정직함을 비할 데가 없으니, 임금과 신하의 시운時運이 서로 여기에서 만난 것이다.
易曰 自天祐之 吉無不利라하니 叔玠有之矣로다
주역周易대유괘大有卦 상구효사上九爻辭에 이르기를 ‘하늘에서 도우니 길하여 이롭지 않은 것이 없다.’라고 하였으니, 숙개叔玠에게 이런 점이 있었다.”
陳氏惇修曰
진돈수陳惇修가 말하였다.
太宗 嘗歷數諸臣之得失하여 以夸大於一己하고
태종太宗이 일찍이 여러 신하들의 득실得失을 낱낱이 거론하여 자신의 능력을 과장한 적이 있었다.
而復使王珪 商確人物이어늘 珪亦盍因是而進戒曰
그리고 다시 왕규王珪에게 인물들을 논평해보라고 하였는데, 왕규는 어찌하여 이때를 틈타 다음과 같이 권고하지 않았던 것일까.
知人之道 堯以爲難하니 陛下不當以知人爲能이니이다
‘인물을 알아보는 방법은 임금도 어렵게 여겼으니 폐하께서는 사람을 알아보는 것에 능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라하시니 臣亦不敢以知人自負니이다
자공子貢이 사람을 비교하자, 공자孔子께서 「〈나는〉 그럴 겨를이 없다.」고 하셨으니, 신 역시 감히 남을 알아보는 것으로 자부하지 않습니다.
皐陶陳謨 分爲하니 亦欲多方而參攷之하여 以示所難之意也니이다
옛날 고요皐陶가 계책을 진언할 때에 구덕九德으로 나누었으니, 역시 많은 방법을 제시하여 이를 참고하게 해서, 어렵게 여긴 뜻을 보이려고 한 것입니다.
今陛下安可輕問이며 而臣亦安可輕對니이다
따라서 지금 폐하께서 어찌 쉽게 물으실 수 있겠으며 신 역시 어찌 쉽게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惜乎
애석하도다.
珪不知此하고 且復一二而爲之商確하여 遂使太宗으로 謂吾之知人 如此其易하고 而珪之品藻 如此其當이로다
왕규가 이를 알지 못하고, 또 한두 가지 사실만으로 인물을 품평하여 마침내 태종이 ‘내가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 이처럼 쉽고, 왕규가 사람을 논평하는 것이 이처럼 타당하다.’라고 생각하게 하고 말았다.
天下之賢否善惡 皆不足辨하니 而邪佞之言 所以乘間而入也
세상 인물의 현명함과 선악 여부는 모두 잘 분별해낼 수 없으니, 사악하고 망령된 말이 빈틈을 타고 끼어들기 때문이다.
然則太宗之爲君 固有愧於帝堯 而王珪之徒 蓋亦有愧於皐陶者矣
그렇다면 태종이 임금 노릇 한 것은 참으로 요임금에게 부끄러운 점이 있고, 왕규 등도 고요에게 부끄러운 점이 있다.”
愚按 太宗旣正位東宮 首以魏徵으로 爲詹事主簿하고 珪爲諫議大夫하니 是珪爲諫官 在徵之先也
내가 살펴보건대 태종太宗이 이미 정식으로 동궁의 지위에 올랐을 때 가장 먼저 위징魏徵첨사주부詹事主簿로 삼고 왕규王珪간의대부諫議大夫로 삼았으니, 이는 왕규가 위징보다 앞서 간관이 된 것이다.
是時 之黨 多懷反側하여 不安이어늘 珪首請太宗坦懷待之하여 以示無間하니 是珪之論諫 在徵之先也
당시에 전궁前宮제부齊府의 무리들이 대부분 반역을 일으킬 마음을 품어 불안하였는데, 왕규가 먼저 태종에게 마음을 터놓고 그들을 대하여 다른 마음이 없음을 보이라고 청하였으니, 이는 왕규가 위징보다 앞서 간언한 것이다.
厥後 與徵上下其論이라가 卒得與徵齊名하니 豈偶然哉리오
그 뒤에 위징과 서로 논의를 주고받다가 결국 위징과 명성을 나란히 했으니, 이것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이나 嘗觀宋末眞氏論後世賢臣컨대 悉以四事律之하니 一曰正己 二曰正君이요 三曰謀國이요 四曰用人이라
그러나 나라 말기에 진씨眞氏(眞德秀)가 후세의 현신賢臣들을 논한 것을 보면 모두 4가지 일로 기준을 삼았으니, 첫째 자신을 바로잡는 것[正己], 둘째 임금을 바로잡는 것[正君], 셋째 나라를 위해 계책을 내는 것[謀國], 넷째 사람을 쓰는 것[用人]이다.
以唐初諸賢臣觀之컨대 則論謀國用人 王魏不如房杜 論正己正君 房杜不如王魏
나라 초기의 여러 현신들을 보건대 모국謀國용인用人은 왕규‧위징이 방현령房玄齡두여회杜如晦만 못하고, 정기正己정군正君은 방현령‧두여회가 왕규‧위징만 못하다.
四賢如耳目股肱하여 相資爲用하니 其致貞觀之治 不亦宜乎
4명의 현신이 귀와 눈, 팔과 다리처럼 서로 도움이 되었으니, 정관貞觀의 치적을 이룬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역주
역주1 史傳 : 《舊唐書》 권70 〈王珪列傳〉에 보인다.
역주2 子貢方人 夫子謂不暇 : 《論語》 〈憲問〉에 “子貢이 인물을 비교하니, 孔子가 말하였다. ‘賜는 어진가보다. 나는 그럴 겨를이 없다.’[子貢方人 子曰 賜也 賢乎哉 夫我則不暇]”라고 하였다.
역주3 九德 : 아홉 가지 덕이다. 그 조목은 관대하면서도 장엄하며[寬而栗], 유순하면서도 뜻이 확립되며[柔而立], 근실하면서도 공경스러우며[愿而恭], 治才가 있으면서 경외하며[亂而敬], 익숙하면서도 과단하며[擾而毅], 곧으면서도 온화하며[直而溫], 간이하면서도 절도가 있으며[簡而廉], 굳세면서도 독실하며[剛而塞], 彊勇하면서 의를 좋아하는 것[彊而義]을 말한다. 《書經 虞書 皐陶謨》
역주4 前宮齊府 : 前宮은 太子 李建成의 宮이며, 齊府는 齊王 李元吉의 官府이다.

정관정요집론(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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